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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황교안이 사는 법, 험지 밖에 답 없다
‘험지출마’ 종로 뜻 접을 움직임에 당내 뒷말
한국당, 종로에 정치신인 대리 출사 움직임
일각 “장수는 죽더라도 명예롭게 전사해야”
험지출마 요구받은 한국당중진들 큰 반발
종로냐, 아니냐…황대표 정치인생 기로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총선 필승 자유한국당 광역·기초의원 워크숍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

문병호 전 의원은 지난달 31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겨냥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국회의원 100명 이상 거느린 당 대표보다 대선후보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왜 더 앞설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선 혁신통합추진위 1차 대국민보고가 열렸다. 문 전 의원은 축사를 통해 이같이 밝힌 것이다. 바로 전날 한 언론에선 대선주자 여론조사를 했고, 윤 총장을 후보군에 넣어 조사를 했더니 이낙연 전 총리가 여전히 1등을 달린 가운데 윤 총장(10.8%)이 황 대표(10.1%)를 추월하곤 곧장 2위를 기록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나중에 윤 총장은 자신을 대선주자 후보군으로 여론조사시 제외해달라고까지 했지만, 문 전 의원은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문 전 의원이 안철수계로 꼽히는 인물이어서 보수통합 논의에서의 주도권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한 말일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제1야당 대표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많다.

‘의원 100명을 거느린 당 대표, 제1 야당 대표의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율’에 대해 의문과 우려의 시선을 갖고 있는 이는 문 전 의원 뿐이 아니다. 한국당 내에서도 이를 걱정하는 의원이 많다. 여론조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민주당에서는 이낙연 전 총리라는 부동의 1위인 잠룡이 있는데 그의 대항마가 돼야할 황 대표의 위력이 점점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솔솔 제기되는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그런 말을 공공연히 밝히는 의원은 없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황 대표의 지지율 답보 및 하락이 순전히 대표만의 잘못이겠는가”라며 “황 대표를 이 전 총리와 비교하는 것 등은 당내에선 금기시되는 말이며 굳이 거론하는 이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어제까지의 일이다. 오늘 현재는 황 대표의 지지도에 대해 정밀점검을 해야 한다는 이들이 늘고 있는 분위기다. 이유는 단 한가지, 총선 때문이다. 70여일 앞으로 다가온 4월 총선(4월15일의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신의 운명이 건 의원들은 황 대표를 주축으로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황 대표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보수통합 흐름과 별개로 말이다.

한달 전 ‘험지 출마’를 외쳤던 황 대표가 그 뜻을 접을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것에서 그 단초가 시작됐다.

한국당 의원, 아니 민주당 의원까지 합쳐 정치권에서는 황 대표가 정치1번지로 불리는 종로에서 출마, 이낙연 전 총리와 ‘빅매치’를 벌일 것으로 예상해왔다. 진보와 보수의 양대 거물이 종로에서 목숨건 단판승부를 벌이며 총선 최선두에서 서서 선거판을 진두지휘할 것이라는 예측이 강했다. 앞서 이 전 총리는 종로 출마 선언과 함께 민주당공동선대위원장으로 뛰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에 종로에서 펼쳐질 ‘이낙연 vs 황교안’ 승부의 상징성을 이번 선거의 핵심으로 봐왔다.

황교안(오른쪽) 자유한국당 대표와 박형준 혁신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혁신통합추진위원회 제1차 대국민보고대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

그런데 황 대표가 종로 출마의 뜻을 접고 다른 곳 출마를 고려하는 듯한 인상을 주자, 한국당 내에선 곱잖은 시각이 일고 있는 것이다. 황 대표가 총선 최전선에서 이탈하고, 안전지대로 향하려는 움직임에 뜨악한 시선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당장 일찌감치 총선에서 한국당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돼온 TK(대구·경북) 현역 의원들의 반발 조짐이 형성됐다.

이같은 물갈이론은 지난해 11월 친박계 재선의원인 김태흠 의원이 애드벌룬을 띄웠다. 그는 “영남권, 서울 강남3구 등 3선 이상 선배 의원들께선 정치에서 용퇴를 하시든가 당의 결정에 따라 수도권 험지에서 출마해주시기 바란다”고 해 파장을 일으켰다. 3선 이상 중진급 의원은 용퇴하거나, 당의 요청에 따라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라는 것이었다.

황 대표도 이같은 입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본인 역시 그래서 ‘험지 출마’를 마다않겠다는 뜻을 밝혀온 것이다.

그런데 종로에서 이 전 총리가 출마를 선언하고, 종로가 ‘험지 중의 험지’인 것으로 나타나자 보다 안전한 지역으로 출마지역을 옮기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험지(險地)는 ‘험난한 땅’이라는 뜻이다. 정치권에선 뒤에 ‘출마’를 붙여 주로 선거 용어로 쓴다. 험지출마는 상대방 후보자가 강력하게 버티고 있어 자신의 당선가능성이 작은 지역을 뜻한다. 당선 확률이 작으니 당연히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장렬히 전사하는 자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험지출마다. 바둑으로 따지면 험지출마는 상대방 세력이 튼튼한 곳, 상대방 세력이 두터워서 과감히 쳐들어간다고 해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곳에 들어가 싸움을 벌여야 하는 곳이다. 아무리 대마불사(大馬不死·대마는 좀처럼 죽지 않는다는 바둑 격언)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상대방이 물샐틈없는 방어망을 갖춘 곳이라면 아무리 용감하게 뛰어들어가도 두집 내고 살기에 버거울 수 있다. 그래서 험지출마는 정치권에선 일종의 불쏘시개요, 장렬한 전사를 뜻한다. 만약 험지출마를 통해 승리를 거두거나 의미있는 성적을 거둘 경우 큰 상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황 대표가 험지출마를 운운해온 것에서 정치권은 이같은 자기 희생과 목숨을 건 전투를 마다않겠다는 의지로 읽었다.

이 시나리오는 틀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당은 종로에 신인을 차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 전 총리가 출마할 종로에 황 대표가 가세하게 되면 이번 총선이 ‘대선 전초전’ 프레임으로 치러져 ‘정권 심판론’이 희석될 수 있다는 게 한국당의 논리다. 조금 궁색해 보인다. 박완수 한국당 사무총장은 3일 ‘종로의 신인 차출설’ 보도에 대해 “여러 안 가운데 하나”라고 시인했다. 그는 “(신인 차출 외에도) 종로구에 황 대표가 나가든지, 황 대표에 필적할만한 간판급 주자가 나가든지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모든 것은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 회의에서 이야기될 것”이라고 했다. 황 대표를 옹호하는 발언도 뒤따랐다. 주호영 한국당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지역구에 거물이 나오면 버금가는 거물을 내서 선거를 치르는 방법이 있고, 아예 다른 차원의 청년이나 신인을 내 비대칭 전력으로 선거를 붙이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황 대표를 내세우든, 신인을 내세우든 이는 선거전략이라는 것이다.

정가에선 이에 황 대표가 종로 험지출마에서의 출구전략을 당내 인사의 멘트를 통해 제시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한국당 내에서도 황 대표가 종로에서 떨어질 것이 뻔해 정치신인을 대리 출사시키고, 안전지대로 숨으면 총선에서 큰 손해가 날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 당장 홍준표 등 당대표급 인사들에게 험지출마를 요구하고 있는 한국당으로선 분열과 잡음이 뒤따를 것이라는 견해가 제기된다.

한국당 한 인사는 “다른 중량감 있는 의원들에겐 험지로 나가서 싸우라고 하고, 당 대표가 안전한 곳으로 탈출하면 총선에서의 당 사기가 떨어질 것은 뻔한 것은 아닌가”라고 했다.

이에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은 3일 한 라디오방송에서 재미있는 말을 했다. 그는 “황 대표가 결국 등 떠밀려서 종로에서 나갈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험지출마를 요구받고 있는 한국당 거물급 인사들이 황 대표에게도 같은 희생을 요구할 것이고, 결국 황 대표가 이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요즘 여기저기서 독설을 퍼붓고 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황 대표를 겨냥해 “종로, 여론조사를 보니 더블스코어던데 그래도 나가라. 원칙 있게 패하라. 가망 없는 싸움이지만 최선을 다해 명예롭게 패하라”고 했다. 승산없는 곳일지라도 총선 선두에 선 이상 명예롭게 불쏘시개가 되라는 뜻이다.

정가의 시각은 대체로 황 대표가 종로 싸움을 피하고 안전지대를 택하게 되면 보수진영이 그리는 총선 구도에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황 대표 개인 정치인생에 있어서도 큰 결점으로 남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번 총선에서 안전지대를 택해 설사 당선된다고 해도, 정치거물이 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황 대표의 정치 입문은 화려했다. 2019년 1월 자유한국당에 입당 원서를 내고 정치에 뛰어든 황 대표는 44일만에 당권을 거머쥐었고, 곧장 4·3 보궐선거에서 선전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삭발과 단식으로 집권 여당과의 투쟁력도 어느정도 인정 받았다. 하지만 당내의 끊임없는 막말 논란을 질서있게 정리하지 못했고, 보수 정치세력 외연넓히기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정치신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도 듣고 있다.

최근에 만난 한국당 모 의원은 황 대표의 험지출마와 출구전략 흐름에 대해 이같은 의견을 내놨다.

“장수는 무조건 용감해야 한다. 오십만 아니, 백만대군이 눈앞에 떡 버티고 있고 그들의 함성이 천지를 뒤엎는다해도 그들 총합이상의 결기를 갖고 바람같이 달려들어 상대방 장수의 목을 따려는 각오로 전투에 임해야한다. 목숨부지를 위해 참모를 선두에 내몰고 패할까 싶으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뺄 채비를 하는 장수가 있다면 누가 이를 따르겠는가.”

황교안 대표, 크게 정치를 하려면 답은 한가지 밖에 없다. 그게 ‘험지’일 것이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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