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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석연료’ 슈퍼리치 10인, 623조 자산 앞날은…
미국의 석유재벌 코크家 1500억달러로 1위
사우디 왕실 2위·투자 귀재 워런 버핏 3위
전기차 등 청정에너지 사업가들 자산의 9배
‘파멸신호 깜빡’ 환경단체들 비난 직면 불구
기득권 지키려 기후변화 반대 정치인 후원
재앙 현실화 돼도 경제구조 변화속도 더뎌

내로라하는 정·재계 유력인사들이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 모여 글로벌 어젠다를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올해 연차총회에선 1조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참여 의사를 내비쳤다. 선뜻 상상하기 어려운 양인 1조 그루를 WEF가 전면에 내세운 건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변화가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 실제적 위협으로 다가왔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의 구조를 당장 바꾸는 작업에 착수하지 않으면 구두선에 불과한 계획으로 판단, 평가절하했다. 가능한 한 현상유지를 원하는 기득권 세력과 현실화 한 재앙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시민사회단체간 시각차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화석연료를 태워 이룬 번영의 크기가 얼마이기에 ‘파멸의 신호’가 깜박이는 데도 그 열차를 멈춰 세울 수 없는 걸까. 최근 이를 일부 가늠할 수 있는 현황이 공개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한 사업에 성공한 10인의 자산가치는 5370억 달러(한화 약 622조9200억원)에 달한다. 나무 1조 그루를 가늠하기보다 어려운 천문학적 액수다.

10명의 부호 리스트엔 고개를 갸웃할 만한 인물도 들어있다.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워런 버핏이다. 블룸버그 측은 버핏이 포함됐다는 점에 특히 주목했다. 아이스크림과 핫도그를 파는 패스트푸드 체인 데어리퀸을 갖고 있고, 억만장자이면서도 검소한 생활을 하는 이미지가 각인된 버핏이어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은 분위기다.

투자 성공을 위해 버핏의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투자자들은 그가 회장으로 있는 지주회사 버크셔해서웨이의 연례 주주총회에 구름떼처럼 몰려든다. 그러나 작년 총회에선 분위기가 달랐다고 한다. 이전엔 강의를 듣는 분위기였다면, 버크셔해서웨이의 환경 지표가 어떤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성지순례가 논쟁의 장으로 변화한 셈이다. 앞서 네브라스카평화재단은 버크셔해서웨이에 기후변화가 보험 자회사에 미칠 영향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오마하의 현인’이 갖고 있는 893억달러의 재산이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한 이유는 버크셔해서웨이가 에너지·교통부문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어서다. 세계 최대 철도회사인 버링턴노던산타페 철도도 버크셔해서웨이 산하에 있다. 이들 자회사가 2018년 세전소득의 40%를 담당했다. 영국에 본부를 둔 기후운동단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에 따르면 이는 직·간접적으로 그해 1억890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한 책임이 있다는 계산이다. 버크셔해서웨이의 탄소배출량은 210억 갤런의 석유를 소비하는 것과 맞먹는다. 스마트폰 24조개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이다.

버크셔해서웨이가 이번 리스트에 들어간 건 엑손모빌·로열더치쉘 등 석유 관련 기업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유력 용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는 지적이다. 탄소경제는 오랫동안 우리 안에 깊숙하게 뿌리박혀 있다. 버크셔해서웨이에너지는 내년까지 아이오와의 모든 소비자가 재생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을 걸로 예상한다. 비(非)환경적 사업구조에 따른 비판이 거세지자, 친환경 행보를 강조하는 것이다.

브루노 사다 CDP 북아메리카 대표는 “어떻게든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는 없다”며 “에너지와 광물, 시멘트, 원유 가스 등을 얘기하지만, 음식과 의류, 소비재, 심지어 금융서비스도 경우에 따라선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화석연료 부호 10인 리스트는 블룸버그백만장자지수가 평가한 재산의 50% 이상이 CDP 순위·기후책임기구(CAI)의 탄소랭킹 등에 이름을 올린 회사에서 나온 건지를 파악해 도출했다. 이렇게 해서 10대 부호의 자산가치가 작년말 기준 5370억 달러로 추산된 것이다. 이들은 최근 몇 년간 자산이 최소 배 이상으로 손쉽게 불어났다.

이런 부의 급증은 긴급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경고가 분출했음에도 경제구조가 얼마나 변화하지 않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블룸버그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부는 전기차 등 청정에너지를 기반으로 사업을 일군 일론 머스크 등 자산가의 9배에 달한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3명, 러시아·인도가 각 2명, 사우디아라비아·독일·이탈리아가 1명씩이다.

1위는 미국의 코크가(家)로 파악됐다. 자산가치가 1500억 달러에 달한다. 지난 8년 동안에만 750억 달러나 불었다. 석유정제·화학 등을 핵심 사업으로 하는 코크인더스트리는 1940년대 창업했다. 찰스 코크 회장의 리더십으로 매출 1100억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부친으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은 1967년 이후 회사 규모를 2000배 이상 키웠다고 한다. 임산물과 전자부품, 소프트웨어 분야에도 손을 대고 있다. ‘은둔의 경영자’로도 불린다. 코크가는 기업공개를 하지 않은 상태로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특히 화석연료 중심의 경제를 지속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로비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기후변화 행동에 나서는 걸 거부하는 정치인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2위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로 조사됐다. 자산가치가 1000억 달러다. 87세의 사우디아라비아 군주는 독보적인 원유 보유량 덕분에 엄청난 자산을 축적했다. 왕족들은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를 통해 정부간 계약 중개로 돈을 벌고 있다. 왕세자인 모함마드 빈 살만은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개인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람코 측은 원유 시추를 위한 내부연소 엔진을 친환경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최고의 거부인 인도의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인더스트리 회장이 4위다. 자산가치 586억 달러다. 지난 10년간 자산이 배로 증가했다. 이 회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정유공장을 갖고 있다. 암바니 회장은 소매사업, 디지털서비스 부문에도 투자하고 있지만, 에너지 사업이 주력이다. 릴라이언스 측은 친환경 행보 홍보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비판을 누그러뜨리려 한다. 종업원들이 플라스틱을 재활용토록 유도하고, 인도 서부의 도시 잠나가르 정유소엔 아시아 최대 망고 재배지가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 최대의 독립 천연가스 생산업체 노바텍의 최고경영자 레오니드 미헬손·제나디 팀첸코가 자산가치 427억 달러로 파악돼 5위다. 미헬손이 250억 달러, 팀첸코는 180억 달러다. 노바텍은 러시아 가스생산의 9%를 담당한다. 210억 달러를 들여 북극에서 두 번째 LNG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노바텍은 파아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그룹이 윤리적 기업을 산출하는 FTSE4Good 지수에 포함된 기업이다.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를 실행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비(非) 정부 석유생산업체 루크오일의 바지트 알렉페로프, 레오니드 페둔은 6위에 랭크됐다. 자산가치 314억 달러로 평가된다. 시베리아 서부의 핵심 자산 외에 카스피해, 아프리카 연안에서도 사업을 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가스 생산에도 주력하고 있다. 회사 측은 2050년 탄소배출 제로에 도달한다는 목표를 작년 발표했다. 지난해 재생자원에 투자한 총액은 전년 대비 5배 가량 늘었다고 한다.

7위는 미국의 던컨가(家)다. 송유관 거대 기업 엔터프라이즈프로덕트를 1968년 설립했다. 2018년매출 365억달러, 순이익 42억달러를 냈다. 창업자 던컨은 2010년 사망했지만, 그의 가족이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자산가치는 268억달러다.

독일의 포르쉐·피에치가(家)가 뒤를 이었다. 폭스바겐그룹을 일군 일가다. 자산가치는 136억달러다. 작년 1000만대 이상의 자동차를 만든 세계 최대 완성차 제조업체다. 아우디부터 부가티 같은 슈퍼카를 생산한다. 이 그룹은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9위에 오른 부호는 인도의 락슈미 미탈이다. 최대 철강회사 아르셀로미탈의 지분 37%를 소유하고 있다. 자산가치 132억 달러다. 미탈스틸이 2006년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를 인수해 몸집을 키웠다. 2018년 철강 생산량은 8390만t이다. 벨기에에 1억3300만달러를 들여 공장을 세웠는데, 여기에선 용광로에서 나오는 탄소 함유 가스를 바이오에탄올로 바꾼다고 한다.

피아트크라이슬러를 자회사로 둔 지주회사 엑소르의 아그넬리가(家)가 10위를 기록했다. 피아트크라이슬러 주식 29%를 소유하고 있다. PSA그룹과 합병해 세계 4대 자동차 제조사가 됐다. 작년부터 2024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5~30%가량 줄이기로 했다. 슈퍼카 페라리는 작년 처음 하이브리드모델을 내놓기도 했다. 아그넬리가 자손인 안드레아 아그넬리는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뛰는 이탈리아 프로축구팀 유벤투스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홍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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