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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홍준표 “죽어도 양산에서 죽겠다”…그 진짜 이유
고향 창녕 공천 못받자 “양산에 가겠다” 의지
공관위 ‘서울 험지 출마’ 요구에 강하게 버텨
서울·수도권 보다 PK 맹주에 더 매력 느낀듯
김두관과 맞짱 터 이기면 대권고지 유리 판단
양산을 정치2번지로…종로만큼 시선집중 노려 
종로서 황교안 크게 패할땐 부각 효과도 고려
어쨌든 통합당 ‘한강 벨트’구축 작전에 큰 차질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의 제21대 국회의원 예비후보자 면접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

지난 2004년께였을 것이다. 나는 당시 서울시 출입기자였다. 그때 서울시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이명박 시장은 시정활동을 할때 기자들과 동행하는 걸 좋아했다. 서울시정 홍보를 중시해서 그랬을 것이다. 미니버스를 개조해 내부 중간에 테이블을 놨고, 시장을 중심으로 기자 몇명이 둘러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구청을 돌아다니던 게 일상사가 됐다. 어느날, 시장이 동대문구청에 간다고 했다. 취재할 생각이 있으면 버스에 타라고 했다. 동승한 모 국장은 “동대문구 재개발 프로젝트가 있는데, 구의 요청에 의해 시장이 의견청취를 하러 간다”고 귀띔했다. 기사가 될 것 같아 당장 따라갔다.

구청장실로 들어가니 기다리고 있던 구청장 외에 빨간 목도리를 두른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앉아있다. 그는 시장 일행과 반갑게 악수하더니, 시장이 앉자마자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다. “이봐요. 이 시장. 이번 재개발 꼭 해줘야 해. 여기에 정말 필요한 사업이요”.

속으로 좀 놀랬다. 당시 이 시장은 60대초반의 나이였고, 빨간 목도리의 남성은 아무리봐도 50대 초반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열살정도 터울은 있어보였다. 게다가 그래도 서울시장 아닌가. 시장직함에 ‘님’를 뺀 것은 그렇다고 해도 약간 반말투로 ‘동대문구 개발 사업에 꼭 협조해달라. 그렇지 않으면 매우 서운할 것’이라는 압박성 내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 남성을 보곤 ‘얼마나 대단한 권력자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를 처음 봤다. 빨간 목도리 사나이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였다. 그는 당시 동대문을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 어쨌든 서울시장을 앞에 놓고 구 발전을 위해 당당하게 뭔가를 요구하는 사나이가 약간 멋져 보였다. 그의 팬이 된 계기는 이 장면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됐다. 홍 전 대표가 싸가지(?)가 없었던 게 아니고, 한때 정치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이 시장과 미국에서 연구생활을 하며 세월을 같이 낚던 사이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나이를 떠나 허물이 없어졌고, 격의 없는 사이가 됐을 것이다. 또 알게된 것도 있다. 빨간 목도리가 트레이드마크이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모래시계 검사’로 불리는 이가 홍준표라는 것을(모래시계 작가 송지나는 박상원 역할의 검사가 꼭 홍준표 하나만의 모델이 아니라는 점을 나중에 말하기도 했지만, 암튼 사람들은 홍준표를 모래시계 검사로 불렀다)….

이후 더 알게된 것도 많다. 홍 전 대표가 몸전체에 카리스마는 흐르지만 때론 독불장군식으로 행동해 그 명성에 비해 당내 세력이 굳건하지 않고, 가끔 상대편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톡톡 튀는 행동을 하고, 훗날 ‘돼지 발정제’ 발언 등에서 보듯이 고품격은 아니라는 시각도 뒤따른다는 점을 말이다. 그러다보니 홍 전 대표에 대한 개인적인 팬심 역시 상당히 희석된 것도 사실이다.

불현듯, 옛날 얘기를 꺼낸 것은 이런 홍 전 대표가 최근 ‘뉴스 메이커’ 정중앙에 서 있게 됐기 때문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의 제21대 국회의원 예비후보자 면접에서 공천관리위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는 홍 전 대표에게 서울 강북의 출마를 요구했고, 홍 전 대표는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경남 창녕이 고향인 홍 전 대표는 당초 밀양·의령·함안·창녕 지역구 출마를 희망해왔다. 그러다가 공관위에서 난색을 표하자, “그렇다면 경남 양산을에 나가고 싶다”며 역제안성 절충안을 내놨던 상태였다. 이를 공관위가 무시하고 서울 등의 ‘험지 출마’를 재요구하자 이를 거절한 것이다. 홍 전 대표는 지난 20일 당 공천 면접심사에서 이같은 의지를 내보이고, “난 고향(창녕) 출마를 (한 번) 컷오프당한 셈인데, (양산을까지) 컷오프를 두 번 당할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만약 컷오프를 두 번 당하면 정계은퇴나 무소속 출마 중에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공관위에서 판단을 어떻게 할지 기다려 보겠다”고 했다. 양산 공천을 당이 해주지 않으면 무소속으로라도 나갈 것이라는, 일종의 배수진을 친 것이다.

이러다보니 통합당의 공천 작업은 첫수순부터 꼬였다는 게 중론이다. 애초 당은 홍 전 대표를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나경원 의원 등을 함께 서울에 배치할 경우 총선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른바 ‘한강 벨트라인’ 구축 전략을 염두에 뒀다. 하지만 홍 전 대표가 “수도권에서 20년 이상 (당에) 봉사를 하지 않았나. 이번에는 양산을에 가서 부산·경남(PK) 지역 선거를 해보고 싶다”고 버티자 당의 전략이 틀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홍 전 대표의 반발에 당은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김형오 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 18일 당의 ‘험지 차출’ 주문을 거부하고 경남 양산을 출마를 역제안한 홍 전 대표의 거취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냐”며 “그분이 그렇게 중요하면 직접 한 번 물어보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공천과 관련한 당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게 있다. 홍 전 대표는 창녕을 포기한 반대급부로 왜 양산을 요구하고 있는 가 하는 문제다. 많은 정치 뉴스에서도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없는 것 같다. 단지 홍 전 대표가 당의 험지 출마 요구에 대해 양산도 험지라며 계속 버티고 있다는 기사가 주류를 이룬다. 그 속내를 분석해보면 이렇다.

무엇보다 홍 전 대표가 향후 대권주자 의중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올해 총선(4월15일)에서 양산을에는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출마가 유력한 상태다. 다 알다시피 마을 이장 출신의 김 의원은 경남지사를 지낸 성공스토리 인물로, ‘리틀 노무현’으로 불린다. 현재는 몸값이 좀 하락한 것 같지만, 여권내에선 여전히 잠룡 중 하나로 꼽히는 이다. 게다가 양산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곳이다. 홍 전 대표는 이를 감안해 양산을 선거를 종로 다음의 ‘정치2번지’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1번지 종로 선거에서의 ‘이낙연 vs 황교안’ 구도 만큼이나 정치2번지일 수 있는 양산을 선거에서의 ‘김두관 vs 홍준표’ 구도는 고향 창녕 출마 포기를 만회할 만한 이상적인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양산을에서 이길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 대통령을 극복한 야권의 대표얼굴로 재차 부상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총선 공천 신청자 면접을 보고 있다. [ 연합]

정치권 관계자는 “홍 전 대표가 황교안 대표를 의식하는 흐름은 분명 있어 보인다”며 “종로에서 황 대표가 이낙연 전 총리에게 크게 패하고, 본인은 양산을 선거에서 김두관 의원을 이긴다면 야권의 PK 맹주로 우뚝 설 것이고, 그 상징성으로 인해 황 대표를 누르고 대권에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즉, 문재인정부 심판론을 이번 총선 최대 전략으로 내세운 보수통합 세력 중에서 ‘황교안 패배, 홍준표 승리’는 곧바로 대권 반열로 올라가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게 홍 전 대표의 생각이란 것이다.

홍 전 대표는 19대 대선(2017년 5월 9일)에 출마했지만, 24.0%의 득표를 해 41.1%를 기록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패했다. 정치권 다른 관계자는 “홍 전 대표는 19대 대선에서의 패배가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패배이며, 이를 만회할 기회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에 홍 전 대표가 설사 양산을에서 지더라도 유의미한 성적표를 내며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계산서 작성을 끝냈다는 말도 들린다.

실제 홍 전 대표가 다음 대선에 뜻이 있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홍 전 대표는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22년 대선에 출마할 건가’라는 질문에 대해 “(일단)이번 총선을 치러봐야 되겠죠. 이번 선거가 예선 아닌가. 정치를 하다 보면 누구나 다 나라를 한 번 경영해보는 게 꿈이다. 2022년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 지금 예선을 뛰고 있는 거다”라고 한 바 있다. 올해 총선에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걸고 있고, 여전히 대권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서울 강북이나 수도권의 다른 험지 출마에는 실익이 없다는 자체 판단도 홍 전 대표가 양산을을 고집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유한국당의 대표까지 했고, 대선후보까지 했던 자신의 이력상 총선에서의 ‘수도권 벨트라인’ 공략은 어느정도 성공하더라도 그 결실의 열매가 작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즉, 오세훈·나경원 등과 함께 서울 수도권 벨트 구축에 큰 성과를 낸다고 해도 돌아올 ‘파이’는 크지 않다는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일찌감치 홍 전 대표가 짐을 싸 고향 쪽으로 내려간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홍 전 대표는 서울 등의 험지 출마 요구에 대해 “벌써 짐을 싸 내려갔고, 도와준다는 이들도 다 같이 내려온 상태”라고 한 바 있다.

미래통합당 관계자는 “홍 전 대표가 PK 40석 확보 등의 기치를 내걸며 PK 선봉에 서는 것이 향후 정치적 자산에 도움이 된다면 되는 것이고, 수도권 험지에 나오면 그 위험부담이 큰데다가 성과를 낸다고 해도 오세훈·나경원 등과 동급으로 여겨질 뿐이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빨간 목도리’ 사나이의 ‘한사코 양산을’ 사수작전은 정치적 행간이 다양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양산을이냐, 무소속이냐 아니면 당에서 요구하는 서울 험지냐, 그것도 아니면 정계은퇴냐. 홍 전 대표의 머릿속, 참으로 복잡하게 가동되는 소리가 들린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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