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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고 진한 감칠맛 ‘게미’…남도음식은 무조건 맛있다
내륙·산간·해안 이어진 천혜의 환경
청정 산해진미…어딜 가나 잔칫상
긴 여름·질좋은 소금·넉넉한 음식
염장·발효음식 발달…젓갈만 수백가지
‘잡젓’으로 담근 김치 ‘감칠맛 끝판왕’
온화한 기후와 너른 평야지대, 고품질의 곡물과 해산물, 충부한 채소류가 어우러진 남도 밥상은 넉넉한 상차림을 자랑한다.

한국인의 DNA에는 독특한 미식관이 뿌리내리고 있다. ‘남도 음식은 무조건 맛있다’는 강력한 인식이다. 음식 맛에 한해서는 지역 감정을 초월하며 전국을 아우른다.

전라도 사람들은 음식의 맛을 이야기할 때 ‘게미가 있다’고 말한다. ‘게미’는 전라도 지역의 음식 맛을 설명하는 이 지역의 사투리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 그 음식 속에 녹아있는 독특한 맛’을 뜻한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게미’를 이해하기엔 쉽지 않다. 게미는 이 지역 사람들만 아는 깊고 진한 감칠맛이다.

전라도는 예로부터 미식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천혜의 조건을 가진 땅이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남도 음식의 시작은 비옥한 토양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전라남도 나주시를 중심으로 자리잡은 광활한 나주평야. 이 기름진 땅은 호남 사람들의 풍요로운 식탁을 책임졌다. 전라도 지역이 수천년에 걸쳐 농경문화의 중심지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도 나주평야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경상도와 강원도는 농사 자체가 안 되는 지역이지만, 전라도는 토양이 비옥해 품질 좋은 쌀이 많이 생산됐다”며 “비옥한 토양에서 나오는 풍족한 쌀을 통해 배고픔을 극복하니 음식에 예술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 사람들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자연의 혜택’이었다. 일 년 365일, 사계절의 따뜻한 기후와 내륙과 산간, 해안으로 이어진 청정지역은 산해진미를 선물했다.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 이수자인 임영란 담희전통음식연구소 대표는 “청정지역을 가진 천혜의 환경에서 나온 산해진미가 풍부해 자연스럽게 음식 문화가 발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도의 ‘맛’을 부인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근원에 대한 설도 많다. 임 대표는 “과거 유배 온 양반들이 많았다”며 “유배지에 온 사람들이 그들의 음식 문화를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해 남도 지역으로 전파했다는 설이 있을 만큼 이 지역의 음식은 계층과 계급을 아우를 만큼 다양하고 풍성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라도의 음식은 가짓수가 많다. 온화한 기후와 너른 평야지대, 고품질의 곡물과 각종 해산물, 풍부한 채소류가 어우러지니 남도의 밥상은 어딜 가나 잔칫상이다. ‘남도 한정식’으로 대표되는 한상 차림에는 무려 30가지의 요리가 올라간다. 고춧잎장아찌, 꼬막무침, 꽃게장, 낙지숙회, 대하찜, 모둠전, 부꾸미, 소고기육회(생고기), 조기구이, 토하젓, 편육, 해초무침, 홍어회 등 한 입씩만 맛 봐도 넉넉해진다.

남도에서 이 많은 음식이 태어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으로 문 교수는 “전라도 사람들의 타고난 미적 감각”을 꼽았다. 문 교수는 “전라도 지역은 더 섬세하고, 예술적인 면모가 있어 음식 문화가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역사만 봐도 그렇다. 삼국 중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운 백제의 문화 유산이 바로 이 곳에 있다.

전라도 음식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발효 음식’이다. 임 대표는 “전라도 지역은 여름이 긴데, 과거엔 냉장, 냉동 시설이 없다 보니 발효한 저장 음식을 많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날씨로 인해 염장 문화가 발달해 다양한 발효음식을 남겼다. 임 대표는 “특히 전라도 지역은 신안 등지에서 소금이 많이 나 다른 지역에 비해 발효음식 발달했다”며 “지금은 전 세계 유명 셰프들이 방문해 발효음식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넉넉한 음식 문화로 인해 음식이 남으면 보관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오래 보관하기 위해 염장을 하거나 담가 발효 숙성의 과정을 거쳤다”며 “발효를 통해 감칠맛을 끌어올리는 젓갈 문화와 장 문화가 발달해 남도 음식은 ‘감칠맛의 끝판왕’으로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발효해 만든 젓갈의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 이 많은 젓갈은 ‘남도 김치’의 독특하고 흉내내기 어려운 맛을 만들었다. 전라도 김치에는 보통 4~5가지 이상의 젓갈을 섞어 쓰고, 숙성한다. 임 대표는 “전라도 김치의 맛은 젓갈에서 나온다”며 “서해안에서 잡은 멸치, 보리새우, 갈치와 같은 젓갈도 있지만, 전라도에선 여러 가지를 섞어서 만든 잡젓을 많이 쓴다. 이 젓갈들로 김치를 담가 독특한 풍미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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