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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급’이 다른 김여정의 독설 데뷔…배경엔 ‘코너몰린 오빠 김정은’이 있다
김여정 “겁먹은 개 더 요란” 등 대남 비방
“트럼프 나와라” 김정은 메시지 대독한 듯
트럼프는 대선·탈레반 문제로 북한은 ‘뒷전’
김여정까지 공세 나서자 청와대는 고민 중
당분간 북한 문제는 교착상태에 돌입할 듯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청와대가 북한의 합동타격훈련에 우려를 표한 데 대해 경악을 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3월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베트남 방문 당시 호찌민 묘 참배를 수행한 김여정의 모습. [연합]

‘백두혈통의 공주’, ‘북한판 이방카’로 불리는 이, 바로 김여정이다. 김여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으로, 현재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직책을 갖고 있다. 그동안 김 제1부부장의 이미지는 비교적 온화하게 비쳐졌다.

그렇게 이미지 메이킹이 된 사례 몇이 있다. 지난 2019년 김 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으로 가기 직전 중국의 한 역에 내렸고 담배를 피웠는데 그때 여동생인 김 제1부부장이 재떨이를 들고 꽁초를 받아내는 모습을 보곤 우리 언론은 ‘홍도야 울지마라’급의 감성을 쏟아낸 바 있다. 지난 2018년 9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때 특히 눈길 끈 이도 김 제1부부장이다. 핸드백과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뛰면서 문 대통령 부부를 챙기는 장면, 오빠인 김 위원장을 밀착 마크하는 장면에서 우리 언론들은 “김여정이 순간 이동 수준으로 일정을 총괄했다”는 등의 우호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한마디로 우리 언론은 김 제1부부장에 대해 비교적 긍정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그렇게 묘사했던 셈이다.

이런 김 제1부부장이 돌변했다. 그동안 보여줬던 ‘미소’를 싹 거두고 ‘악담’을 퍼부었다. 웃던 얼굴이 언제였는가 할 정도로 안면몰수하고 독설을 내뱉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3일 오후 10시 30분께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발표했는데, 제목이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일 정도로 섬뜩했다. 그는 담화를 통해 자신들의 화력전투훈련은 ‘자위적 행동’이라면서 이에 유감을 표명한 청와대에 “적반하장의 극치”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전날 북한은 김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방사포를 쐈고, 청와대는 이에 이날 유감표명과 함께 도발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제1부부장이 적반하장이라며 비난 공세를 퍼부은 것이다.

‘김여정의 독설’은 간단치 않았다. 김 제1부부장은 ‘주제넘은 실없는 처사’, ‘바보스럽다’, ‘저능하다’라는 극단적인 단어까지 쓰며 청와대를 공격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사실 청와대의 행태가 세살 난 아이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고 조롱을 하기도 했다. 최고조의 독설로 대남비방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한 것이다.

청와대는 무대응 기조로 일관했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청와대 측은 전날 “지난 2일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와 관련한 정부의 기본 입장을 말씀드린 바 있는데, 그 외에 드릴 말씀은 없다”고 했다. 김 제1부부장의 독설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악영향을 신경쓰는 눈치를 보이긴 했다. 다만 청와대는 김 제1부부장의 돌발 행동에 대해 기류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제1부부장의 비방에 대한 논평을 자제하면서도 그 배경에는 촉각을 곤두세운 것이다.

김 제1부부장은 그동안 스타일을 접고 왜 직접 최고조의 비난수위로 대남비방을 한 것일까.

일단 분명한 것은 김 제1부부장이 오빠인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를 대독했다는 점이다. 지난 1~2년간 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등의 이슈를 몰아치며 나름대로 북한 문제를 글로벌 화두로 올려놓은 김 위원장은 현재 코너에 몰려 있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여동생 김여정’을 동원해 자극적인 메시지를 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도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 제1부부장은 실제 담화 말미에서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고 했다. 딱 누구처럼…”이라고 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 확실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9월 22일 자신의 명의로 낸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레 짖어대는 법”이라고 했었다. 메시지 톤이 유사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전선 장거리포병구분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연합]

통일외교 당국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잊혀진 인물’이 됐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여동생을 앞세워 트럼프에게 경고장을 날린 측면으로 해석한다”고 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대선을 앞두고 재선 문제에 올인하고 있고, 외교적으로는 탈레반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분위기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최근 대북업무를 담당했던 핵심 인사를 줄줄이 전보시킨 바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뒷전으로 밀어놨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상황이었다. 이런 시점에서 김 위원장이 김 제1부부장을 앞세워 “트럼프, 나와라.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내 요구를 들어달라”는 압박성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즉, 우선순위에서 밀린 미국의 북한 이슈를 다시 테이블로 올리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담판도 불사하겠다는 전략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측 분석도 이와 다르지는 않다. 김 제1부부장의 메시지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공세는 아니라는 점에서 남북관계가 완전히 흐트러지는 단계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김 제1부부장 담화에서는 “정말 유감스럽고 실망스럽지만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표명이 아닌 것을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피해간 흔적이 보이는 것이다. 일종의 수위조절이랄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김 제1부부장의 대남 비방은 향후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이번 대남비방을 통해 김 제1부부장의 한층 높아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백두혈통 가이드’나 ‘수행 여동생’ 이미지에서 벗어나 확실히 권력 실세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전선 장거리포병구분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3일 보도하면서 내놓은 장면. [연합]

사실 전에도 김 제1부부장의 위상은 작지 않았다. 북한 최고권력자의 여동생이라는 점으로도 그의 존재감은 가볍지 않았다. 지난 2018년 2월 9일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이 방남했을때의 일이 대표적이다. 북한 대표단은 당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해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인천공항 의전실에서 김 상임위원장이 김 제1부부장에게 상석을 양보하려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김 상임위원장은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석을 김 제1부부장에게 권한 것이다. 백두혈통 로열 패밀리에 대한 예우였겠지만, ‘김여정의 위상’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는 게 우리 언론들의 분석이었다.

어쨌든 독설가로 변신한 김 제1부부장의 모습은 향후 남북관계에 있어서 좋지는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북한 내에서 ‘김정은 분신’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김 제1부부장이 대남 비방의 선두에 나섰다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만 김 제1부부장의 발언만으로는 북한이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닫는다고 보거나 대남 기조에 큰 변화가 따를 것으로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예전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김 제1부부장이 나섰다 뿐이지 외부 자극을 통한 내부결속용 메시지일 뿐 이라는 것이다.

한 대북정책 전문가는 “할일은 많은데 진척이 없다는 다급함에 김정은 위원장이 여동생 김여정을 동원해 충격요법을 쓰는 것 같다”며 “대남 여전사로 나선 김 제1부부장의 위상이 한층 커진 것은 사실 같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김 제1부부장이 오빠인 김 위원장을 대신해 우리 측이든, 미국 측이든 ‘독종 메시지’를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앞으로는 ‘김여정 발언’도 유심히 살펴야 할 사안이 됐다는 점이다. 김여정은 암튼 돌변했고, 스스로 부드럽던 이미지를 포기했다. 뭘 위해서 그런지 좀더 자세한 것은 그만이 알 것이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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