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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 전 스페인독감에서 코로나19 기시감이…
1차대전 미 참전으로 확산 ‘1억명 희생’
독일군 감염…서부전선 패배에도 한몫

14세기 유럽인 3분의1 페스트로 사망
괴테도 걸린 천연두엔 3억명 목숨 잃어

알렉산더대왕 ·히틀러 등 권력자 질병도
역사 물줄기 바꾼 또 다른 변곡점…
“유행성 독감이 전 세계를 무자비하게 할퀴고 지나간 지 약 100년이 지났다. 그러나 전염병학자들은 지금도 범유행성 독감이 대규모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독감 바이러스는 종류가 너무 많고 돌연변이를 거듭하기 때문에 예방접종만으로는 충분한 대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애서)

맬서스의 인구론이 담고 있는 메시지 중 하나는 인구가 급증하면 전염병이나 전쟁이 일어나 잉여 인구를 줄인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맬서스가 내놓은 대응책은 그닥 호응을 얻을 만한 게 못되는데, 분명한 사실은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공중위생 관련 기반시설에 문제가 생겨 전염병이 확산되기 쉽다는 점이다.

유럽 인구의 3분의1을 죽음으로 내몬 지난 2000년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 페스트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발단은 이태리 제노바 공화국이었다.14세기 유럽 경제를 주도한 곳으로 도시 카파는 제노바 상인들이 활동하던 교역의 요충지였다.

이 곳을 점령하기 위해 1346년 여름부터 몽골족 타타르인은 성벽을 포위하고 공격을 했지만 함락시키는데는 실패한다. 다름아닌 역병, 즉 페스트가 돌면서 군인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때문이다. 1347년 결국 이들은 진영을 철거하지만, 시신을 통해 페스트가 확산되면서 카파 시민이 대거 목숨을 잃게 된다. 1347년 가을 카파를 탈출한 제노바 상인들이 탄 배와 함께 페스트균이 시칠리아에 도착하면서, 흑사병은 급속도로 퍼져나가게 된다.

제노바 공화국은 1347년 12월 제노바 상인들의 배 입항을 불허하게 되는데, 고향으로 가지 못한 배들은 마르세유에 정박하게 된다. 카파에선 그해 겨울동안 전체 시민 중 절반이 사망했으며, 페스트는 마르세유에서 마지막 기승을 부리게 된다.

의사이자 역사학자인 로날트 D. 게르슈테는 질병과 역사의 상관성에 주목한다. 한 시대를 뒤흔든 질병과 각종 질병에 걸린 권력자들의 얘기를 다룬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미래의창)에서 그는 14세기 페스트의 치명성을 당시 페스트가 전파되기 좋은 인구구조와 사회구조에서 찾는다. 특히 당시 직물교역의 성행을 주요인으로 꼽는다. 모직물은 매개체인 쥐벼룩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당시 페스트가 확산될 수 밖에 없었던 중대한 전제조건은 이미 30년 전에 마련됐다.1315년 몇백 년만의 폭우로 흉작과 대기근이 닥쳤고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1320~30년대엔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살아남은 이들의 건강 상태는 매우 나빴고 위생상태 역시 전염병이 번지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형성하게 된다.

페스트는 대략 1800만명의 사망자를 냈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사회적·경제적으로 상황이 나아졌다.식량부족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1918년 봄부터 1920년까지 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도 페스트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독감으로 최소 2500만명, 많게는 1억명이 사망했다. 직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사망한 사람보다 많은 수치다. 스페인 독감은 사실 스페인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비참전국이었던 스페인은 언론 검열이 느슨해 독감 소식을 자유롭게 많이 보도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독감 1호의 주인공은 1918년 3월 캔사스주에 위치한 포트 라일리 부대에서 취사병으로 일하는 앨버트 기첼이다. 5주만에 1127명의 병사가 감염되고, 그 중 46명이 사망했지만 미 당국은 파병을 결정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포트 라일리 훈련소를 거친 병사들은 프랑스로 향했다. 독감은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고 4월이 되자 독일병사 중 많은 이들이 인플루엔자에 감염됐다.

저자는 1918년 봄, 서부전선에서 독일이 펼친 최후의 대공세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것에 독감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1918년 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퍼진 데는 전쟁이 큰 역할을 했다.

유행성 질환 중의 하나인 천연두는 1980년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치됐지만 20세기에만도 약 3억명이 천연두로 목숨을 잃었다.

수포성 발진이 얼굴을 뒤덮어 살아나도 마마자국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했다. 천연두 자국을 평생 떠안고 살아가야 한 유명인들 가운데 괴테와 모차르트가 있다. 둘은 흉터자국이 꽤 많았다.

천연두의 역사는 꽤 멀리까지 올라가는데 기원전 1157년에 사망한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의 얼굴에서도 자국이 관찰된다. 1000년 전후론 유럽 전역에 천연두가 퍼졌고, 1500년 즈음엔 유럽의 탐험가와 정복자들이 천연두를 신대륙으로 옮겨 원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저자는 600명의 병사를 이끌고 간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스테카 문명을 정복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멕시코 원주민들이 천연두로 인해 대거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책은 권력자에게 일어난 질병 혹은 병리학적 현상이 역사를 어떻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지도 살피는데, 한 예가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다. 막대한 영토와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스페인 국왕 펠리프 2세의 부인이기도 한 메리 1세는 아버지 헨리8세가 신교를 국교로 채택한 걸 뒤집고 가톨릭을 국교로 선포하고 종교탄압에 나선다. 그 중엔 이복 여동생 엘리자베스도 있었는데, 여러 이유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메리의 임신이었다. 1555년 4월 스페인대사는 펠리페 왕자에게 여왕의 임신사실을 알리지만 상상임신으로 끝나고 만다. 이런 일은 1558년 초 또 한번 벌어지지만 펠리페 국왕과 백성들은 외면하게 된다. 메리는 자주 고열에 시달리고 눈에도 이상 징후가 발생, 결국 1558년 11월 사망하게 된다. 병명은 프로락틴종. 유즙분비 자극호르몬이 나오는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긴 것이다. 메리의 사망은 유럽전체의 역사를 바꿔놓게 된다.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는 45년 권좌에 앉아 황금시대를 구가했으며,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지독한 근시로 전쟁에서 참혹하게 죽은 '북부의 사자왕'으로 불린 스웨덴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독일 30년전쟁, 알렉산더 대왕과 히틀러까지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의 기록은 역사의 또 다른 길에 대한 상상으로 이끈다. 특히 저자의 팬데믹 고찰은 역사적 시기마다 변곡점을 이루는 인적·물적 교류의 급증이 확산의 원인이란 사실을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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