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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난 무릅쓰고 쓴 반이민…“유럽은 없다”
英 언론인 머리, 유럽사회 갈등 도발적 분석
2차대전 이후 ‘노동력 부족 메우기’ 유입
이슬람 이민 급증…종교·문화 충돌 야기

런던 일부 자치구는 백인이 소수 전락
“이주는 결국 영토뺏기” 과격한 주장도
“유럽은 금세 이민에 중독되었고 이주 흐름을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었다. 그 결과 한때 존재했던 유럽-유럽 민족들의 고향-은 점차 세계 전체의 고향이 되었다. 그리하여 파키스탄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곳은 모든 면에서 파키스탄과 비슷해졌다.”(‘유럽의 죽음’에서)

반이민, 반난민은 흔히 외국인혐오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인종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그래서 적어도 겉으로는 문화의 다양성과 공존의 미덕을 찬양하는 관대한 평화주의자를 자처한다.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거나 논리적으로 따지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런데 한 젊은 영국 언론인이 겁없이 일을 냈다. 이민, 젠더, 인종, 종교 등 유럽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서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더글라스 머리다.

영미권에서 출간과 함께 화제가 된' 유럽의 죽음'(열린책들)에서 머리는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서 일어나는 테러와 사회 갈등의 원인으로 이민자 급증을 지목하면서, 유럽의 ‘이민 중독’이 유럽을 자살로 몰고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책에서 저자는 역사적으로 각국의 이민정책과 이주현상, 정치인들의 포퓰리즘등을 면밀히 검토하며 이민이 어떻게 현재 유럽을 위기로 몰고 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유럽으로의 이민 행렬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탈식민지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국을 장려하면서 시작했다. 그 이면엔 유럽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속죄, 부채의식이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제국주의 시대 피지배 국민들은 그런 정당성을 얻어 떳떳하게 유럽으로 들어왔고, 이어 부양가족을 데려오고 시민권을 얻어 뿌리를 내리게 됐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1962년 이민자영연방법이 생겨 표면적으론 이민자 유입을 제한했지만 영연방 출신 이민자들이 취직을 하지 않고도 영국으로 올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민이 다시 급증하게 된다. 이어 피부색이나 인종 또는 종족, 민족 때문에 사람을 차별하는 건 불법이라는 인종관계법이 생기고 ,1980,90년대엔 다문화주의가 새로운 표어로 등장하면서 이민자의 행렬은 이어지게 된다.

그 결과,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무슬림 수는 150만명에서 270만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불법 체류자 100만명 까지 합치면 수치는 놀랄 만하다. 이는 영국이 이전의 영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곳이 돼 버렸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은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이후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중동, 북아프리카, 동아시아로부터 수 백만 명이 넘는 인구가 유럽으로 유입됐다. 실제로 독일은 2015년 한 해 동안 200만 명이 넘는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2017년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생아 이름이 '무함마드'라는 사실, 2050년부터 스웨덴은 무슬림 비중이 20.5퍼센트에 이르고, 오스트리아는 15세 이하에서 절반이 무슬림이 될 것이란 통계는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또한 각종 테러사건들의 리스트를 제시하는데, 1989년 살만 루슈디 살해 경고를 비롯,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 2005년 런던 7.7. 지하철 테러, 2011년 샤를리 에브도 테러, 2015년 파리 동시다발 테러, 2017년 웨스터민스터 테러와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등 범죄와 테러의 증가로 사회적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이면에 이들의 종교와 서유럽의 기독교 민주주의와의 충돌이 있다.

저자는 다문화주의 다양성과 관용에 대해서도 따가운 질문을 던진다. 런던의 일부 자치구에서 백인 영국인이 소수로 전락했다면 다양성은 어디로 간 것인가? 자유주의 사회는 관용 없는 자들을 관용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너그러운 탓에 이 과정에서 비자유주의나 반자유주의가 번성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적 시선이다.

저자의 논지는 이민자에 대한 적절한 규제다. 또한 유럽사회에서 이민자들의 통합 실패를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를 인종주의나 민족주의와 연결시켜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영국 역시 여러 문화가 한 데 얽힌 역사로, 포용의 역사이지만 문화와 민족을 자기들 방식으로 바꾸려는 의도를 가지고 오는 사람, 폭력적인 이들은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주는 인도적 대의를 가장하고 있지만, 결국엔 영토뺏기라는 그의 반이민 주장은 너무 나간 느낌도 든다.

머리의 신랄한 주장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건 공론의 장에서 이뤄졌어야 할 담론을 그동안 쉬쉬해온 탓이다. 이런 주장이 과거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1968년 영국 보수당의 그림자내각 장관 파월이 보수당연합을 상대로 한 ‘피의 강물’ 연설에서, 당시와 같은 속도로 이민이 계속된다면 영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불길한 사태를 예견한 적이 있다. 당시 여론조사에선 대중의 4분의3이 파월과 같은 감정을 느꼈지만, 파월은 곧바로 경질됐고 그의 정치적 생명은 끝장났다. 그 이후로 영국인들은 적어도 한 세대 동안 이민 문제에 관한 논의를 멈췄다.

‘이민자 천국’ 영국이 빗장을 걸어잠그려 브렉시트 논의를 한창 벌일 때 나온 책은 당시 영국인들의 감정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머리의 주장은 다문화사회에 들어선 한국에도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유럽의 죽음/더글러스 머리 지음, 유강은 옮김/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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