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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죽음에 이르는 병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시작할 무렵 밖에서 “불이야!”라는 소리가 들렸다. 민영익은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뒤 칼을 맞은 민영익이 비틀거리면서 들어온다. 급히 묄렌도르프의 집으로 옮기고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을 불렀다. ‘갑신정변’이다. 알렌은 의료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왔다. 죽기 직전에 이른 민영익을 살려낸다. 알렌은 고종에게 병원 설립을 요청한다. 고종은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주재했던 홍영식의 집을 내준다(Allen, 1991: 19-68). 1885년 4월 10일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왕립병원 제중원이 탄생한다.

왕실 시의와 제중원 원장을 맡은 알렌은 해마다 의료보고서를 발간한다. 1886년 첫 번째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외래환자 2만526명을 진료하고 입원환자 265명을 치료했다. 조선사람이 앓고 있는 가장 흔한 질병은 매독(760건)과 소화불량(582건)이다. 소화불량은 밥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의사에게 전해 들은 말을 언급하면서, 어린이 사망자의 약 50%가 두창으로 죽는다고 보고했다. 수종·단독·각기병·비장비대증·신장질환 등으로 외래환자 265명 중에서 6명이 사망했다. 알렌이 작성한 의료보고서는 한양만을 다룬 것이다.

의료선교사로 제물포에 들어온 랜디스(Eli Barr Landis, 1865~1898)가 작성한 1894년 의료보고서를 보면, 입원환자 129명 중에서 가장 많은 43명이 경기도에서 온 환자이지만 황해도(22명)·충청도(16명)·전라도(13명)·제주도(14명)·경상도(7명) 등 그야말로 전국적이다. 제물포는 조선 시대 조운선의 거점항으로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랜디스는 1888년 펜실베이니아의대를 졸업하고 1890년 9월 10일 제물포에 첫발을 들인다. 한 달 뒤 제물포 성누가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다. 조선사람에게 가장 흔한 질병은 매독·말라리아·소화불량·두창 등이다. 매독과 말라리아는 불결한 환경 때문이라고 봤다. 소화불량은 거의 매일 식사 때마다 먹는 매운 고추장에서 원인을 찾았다. 랜디스는 알렌보다 조선사람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었다.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보고한다. 일본인은 대부분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사망자의 무려 40% 정도에 이른다. 중국인은 중풍·폐렴·폐결핵·아편 중독 등으로 사망한다. 한국인은 말라리아로 사망한다.

독신으로 살면서 조선 고아 6명을 입양해 제물포 조선지계에서 살았던 랜디스도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일본인 사망률은 1000명당 22명 또는 23명으로 가장 높다. 중국인 사망률은 1000명당 10명으로 중간 정도다. 조선사람 사망률은 평균보다 낮았고, 서양인은 거의 사망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전염병이라는 점과 사망률이 나라별로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19세기 말 조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코로나의 경우 중증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이 부족하거나 인공호흡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거나 의료 서비스와 치료 모두 국가에서 제공하는 경우에 사망률이 높다. 사망률 12.8%로 제일 높은 이탈리아는 세 가지 모두 해당한다.

중증환자 병상과 인공호흡기 등을 충분히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과 민간이 경쟁하는 의료제도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사망률은 2.0%로 제일 낮은 수준이다. 한양 제중원과 제물포 성누가병원이 떠오른다.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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