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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을 만들며 걸어온 마에스트라 여자경의 ‘음악과 인생’
대학원 진학 ‘지휘과 1호’ 개척
코로나 여파 공연취소·연기 속 예능 출연
실검 1위 장식하며 ‘클알못’에 감동 선사
소위 말하는 ‘조기 교육’을 받지도, ‘음악 유전자’를 갖지도 못했던 여자경 지휘자. 음악이 좋아 뒤늦게 음대에 입학해 지휘자의 길을 걸었다. [구본숙 작가 제공]

지휘봉을 내려놓은 오른손이 우아한 몸짓(베토벤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 ’ 연주 중)으로 허공을 가로지르자, 100명에 가까운 단원들은 기다림을 마치고 첫 음을 연주했다. 콘서트홀엔 이내 하나의 악보가 그려진다. 빈 보면대를 앞에 둔 마에스트라는 머릿속의 악보를 꺼내 세심하게 수많은 악기를 조율한다. 그의 손이 지나면 곳곳을 떠다녔던 음표들은 제자리를 찾는다. 촘촘한 거미줄로 소리가 엮이듯, 빗나갔던 소리들이 돌아와 화음을 쌓는다. 나비처럼 펼쳐진 두 팔이 상공으로 향하면 소리는 더욱 깊고 풍성해진다. 객석은 벅찬 희열의 공기가 가득 메운다.

토요일 황금 시간대 안방을 찾은 클래식 공연에 여자경(50) 지휘자의 이름이 포털사이트를 오르내렸다. 방송인 유재석이 하프에 도전한 ‘놀면 뭐하니?’(MBC)의 파장이 거셌다. 기존 방송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탓에 두 배 가량 많아진 재방송에서도 내내 ‘실검’ 1위를 기록했다. “방송이 나간 그 주에 연주 의뢰가 굉장히 많이 오더라고요. 예능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느꼈어요.(웃음)”

코로나19 확산으로 클래식 공연이 취소와 연기를 반복하고 있는 요즘 여자경 지휘자는 처음으로 긴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한동안 1년에 100회 이상의 연주를 소화할 만큼 ‘워커홀릭’인 그에겐 너무도 낯선 시간. “익숙해지면서 편안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빨리 땀 흘리며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모처럼 쉰다지만, 이른 아침에 일어나 새벽까지 ‘나노’ 단위의 일상을 보내고 있는 여자경 지휘자를 만나 그의 음악 이야기를 들었다.

▶ 누구도 걷지 않은 길…지휘과 1호, 대학원 입학=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갔고, 이전에는 없던 길을 걸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엔 관용어처럼 ‘최초’라는 수사가 따라다닌다.

음악을 시작한 것은 누구의 ‘조언’도 아니었다. 클래식 음악인들이 흔히 밟는 예중 예고에서 음대로 이르는 정규 코스를 거치지도 않았다. 소위 말하는 ‘조기 교육’도, ‘음악 유전자’도 없었다. “오히려 가족들은 음악하는 걸 반대했어요. 제가 쉰둥이거든요. 나이 많은 부모님이어서 예체능을 한다고 하면 ‘딴따라’라고 생각하셨어요. 게다가 음악대학을 간다고 하면 돈을 사치하면서 쓴다는 인식도 있었죠.” 다만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취미로 만졌다. 학창시절 오케스트라 악장 생활은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였다. KBS합창단 활동을 통해 음악을 늘 곁에 뒀던 것도 진로를 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뒤늦게 음악이 하고 싶어 작곡과를 선택했다. “사실 작곡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닌데, 일단 음대에 가면 길이 열릴 거라 생각했어요.” 막상 작곡과에 입학하니 ‘적성’과는 맞지 않았다. “작곡과는 조성이 없는 음악을 해요. 듣기에 따라 괴롭거나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죠. 전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가 좋아서 그런지 맞지 않더라고요.”

작곡과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시작된 ‘외도’는 그의 길을 바꿨다. 작곡과엔 몸만 붙인 채, 성악과를 넘나들며 오페라 반주를 한 것이 지휘의 길을 걷게 된 계기였다. “오페라 코칭을 하려면 지휘과에 가야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는데, 제가 다니던 한양대엔 지휘과가 없었어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길을 선택하자, 그는 이정표가 됐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지휘과 1호. 여 지휘자는 ‘없던 학과’에 진학해 공부를 마쳤다. 그가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가 돼서야 한국종합예술학교에도 지휘과가 생겼다.

혼자 걸었던 길이었던 만큼 배움을 향한 갈망이 컸다. 학비가 없고, 오케스트라를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때가 한국 나이로 서른이었다. 띠동갑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늦깎이 한국 유학생. 부모님의 지원 없이 떠난 유학생활에선 장학금과 레슨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갔다. 유학시절 여 지휘자의 손을 거쳐간 사람들이 상당하다.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고 한국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가르쳤어요. 지휘, 청음, 화성악 등 이론까지 가르쳤죠.” 입학부터 졸업까지 최고 성적을 받으며 장학금을 받은 것도 기록이었다. “전과목 1점(A)을 받는게 쉬운 일은 아닌데, 어린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내가 저 애들보단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건 자존심의 문제야, 하면서 죽기살기로 했죠.(웃음)”

‘죽기살기’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었다. “여자였고, 동양인이었고, 단점은 다 가지고 있었어요. 그나마 죽기살기로 해야 봐주는 상황이었죠. 다른 학생들과 비슷하게 하거나, 조금 잘 해서는 선택을 받을 수 없었어요. 정말 월등하게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거든요.”

▶ 지휘자의 길…“지휘자는 남녀를 떠나 어려운 직업”=음악계에서 지휘자는 아직도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대표적 분야다. 포털사이트에 ‘여성 지휘자’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는 인물 역시 ‘여자경’ 지휘자. 그만큼 여 지휘자가 쌓아온 족적은 상징적이다.

“이제는 여성 지휘자가 많아져 더이상 특수하지 않아요. 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어진 인식의 차이나 차별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지휘자는 앞에서 지시를 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가진게 아닐까 싶어요. 예전엔 보수적이었고 지금은 나아졌다기 보다, 여성 지휘자가 흔해져 서로가 익숙해진 것 같아요.”

국내외를 떠나 여성 지휘자로 100명에 가까운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것이 녹록치는 않았다. “처음에는 화도 많이 났다”고 한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시선을 수도 없이 받았고, 만나면 나이 먼저 묻는 여성 단원들도 적지 않았다. “포기와 이해의 과정을 통해 지금에 온 것 같아요. 어차피 성별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나에게 불리한 조건이 있지만, 그래도 같이 한 번 해보는 거죠. 지휘자는 남자건 여자건 어차피 어려운 직업이에요. 남녀를 떠나 사람 나름인 거죠.”

여 지휘자는 자신 앞에 놓인 ‘핸디캡’을 부단한 노력과 끈기로 채웠다. “힘든 순간은 너무나 많았죠. 힘든 걸 뛰어넘어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내가 아직 부족하니 힘든 일이 생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디 가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거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한 대우를 받을 때, 그건 내가 모자라서 생긴 일이니 스스로 조금 더 업그레이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한국에 돌아와 6~7년은 일을 많이 했어요. 일에 욕심이 많았고, 아무리 많이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거든요. 그땐 매일 연주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몸을 혹사한 만큼 건강에 무리가 갔던 일을 계기로 지난 몇 년 사이 삶의 방향도 달라졌다. 이제는 조금은 일을 줄이며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생각한다.

“이제는 큰 욕심이나 계획은 없어요. 프로로 데뷔한 이후 16년의 동안 저 역시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어요. 그래도 좋아하는 음악을 하기에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밤 늦게 연주를 마치고 온 다음날은 온 몸이 아프고, 팔이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 힘들거든요. 그런데 또 리허설을 하면 팔이 올라가더라고요. 제겐 음악이 주는 힘이 그만큼 크더라고요.”

스스로 만든 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 ‘음악’은 가장 잘 맞는 단짝이다. “제 삶에 이게 주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계속 해나는 것이 제겐 중요해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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