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동행 꺼리고 ‘그들만의 길’ 가속
중국도 ‘마이웨이’…국제위상만 관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백악관의 잔디밭을 걷고 있다. 주말을 메릴랜드주에 있는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보내고 백악관으로 복귀, 미 해병대의 대통령 전용 헬리콥터 ‘마린원’에서 막 내린 모습이다. [AP]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코로나19 치료 백신에 대한 국제적 확보전(戰)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우선주의’가 백신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황 증거는 적지 않다. 국제협력 무대에서 미국이 종적을 감췄다. 미국과 대척점에 선 중국의 백신을 향한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백신이 코로나19가 야기한 절망에 종언을 고하지 않을 수 있다.
▶협력의 場서 사라진 美=3일(현지시간) CNBC·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링컨기념관에서 폭스뉴스와 타운홀미팅을 갖고 “올해 말 코로나19 백신이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존슨앤드존슨을 거론, “공급선을 매우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최종 백신을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여러 회사가 근접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백신의 수혜자가 범(汎)지구적일지는 회의적이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 정부는 4일 열리는 유럽연합(EU) 주재 온라인 국제회의에 불참한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을 위한 자금 지원을 약속하는 자리다. 미국은 앞서 세계보건기구(WHO) 요청으로 지난달 12일 각국 정상이 진행한 백신의 국제적 평등 분배 논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협력에 관심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보건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4일 회의에 미국이 참여할 것을 요청하며 달래기를 했다.
미국은 냉담하다. 회의 참가는커녕 백신에 대한 국제협력을 할 계획이 있는지 질문을 받고 WHO를 공격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세계를 이끄는 미국 과학자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부채질한 총체적 실패를 감안하면 WHO의 효율성에 대해 깊은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백악관과 보건복지부는 동일한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미국은 ‘그들만의 길’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작전명 초고속(Warp Speed)’ 프로젝트를 가동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일정을 8개월 당기고, 내년 1월까지 3억명이 투여할 수 있는 양을 만드는 걸 목표로 잡은 것이다. 조심스러울 법도 한데 트럼프 대통령은 당당했다. 그는 최근 “내가 그 작전을 책임지고 있다”며 “(프로젝트의) 최대치가 어떻게 되든, 우린 (백신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아내 멀린다 게이츠 ‘빌&멀린다게이츠 재단’ 이사장은 “백신을 사용할 수 있게 돼도 최악의 상황은 미국이 최고액 입찰자가 되는 건데, 세계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도 백신 개발 단독 드리블= 중국도 코로나19에 공조하지 않고 있다. WHO가 요청한 지난달 12일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미 정보당국은 중국이 코로나19 백신을 먼저 개발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이 백신을 가장 먼저 손에 넣고 자국민에 투여하면, 유수의 글로벌 회사를 유치할 수 있는 데다 국제사회에서 위상도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미국 측은 중국이 백신 연구 결과를 탈취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다른 기술분야에서 중국이 해왔던 패턴을 백신에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중국은 누구든 효과있는 백신을 개발하면 기본적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백신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행보를 바라보는 세계는 어수선하다. 프랑스의 한 외교관은 “미국과 중국이 없인 쓸모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렇다면 포기하고 백신이 나올 날을 기다려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행동에 나서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걱정하긴 너무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일반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백신은 최소 12개월에서 최대 18개월이 걸린다는 계산에서다. 일부 외교관들은 “백신이 판매되고, 분배될 때쯤이면 트럼프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고, ‘미국 우선주의’도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