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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분의 벽 뛰어넘는 주체적 여성 춘향”

12일 오전 서울 국립극장에서 만난 배우 겸 연출가 김명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배우 겸 연출가인 김명곤(68) 만큼 ‘춘향’에 통달한 사람도 없다. 영화 ‘춘향뎐’(감독 임권택)의 시나리오를 썼고, 완판장막창극 ‘춘향전’(1998)의 극본을 쓰고, 연출도 했다. 2020년 김명곤 연출의 또 한 편의 ‘춘향’이 태어났다. 국립극장 70년을 맞아 국립창극단이 선보이는 신작 ‘춘향’.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극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김명곤 연출은 14일 개막을 앞두고 달라진 ‘춘향’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90년대부터 몇 번의 춘향을 선보였지만, 이번엔 완전히 달라졌다. “춘향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2020년에 맞게 현대적 춘향으로 탄생시키고 싶었어요. 이런 방향성을 세워두니 모든 것이 전통적인 춘향과 달라졌어요.”

한국인에게 춘향은 절개와 정절의 상징이다. 기생의 딸로 태어나 과거 시험을 보러 간 몽룡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순종적 여성상의 대명사.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당돌하고 발랄하며 도전적인 적극적인 여성”, “신분의 벽에 주체적으로 맞서는 여성”으로 해석한다.

[최문혁 제공]

“전통적인 춘향전은 방자에게 광한루에 놀러가자고 하는 이몽룡의 시점에서 극이 시작해요. 이번엔 춘향의 시점으로 옮겨왔죠. 엄마 몰래 축제에 가려고 들뜬 소녀 춘향의 모습부터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되는 거죠.”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전통과는 다르다. 김 연출은 “기존 춘향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이런 대사가 있었나, 의아할 정도로 캐릭터의 변화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광한루에서의 첫 만남이 대표적이다. 처음 만난 날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 몽룡은 방자를 시켜 춘향을 오라하지만, 춘향은 단박에 거절한다. “네가 뭔데 나를 오라가라 해?” 지체 높은 도련님도, 주체적 삶을 사는 춘향을 마음대로 움직일 순 없다.

“제일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월매가 혼인서약증서를 써주고 ‘사랑가’로 넘어가는 장면이었어요. 이번엔 춘향이 혼인 서약 증서를 찢어버려요. 춘향은 ‘우리 엄마도 이 증서 하나에 목매다 버림 받았다’며 ‘이런 증서는 믿지 않겠다’고 말해요. 한낱 종이 한 장에 사랑의 맹세를 하지 않는 거죠. 그리고 천지신명에 진심 어린 사랑을 맹세해요. 이런 진심 때문에 목숨 걸고 항거하는 춘향이 나오는 거예요.”

김 연출은 “사또의 아들, 양반가의 도령이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몽룡이 정말 괜찮은 남자라서 사랑하는 것이라는 납득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고 설명했다.

춘향이 달라진 만큼 몽룡도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가문의 압박’으로 출세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견디고, 고뇌하는 청년으로 다시 태어났다. 두 사람이 사랑하고, 이별했다가,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은 속도가 빨라졌다. 5월 단오에 만나 그해 가을 몽룡이 과거에 급제하면서 재회한다.

“전통적인 춘향은 300~400년 전의 이야기예요. 신분의 차별이 존재하던 시기였어요. 춘향은 봉건시대 남성들의 욕망이 투영된 여성상으로 그려졌죠. 현대에는 당연히 맞지 않아요. 그런데 100~200년 전에도 지금 우리가 그려낸 춘향 같은 여자도 있었을 거예요. 제도와 시스템의 압박에서 사랑을 쟁취하는 청춘남녀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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