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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궁 기보배 “질 거라는 생각 안 들었다”…5㎜가 가른 승부 [메달리스트]
메달리스트 인터뷰 ② 기보배

[헤럴드경제] 한국 양궁은 올림픽 ‘효자 종목’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스포츠다. 특히 한국 여자 양궁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장 쥐안쥐안(중국)에게 금메달을 내준 것을 제외하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개인전 세계 최강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보배(32·광주광역시청)는 2012년 런던 올림픽 2관왕(개인·단체)을 차지하면서 베이징에서 끊겼던 한국 여자 ‘신궁’ 계보를 다시 이었다.

기보배가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다. 당시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기보배는 이후 2011년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 금메달, 단체전 동메달 등을 추가로 획득하며 여자 양궁 에이스로 떠올랐다.

기보배가 2012년 영국 런던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전에서 우승한 후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올림픽 2관왕, ‘신궁’ 계보 이어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기보배는 단체전에서 자신의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어 개인전에서는 마지막 한 발로 승부를 가리는 슛오프 끝에 극적인 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기보배와 아이다 로만(멕시코) 모두 슛오프에서 8점을 쐈지만 로만이 기보배보다 과녁 중심에서 더 먼 거리의 8점을 맞추면서 패했다. 약 5㎜ 정도 간발의 차이였다.

“‘모든 걸 이 화살 한 발에 쏟아부어야겠다’, ‘후회 없이 쏘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 마지막 한 발을 준비했던 것 같아요. 후회 없이 쐈다고 생각했는데 8점이 맞았잖아요. 근데 제가 질 거라는 생각? 예상이 안 들었어요. 자신감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왜냐면 그 어려운 상황에서 저는 그 선수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기보배의 우승으로 한국 여자 양궁은 8년 만에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탈환,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자리를 재확인했다.

“메달을 딱 거머쥐었을 때 엄청 속이 후련했어요. 그냥 ‘아 이제 다 끝났구나’ ‘너무 고생 많았다’ 이런 생각?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여자 양궁이 금메달을 놓치면서 다시 정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부담이 컸거든요.”

한국 여자 신궁 계보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서향순을 시작으로 김수녕(1988년 서울 올림픽), 조윤정(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김경욱(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윤미진(2000년 시드니 올림픽), 박성현(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기보배(2012년 런던 올림픽), 장혜진(2016년 리우 올림픽)으로 이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장혜진, 최미선, 기보배가 브라질 리우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경기장에서 열린 2016년 리우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금매달을 따고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기보배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출전해 사상 첫 올림픽 개인전 2연패를 노렸지만 준결승에서 만난 장혜진(LH 양궁·33)에 패해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단체전에선 장혜진, 최미선과 함께 8연패를 합작했다.

‘무한경쟁’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

양궁 최강국인 우리나라의 국가대표 선발전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올림픽에서 2관왕을 차지한 기보배도 2014년 선발전에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국내대회를 뛰면서 커트라인을 넘은 선수들만이 선발전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요. 1차 선발전에 100~120명 정도의 선수들이 출전하는데 그 안에 저랑 비슷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50~60명은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기록을 재면 1점 차이로 열 명, 많게는 열다섯 명 정도 등수가 달라지죠.”

절치부심한 기보배는 2015년 다시 태극마크를 회복했다. 그해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예선에서 세계신기록을 쏜 뒤 개인·혼성팀전에서 우승하며 부활을 알렸다.

영국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2012년 런던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준결승에서 기보배가 카투나 로릭(미국)과 시합을 하고 있다. 기보배는 이번 경기에서 카투나 로릭을 세트스코어 6-2로 꺽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힘든 적은 정말 많았죠. 근데 그 상황마다 이겨낼 수 있었던 건 항상 제가 정상에 섰을 때의 제 모습을 상상하는 것? 항상 내 목에 금메달이 걸려있는 상상? 저는 단 한 번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오로지 제 목표만 생각하면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들 겨를이 있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웃음)”

70m 떨어진 사대에서 지름 12.2㎝인 10점 원을 노리는 양궁에 대해 기보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답했다.

“양궁이 상대방이 있어서 하는 경기이지만 저 자신을 이겨야지 고득점이 나오기 때문에 그 과정이 되지 않으면 상대방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훈련을 하면서도 얼마만큼 내가 이 10점을 쏠 수 있는 슛을 본인 걸로 만들 수 있느냐. 그럴 때일수록 훈련과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도쿄 올림픽을 향한 또 한 번의 도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얼짱궁사’로 주목을 받은 기보배는 당시를 회상하며 “인생에 있어서 잊지 못할 해”라고 답하면서도 외모보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예쁘게 봐주시는 건 사실 너무 좋아요.(웃음) 근데 저의 경기 과정이나 응원의 메시지? 그런 것들을 받았을 때 더 기분이 좋더라고요. 경기 과정을 디테일하게 봐줬다는 것은 그만큼 저한테 애정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한테는 강심장을 가진 선수라고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한편 기보배는 2016년 리우 올림픽 이후 결혼과 출산, 육아로 공백기를 보낸 후 광주광역시청 소속으로 다시 활을 잡았다. 기보배는 “첫 번째 목표는 국가대표, 그 다음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라며 “내년에 열리는 도쿄 올림픽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하루에 평균 400발 정도 화살을 쏘거든요. 그 많은 화살 중에서 한발이라도 의미 없는 화살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 한 발 한 발이 모이고 모여서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10점을 쏴야하는 순간에 정말 금빛같은 그런 화살? 그런 화살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정지은 기자/jungj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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