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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븐] “명품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명품 사랑 자처하는 20대

  • 기사입력 2020-05-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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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권해원 인턴 디자이너]
20대에게 명품은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이자 힘겨운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지난해 방영된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는 명품을 사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방송작가 진주가 등장한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방송화면 캡처]

“‘일만 하다 내 청춘 끝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날이었어요.”

지난해 첫 명품을 산 날, 스물아홉 살 Y씨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전 해에 스타트업 창업을 한 이후 야근이 일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일에 시달릴수록 공허한 감정은 커져만 갔다. 그래서 홧김에 질렀다. 금색 ‘구찌’ 로고가 가운데 박혀 있는 크로스백. 이유는 그냥 ‘예뻐서’였다. 대학 시절 명품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그였다.

“충동구매를 하고 놀라기도 했는데 명품을 받는 순간, 지친 날이 보상받는 기분이었어요.”

강렬했던 첫 경험은 곧 명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한 해가 흐른 지금, 그는 이제 목돈이 생기면 어떤 명품을 자신에게 선물할까 자연스레 고민한다.

지친 일상에 대한 보상, 힘겨운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 헤럴드경제 ‘헤븐팀’이 만난 20대가 생각하는 명품의 정의다. 20대에게 명품은 부유층만, 허영심 가득한 사람만 가지고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평범한 나를 위해 한 번쯤은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에 가까웠다.

[제작=권해원 인턴 디자이너]

실제 20대 명품 구매는 다른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가파르게 늘고 있다. 현대백화점 ‘2019년 연령별 매출 신장률’ 자료에 따르면 20대 매출 신장률은 전년 대비 28.8%로, 전체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가장 높았다. 신세계백화점에서도 20대는 전년 대비 24.4% 증가해 다른 연령대를 제치고 가장 높았다.

명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면 긴 줄 서기를 더는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샤넬 가격 인상이 알려진 뒤 한 백화점에서 펼쳐진 ‘오픈런(Open Run)’ 현상. [연합]

현실에서도 명품에 열광하는 청년들을 만나기 어렵지 않다. 최근 프랑스 명품 ‘샤넬’이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요 백화점으로 20·30대로 추정되는 젊은 손님들이 몰렸다. 백화점 개장에 맞춰 매장으로 뛰어가는 ‘오픈 런(Open run)’ 장면을 찍은 영상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헤럴드 오븐 ‘헤븐’ : 헤럴드 젊은 기자들이 굽는 따끈따끈한 2030 이슈

외로운 나, 노력하는 나, 사회인이 된 나를 위한 선물
[제작=권해원 인턴 디자이너]

‘헤븐팀’이 만난 20대의 명품 구매 계기는 다양했다. 각자 다른 이유로 명품을 자신에게 선물했다. 천안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스물다섯 살 P씨가 명품을 모으는 이유는 ‘외로워서’다. P씨는 “일 때문에 천안에 살기 시작해서 그런지 친한 사람이 없었다”며 “사람 안 만나다 보니 모인 돈으로 사기 시작해서 ‘구찌’ 어글리슈즈, ‘고스트’ 목걸이 등 8개 정도 있다”고 했다.

사회생활에 시달리는 본인에게 자신에게 ‘잘했다’고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정보통신(IT)기업 2년차 직장인인 스물여섯 살 L씨는 “1년 동안 열심히 회사 다닌 나에게 고가의 선물을 주고 싶었다”며 “스트레스받으며 일한 나에게 명품쯤은 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진정한 사회인이 된 자신에게 주기도 한다. 스물여덟 살 직장인 H씨는 “지난해 친한 친구가 결혼했는데 앞으로도 경조사 갈 일이 많을 것 같았다”며 “결혼식 갈 때 쓰려고 작은 ‘루이비통’ 가방을 샀는데 모으는 재미가 있어 계속 사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20대는 다양한 이유로 명품을 구매하지만 공통된 구매 성향이 있었다. 초고가 제품보다 브랜드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선호한다. 롯데멤버스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트렌드Y 리포트’ 중 20대 명품 금액대별 구매 현황을 보면 2019년 3분기 ‘150만원 미만’ 금액대 명품 구매 건수는 2017년 3분기 대비 6.9%포인트 증가해 다른 금액대보다 가장 높았다. 명품 소비가 늘긴 했지만 초고가 제품 위주는 아니라는 뜻이다. 보고서는 특히 ‘구찌’와 ‘발렌시아가’ 제품이 20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명품 제품을 소비하면서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를 가질 수 있기에 명품은 더 유혹적이다. [구찌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WHY 명품? 명품 차면 기분이 조크든요”
[제작=권해원 인턴 디자이너]

이 세상 많고 많은 물건 중 왜 하필 명품일까. 20대는 ‘남들이 알아주는’ 고가 제품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L씨는 “석 달 정도 돈 모아서 지를 수 있는 물건 중 제일 낫다”며 “예쁘기도 하고 들고 다니면서 약간의 허영심을 충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주 사용하면서도 자랑하는 맛이 있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제품에 명품 로고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로고플레이’가 20대에게 각광을 받기도 한다. 최근 일부 명품 업체도 이에 맞춰 로고가 크게 박힌 신발이나 가방을 내놓고 있다. 로고플레이를 좋아한다는 P씨는 “꼭 보여주려고 사는 건 아니지만 누가 봐도 티 나는 제품을 선호하는 편”이라며 “우선 내 마음에 들어야 하고 남들도 알아봐주면 더 좋다”고 했다. 영업직 회사원인 서른 살 C씨도 “직무 성향상 사람을 많이 만나는데 ‘있어 보이고 싶어’ 로고가 잘 보이는 명품을 차고 간다”고 했다.

로고플레이(Logo Play) : 상품 로고를 대놓고 드러내거나 로고를 패러디하는 등 재해석하는 디자인을 뜻한다. 원래 1990년대에 유행했으며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와 자신을 일체화하는 즐거움도 있다. 수석 디자이너가 바뀌고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구찌’는 Y씨에게 ‘혁신’ 그 자체다. Y씨는 “관습적인 디자인을 버리고 새롭게 탄생한 ‘구찌’야말로 혁신적 기업이라 생각한다”며 “‘구찌’ 가방을 들면 나도 진취적인 사람이 된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C씨는 ‘톰포드’ 제품을 선호한다. C씨는 “가격은 부담스럽지만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세련된 제품들이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랑 맞다”고 브랜드를 설명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원인으로 꼽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처럼 ‘저축해서 집을 산다’ 같은 희망이 요즘 청년에겐 없다”며 “그래서 집 대신 차, 차 대신 가방을 구입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비를 한다”고 분석했다.

명품 좋아하지만, ‘구찌’ 든 10대 보면…“어린 것이 벌써부터”
[제작: 권해원 인턴 디자이너]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20대들이 거듭 강조한 내용이 있다. 자신들은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과소비를 즐기지 않으며, 몇 달간 착실하게 돈을 모아 ‘내돈내산’으로 명품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H씨는 “성과급을 받아서 구매하거나 카드 할부로 재정에 무리가 안 갈 정도로 구매한다”고 했다. P씨도 “커피 5잔 마시던 걸 1잔으로 줄이다 보면 명품 살 여유가 생긴다”며 “한 해에 몇 번 나에게 명품을 선물할 수 있다”고 생각을 전했다.

내돈내산 : ‘내 돈 주고 내가 산 상품’을 뜻한다. 광고성 콘텐츠가 많은 유튜브에서 제품 리뷰를 하는 콘텐츠 제작자가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해 내돈내산 제품임을 강조하곤 한다.
100만원대 ‘루이비통’ 에어팟 제품을 구매하는 래퍼 ‘염따’. 염따는 자신의 돈으로 명품을 사는 콘텐츠를 찍는 등 플렉스(FLEX·(부나 귀중품을) 과시하다·뽐내다) 문화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염따 SNS 캡처]

명품의 부정적 측면도 또한 인정했다. 명품 착용이 누군가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길 수 있다는 사실을 20대는 잘 알고 있었다. Y씨는 “명품을 들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위치에 선다는 느낌도 받는다”며 “이런 나를 보며 명품이 먼 나라 이야기인 사람은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음속 깊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심리도 있다. 명품을 좋아하지만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왠지 꺼려진다고 20대들은 말했다. H씨는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이 ‘구찌’ 로고 크게 박혀 있는 제품 입고 로고플레이를 좋아한다면 거부감 느낄 것 같다”며 “지나치게 과시하는 사람은 싫다”고 했다. C씨는 “명품 옷 입고 다니지만, 10대가 명품 옷 입고 다니는 걸 보면 ‘부모 돈으로 저래도 되나?’는 생각을 한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덮어놓고 욕하진 말아주세요”
20대는 명품 구매를 일종의 몰입 소비로 봐달라고 말했다. [구찌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명품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지 않냐. 나이 불문하고 20대가 명품 들면 무조건 안 좋게 보는 ‘꼰대’들이 많다.”

20대들은 일부 사람이 가진 편견 어린 시선이 불쾌하다고 했다. 명품을 소비하는 젊은 층에게 과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다짜고짜 명품 구매자금 출처를 묻는 사람이나 길에서 따가운 눈초리를 건네는 사람은 견디기 힘들다. C씨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품 소비하는 젊은 여성에게 ‘김치녀’ ‘된장녀’ 같이 혐오 단어를 만들어 비꼬지 않았느냐”며 “아직도 그런 시선이 일부 남아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이 바라는 건 ‘취향 존중’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명품 구매를 좋아하는 물건에 투자하는 몰입 소비의 일환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통 크게 행동할 뿐이라는 것. Y씨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치인 게 얼마나 많냐”며 “몇십만원짜리 미슐랭 가이드 맛집 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과소비”라고 했다. P씨 역시 “누구나 다들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쓰지 않느냐”며 “나는 그게 단지 명품일 뿐”이라고 호소했다.

김빛나·박재석 기자 Heav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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