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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마 피케티는 왜 정치로 돌아왔나
'21세기 자본'의 연장선, 불평등 진화과정 탐색
80년대 이후 불평등 심화, 벨에포크시대와 같아
20세기 중반 역사상 상대적 평등 실현 이후
사민주의 실패, 공산정권 부패로 우경화

불평등의 근저엔 늘 정당화 이데올로기가
현대는 소유주의·능력주의가 지배적
좌파 고학력자, 우파 자산가 이익 공유
노동자 참여, 참여사회주의 대안 제시
누진소유세로 부의 대물림 해결해야
“누진소유세가 구현하는 일시소유 개념은, 이미 20세기에 실험된 누진상속세와 누진소득세에 내포된 일시소유 현태와 연장선에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제도적 조치들은 소유가 사회적 관계이며 따라서 규제되어야 한다는 관점에 기초해 있다.”(‘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21세기 자본’으로 세계적인 스타경제학자가 된 토마 피케티가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문학동네)로 돌아왔다. ‘21세기 자본’에서 불평등이 자본주의에 필연적으로 내재해 있다고 분석한 피케티는 이번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선 역사적으로 불평등을 정당화해온 정치·이데올로기적 역학관계를 탐구한다. 피케티는 서문에서, “‘21세기 자본’이 불평등과 재분배를 둘러싼 정치·이데올로기적 진화를 일종의 블랙박스처럼 다룬 한계를 지녔다”고 스스로 평가했는데, 이번 신작에서 이를 전면적으로 다뤘다. 수백년 역사를 가로지르며 전세계가 직면한 심화된 불평등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주요 이정표는 ‘불평등주의체제’와 ‘소유주의 이데올로기’다.

피케티는 1980년대 이후 심화된 불평등이 1차대전 발발 직전 최고조에 달했던 ‘벨에포크 시기’(1880~1914년)와 비견될 만큼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레이건과 대처로 상징되는 ‘보수혁명’ 이후 소유주의가 강력하게 부상, 세계화와 함께 강화된 결과로 본다. 사적 소유를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소유주의는 프랑스혁명으로 대표되는 구체제와의 단절을 거쳐 19세기말 20세기 초 절정에 달하는데,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따른 위기와 2차대전 이후 유럽사민주의와 공산주의의 실험 속에서 약화됐다가 1980년대 ‘신소유주의’로 회귀하게 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이 정치적·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불평등주의체제다. 신분제 사회, 구체제삼원사회가 여기에 해당된다.

삼원사회는 사제와 귀족(전사), 노동하는 평민계급인 제3신분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불평등사회로 프랑스혁명은 이 삼원사회를 전복한 것이다. 피케티에 따르면, 이 삼원사회는 모습을 바꿀 뿐 현대에 이어지고 있다. 특히 21세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브라만 좌파’와 ‘상인 우파’라는 다중엘리트체계 속에서 그 흔적을 찾는다. 피케티는 학력 엘리트(‘브라만 좌파’)와 자산 엘리트(‘상인 우파’)들이 과거 삼기능주의사회의 사제 엘리트와 전사 엘리트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상보적인 가치와 경험을 공유하는데, ‘브라만 좌파’는 학문적 노력과 능력, 지식·인적 자본의 축적을, ‘상인 우파’는 사업에서의 노력과 능력, 화폐·금융자본의 축적을 지향한다. 이들은 “특정 지점에서 분쟁을 겪을 수도 있지만 사실상 매우 큰 이득이 되는 현재의 세계화양상에 대한 강한 애착심을 갖고 있다”고 피케티는 분석한다.

두 엘리트계층은 사실상 통치 정당성의 두 형태를 대변하기도 한다. 과거 노동자 정당이었던 좌파 정당이 고학력자(고소득자)들의 정당으로 바뀌어가고, 전통적인 상위 자산 보유자들의 정당인 보수 정당들이 사회토착주의를 통해 가난한 50%를 끌어들이는 현대 정당정치의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배경이다. 피케티는 유럽 각국에서 발흥하는 우파 이데올로기인 사회토착주의를 공산주의 이후의 환멸과 세계화의 조직화에 따른 소외, 포스트식민적 다양성에 대한 부적응으로 해석한다.

역사, 사회, 정치를 가로지르며 불평등을 교묘하게 정당화하는 정치사회시스템을 살핀 책은 우선 사제-귀족-제3신분의 삼원구조의 삼기능적 사회가 18세기와 19세기에 어떻게 소유자사회로 바뀌었는지 살핀다. 이어 소유자사회가 20세기 공산주의와 사민주의의 도전 및 세계대전과 독립전쟁의 동시다발적 충격 속에 어떻게 전환됐는지 검토해나간다.

피케티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볼셰비키혁명과 양차대전, 유럽사민주의 사회의 출현을 거치며 20세기 중반, 상대적 평등을 실현했다고 평가한다. 불평등이 역사상 가장 완화된 떄라는 것이다. 그러나 냉전과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서유럽의 보수 우경화, 소련과 공산주의의 몰락을 거치며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유럽 사민주의 정치가 재분배를 향한 야망을 포기하고, 구 공산국가 지배자들의 과두지배와 재정 불투명성, 엘리트 중심의 교육 불평등으로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에 따른 결과라는 지적이다. 21세기는 금융자본의 세계화와 초집중, 불투명성 등으로 재분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피케티는 진단한다.

그렇다면 부의 대물림, 초집중을 해결할 대안은 무엇일까?

피케티가 내놓은 해법은 ‘사회적 일시소유’와 사회연방주의다. 사회적 일시소유는 재산세나 토지세 같은 사적소유에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누진소유세로 통합하는 것이다. 누진세 최고세율을 80%까지 높이고, 다른 나라로 도피하지 못하도록 세계자본세를 부과하자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각종 재화가 오랫동안 쌓아온 인류와 사회의 공적 자산이란 개념이 들어있다.

누진소유세는 유럽 성인 평균자산의 60%에 해당하는 12만유로(약 1억6000만원)을 25세가 되는 청년에게 지급될 자본의 재원이 된다.

여기에 국경 이민 민족 종교 등을 둘러싼 균열과 비극들을 평등주의적 연대로 묶어내는 안으로 제시한 것이 사회연방주의다.

이와함께 피케티는 노동자가 참여하는 진보적 민주적 대안인 참여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얼핏 마르크스주의자로 여겨질 법한 주장이지만 해제를 쓴 경제학자 이정우는 피케티가 새로 제시하는 대안은 소련형 공산주의와는 관계가 없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안에서 불평등을 극복하자는 아이디어라고 설명한다.

방대한 작업을 통해 피케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불평등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세력 균형과 맞물려 있다는 것으로, 특히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자본과 이데올로기/토마 피케티 지음, 안준범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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