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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스토리] 넷플릭스 패션 서바이벌 1위 김민주 디자이너 “겁 없어 여태 버텼다”
공부 못 해 유학갔지만 수석 졸업
한국 대표로 참가 18명 제치고 최종우승
“우승상금 3억 컬렉션 발표에 쓸 것”
김민주 ‘민주킴(MINJUKIM)’ 디자이너 [민주킴 제공]

“엄청난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옷이 미친 듯이 팔리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민주킴’을 알아보는 분들이 더 많아졌을 뿐이죠.”

지난 1월 25만달러(2억9000만원)의 우승 상금을 거머쥔 김민주(34) 디자이너는 “우승 후 달라진 게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18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넷플릭스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넥스트 인 패션’의 최종 우승자로 선정된 지 어느덧 8개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초에 1명씩 늘 정도로 유명해진 그지만 “하던 대로 한다”며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김민주는 2015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 민주킴(MINJUKIM)을 이끌고 있다. 중·고등학교를 뉴질랜드에서 다닌 그는 한국의 삼성디자인교육원(SADI)을 거쳐 세계 3대 패션 스쿨인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 예술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2013년 H&M 디자인어워드 대상 수상, 2014년 LVMH 영패션디자이너 부문 준결선 진출 등 굵직한 이력뿐 아니라 방탄소년단과 레드벨벳의 의상을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양 볼에 솜사탕을 머금은 듯, 화사한 미소를 짓는 그를 보자 외신이 ‘민주킴은 버블리(bubbly·명랑 쾌활한) 그 자체’라고 표현한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제 일하느라 새벽 3시에 잤다”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그는 승자의 여유를 잊은 채 다시 본업에 매진하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바쁘지만 행복하다”는 그의 근황을 들어봤다.

넥스트 인 패션에 참가한 김민주 디자이너의 모습 [넷플릭스]

턱걸이 합격생에서 최우수 졸업생으로

2009년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 예술대학교에서의 입학 시험에서였다. 23살 김민주는 단 번에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확신했다. 실기 시험장엔 앤트워프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돼있었고, 이것을 보고 추상화든 극사실화든 일러스트든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과제였다. 정형화된 문제만 제시하던 다른 패션 스쿨과의 행보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줄곧 틀에 박히지 않은 교육을 원했다. 초등학교 땐 만화에 푹 빠져 살았다. 만화를 그리고 수집하는 것도 모자라 만화가에게 편지를 보내는 ‘덕질’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공부를 등한시한 탓에 부모님과 자주 싸웠고, “영어라도 배우라”라는 호통에 가방을 싸서 뉴질랜드로 떠났다.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디자인학교(SADI) 패션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패션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지만 성적에 맞춰 하향 지원했다.

패션을 공부하면서 든 생각은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였다. 패션과 예술의 교집합을 찾아 다시 유학길에 오른 그는 20점 만점에 11점으로 앤트워프에 턱걸이 합격했다. 앤트워프는 입학생 80명 중 8명만 졸업할 정도로 악명이 높은 학교다. 김민주는 20점 만점에 18점을 받아 1등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가 지닌 동화적 상상력에 힘 있는 컨템포러리한 디자인을 얹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졸업 직후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겐조에서 입사 제안을 받았지만 “내 브랜드를 하고 싶다”며 거절했다.

흔들리는 ‘민주킴’의 지지대가 되어 준 언니

김민주가 처음부터 브랜드 이름을 ‘민주킴’으로 정한 것은 아니었다. 2013년과 2014년 국제 패션 경연에서 연달아 수상하자 외신에서 그가 제작한 의상을 통틀어 민주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이름‘과 ’뷰티풀(beautiful)한 이름‘이라는 평가가 동시에 나왔다. 2015년 해외 인지도를 바탕으로 공식 론칭한 민주킴의 출발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그러나 브랜드 운영 경험이 전무했던 그는 컬렉션 발표를 수익 창출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동업자였던 친구마저 떠났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것은 친언니 김민헌이었다. 미국 시카고예술대학(SAIC) 인테리어학과를 졸업해 신세계백화점의 비주얼 머천다이저(VMD)로 탄탄한 경력을 쌓아가던 김민헌은 직장을 그만두고 민주킴에 합류했다. 김민주의 창의력과 김민헌의 추진력을 합쳐 처음부터 브랜드의 기반을 다져나가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김민헌은 김민주에게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라”며 디자인의 전권을 맡겼다.

기대와 달리 두 자매가 함께 한 첫 시즌은 ‘망한 컬렉션’이었다. 프랑스 파리에 쇼룸을 냈지만 단 한 벌도 팔지 못했다. 김민주는 “이 컬렉션을 계기로 언니가 완전히 변했다”고 말했다. 김민헌은 팔릴 만한 상업적인 옷과 실험적인 옷의 비율을 정확히 계산해 김민주가 디자인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 덕에 컬렉션 판매가 점차 늘어 브랜드의 운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김민주는 “패션 디자인이 버티기 싸움인 줄도 모르고 겁 없이 시작했다”며 “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넥스트 인 패션 피날레 쇼를 마친 김민주가 자신이 제작한 웨딩 드레스를 입은 모델과 포옹하고 있다 [넷플릭스]
유일한 한국 참가자이자 최종 우승자

김민주가 2018년 말 넷플릭스로부터 넥스트 인 패션 참가 제안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런 서바이벌이라니, 장난 아니겠다”였다. 넷플릭스는 나라별로 10명의 후보자를 추려 수십 차례 화상 면접과 600문항에 걸친 정신감정 등을 진행했다. 이렇게 뽑힌 것이 한국을 대표하는 김민주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17명 패션 디자이너들이다. 한 달 반의 촬영 기간 동안 10차례 경연을 벌였으며, 한 의상을 완성하는 데 4시간에서 6시간만 주어졌다.

김민주는 시종일관 ‘러블리하고 버블리’한 모습으로 비춰졌지만 그 누구보다 정신력이 강했다. 같은 팀인 중국인 참가자 엔젤 첸이 패턴과 재봉을 하지 못하자 제작자로써 모든 것을 책임졌다. 결승전에서 ’사흘 만에 옷 열 벌을 완성하라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컬렉션이 런웨이에 공개되고 관중석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을 때 그는 “우승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우승 상금으로 뭘 했냐”다.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도, 호화스러운 외식이나 여행도 없었다. 그는 “저의 컬렉션을 계속 보여줄 수 있는 것 자체가 선물”이라며 “우승 상금은 앞으로 차근차근 쓰기 위해 모아뒀다”고 말했다. 그 사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패션 산업의 지형도가 급격히 변했지만 그는 “여러 나라를 이동하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줄어 오히려 디자인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 서바이벌 참가 기회가 또 주어지면 하겠냐”는 질문엔 손사래를 치며 “충분히 한 것 같다. 제 인생에서 더 이상 서바이벌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만 “다음엔 참가자가 아닌 심사위원으로 불러달라”는 말을 덧붙이며 환하게 웃었다.

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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