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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 코로나 백신, 희망이 솟다

호주 멜버른대 한국학연구소 초대로 ‘아시아 미투의 미래’ 웹세미나를 마친 뒤에 내게 어떻게 영어를 배웠냐고 묻는 친구가 있었다. 영어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영어권 나라에 한 달 이상 체류한 적도 없으며, 영어연수를 받은 적도 없는데 “Thank you for having me(초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같은 표현을 어디서 배웠냐는 친구에게 나는 말했다. “CNN에서 배웠어. 나 맨날 CNN BBC 보잖아.”

강원도 춘천에 살 때 영어 방송을 많이 들었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살지만, 그래서 더 글로벌하게 세상 소식을 듣고 싶었다. 처음엔 자막을 보며 이해하는 정도였는데 어느 날 설거지를 하는데 (물 내려가는 소리 틈으로) 문득 영어가 귀에 들렸다. 신기했다. 낮에 집에 있으면 늘 CNN을 틀어놓았는데 드디어 귀가 뜨인 것이다.

페이스북 친구인 송지영 선생으로부터 ‘Distinguished speaker series(명사초청 강연)’ 웨비나(webinar) 제의를 받았다. 마침 어머니가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라 두 달 지나 11월에 날을 잡았다. 어머니 일로 병원에서 살다시피해 힘들었는데 문학으로 도피할 기회를 줘, 간병인에서 작가로 돌아갈 수 있어 고마웠다.

대학에서 서양사를 전공했는데 통역에 의지하면 창피한 일이라 영어로 대담하겠다고 말해놓고 곧 후회했다. 국문학을 전공한 작가들이 부러웠다. 영어를 못해도 흉이 되지 않을 테니까! 어머니를 퇴원시키고 세미나를 준비할 시간이 1주일이나 있었지만 병실에 갇혀 있다 나오니 막 돌아다니고 싶어서 세미나 사흘 전에야 책상에 앉아 영어 답변을 준비했다.

대담은 송지영 선생이 편하게 이끌어줘 큰 문제는 없었는데 나중에 실시간 질문에 답하는 건 쉽지 않았다.

긴장해서 말을 더듬기도 했는데 나는 원래 말더듬이였다. 어릴 적 동생과 싸우다 흥분하면 말을 더듬었는데 사춘기에 시를 외우면서 ‘말’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오늘날 자타가 공인하는 이야기꾼이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도 말더듬이였다고 한다. 20대 초반에 거울을 보며 시를 외우면서 말 더듬는 버릇을 고쳤다는데, 바이든처럼 거울을 보며 시를 외웠다면 지금쯤 나는 시인이 아니라 정치가가 됐을까.

중·고등학생 시절 지루한 등·하굣길에 김소월과 만해의 시들을 외우곤 했다. 외우는 데 집중해 길바닥의 돌을 보지 못해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곤 했는데, 접질린 발목 부위에 침을 꽂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신영상가를 지나던 그때가 그립다. 시와 소설에 미쳐 있던 여학생에게 생은 지금처럼 뻔하고 지루하지 않았다.

투표는 끝났지만 CNN은 오늘도 대통령선거로 날이 샌다. 앤더슨 쿠퍼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트럼프를 겨냥해 한 말 “It doesnt matter. He is done.(상관없다. 그는 끝났다)”가 멋지다.

정말로 문제인 것은 코로나 확진자의 급증. 미국에서 코로나가 잡히지 않으면 우리도 코로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행히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고 화이자에서 백신 개발에 성공해 곧 백신이 전 세계에 보급될 수 있다니, 희망이 솟는다.

감히 예언하건대 내년 여름이면 우리는 코로나에서 벗어나 격리 기간 없는 해외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 외국에서 살고 싶은 나의 오랜 꿈이 실현될 그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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