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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사랑은 배우자 대신 취향공유자

장준환 감독의 단편영화 ‘러브 포 세일(love for sale)’은 사랑의 종말을 차갑게 보여준다. 가까운 미래, 낭만적 지고지순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뇌에서 추출한 다양한 사랑의 경험을 사고 파는데, 순수한 사랑은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다. 최고의 사랑을 구하기 위한 범죄가 횡행하고 몽글몽글하면서 아리고 환한 사랑에 잠깐이나마 빠져보고 싶은 사람들은 기꺼이 값을 지불한다.

“섹슈얼리티와 사랑은 소비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재생산을 거듭하는 더할 수 없이 맞춤한 영역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 이는 감정사회학자 에바 일루즈 히브리대 교수다. 사랑은 더 이상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소비의 대상이 됐음을 지적한 것이다.

에바 일루즈는 사랑의 사회학에 관한 한 독보적인 학자다. ‘감정 자본주의’‘사랑은 왜 아픈가’‘사랑은 왜 불안한가’ 등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감정과 사랑에 사회적 문제가 깊이 개입돼 있음을 밝혀왔다.

에바 일루즈의 역작 ‘사랑은 왜 끝나나’(돌베개)는 저자가 탐색해온 감정사회학의 대미를 장식하는 저작이다. 거대 담론에 초점이 맞쳐져온 자본주의가 감정, 사랑, 관계라는 내밀하고 개인적인 영역에까지 작용, “어떻게 자본주의가 성적 자유를 점령해, 성적 관계와 낭만적 관계를 유동적이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는가”를 세밀하게 살펴나간다.

자유의 역사에서 성의 자유는 가장 최근에 이뤄졌다. 남녀가 자유의지로 연애하고 결혼하게 된 것은 불과 백 년 안팎이다. 근대 이전 구애와 결혼은 일련의 사회적 절차에 따랐다. 따라서 불확실한 요소가 없었다. 정치적 자유의 연장선상에서 1960년대 성해방은 기존의 규범과 제도를 근본부터 흔들어놓았다. 자유의지에 따라 만남과 이별이 쉬워지고 결혼제도도 분열됐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성적 자유가 이성애 관계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를 심화시키고 인간의 가장내밀한 부분인 섹슈얼리티가 소비자본주의에 포섭됐다는 점이다.

오늘날 연인들이 함께 하는 행위는 대부분 소비활동으로 이뤄진다. 취향을 공유하며 카페, 레스토랑, 극장, 레저 활동을 소비한다. 옷, 음식, 차가 취향의 잣대가 된다. 삶의 동반자라는 배우자의 의미가 퇴색하고 취향을 공유하는 파트너로서의 의미로 변화한 것이다. 따라서 만남과 이별은 쉬워진다. 또한 무수한 가능성 때문에 파트너 선택을 미루고 회피하게 된다. 감정과 신뢰에 집중하기 보다 즉각적인 쾌락에 의존하게 된다. 사랑, 친밀성, 관계는 모두 불확실해진 것이다. 그 결과, 불안이 따라붙게 된다.

“관계를 멋대로 저버리는 행위, 관계를 맺을 능력 또는 의지의 부재, 한 관계에서 다른 관계로 전전하는 행태, 이 모든 것은 성적 관계가 추동한 새로운 시장 형식의 결과”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근대 이전과 질적으로 달라진 현대인의 사랑의 불안, 불신의 이유를 사회학적으로 세밀하게 고찰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사랑은 왜 끝나나/에바 일루즈 지음, 김희성 옮김/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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