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힘들땐 같이 힘들어하고,기쁠땐 같이 기뻐하는…감정을 나누는 음악 할래요”
‘팬텀싱어3’ 성악 천재 존노
예일대 ‘최고연주자과정’ 이력 화제
국악·EDM까지 소화 ‘변화무쌍’
성악가 ‘색·뿌리’ 지키는 新아티스트
라비던스 활동·솔로 음반 구상중
“소통할 수 있는 음악 하고 싶다”
매일 오디션을 보던 시절 만난 JTBC ‘팬텀싱어3’에서 출연자 중 유일하게 ‘성악천재’로 불린 테너 존노의 등장은 신선함 자체였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행복을 노래하는 무대에 시청자들은 아낌없이 응원을 보냈다. 라비던스 팀으로 최종 2위에 오른 지금 존노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박해묵 기자

호랑이 셔츠에 배기 바지를 입고 오디션을 찾았다. 누가 봐도 ‘자유로운 영혼’. ‘거리의 악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등장한 자막이 ‘자유분방’. 카메라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담았다. 단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마음이었다.

겨울의 문턱에서 만난 존노(29)는 “여러모로 특별한 한 해였다”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봤다. 5월까지만 해도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선다. “5년 전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의 공연을 보러 예술의전당에 처음 가봤어요. ‘나는 언제 저기에 설 수 있을까, 평생 한 번은 설 수는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 꿈도 이뤘어요.”

매일 오디션을 하나씩 보던 시절이 있었다. “성악가의 삶은 배우들과 같아요. 오디션을 하루에 하나씩 봤던 때였어요.” 도전, 불합격, 재도전, 파이널… 이런 단어들이 익숙하던 시절. “오디션 50개를 보면 1~2개 합격하는 정도였어요.”

‘팬텀싱어3’에 도전한 게 거창한(?) 포부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다. 매번 가던 오디션장 근처에 있었기에, “늘 보던 오디션 중 하나”로 생각했다. 물론 음악적 고민도 깊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오디션을 볼 때 파이널까진 가는데, 두 명 중 한 명에서 떨어지더라고요. 동양인으로 설 자리가 적다는 생각도 하고, 월등히 뛰어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덕분에 “멘탈이 많이 강해졌다”고 한다. 예일대 최고연주자과정이라는 이력도 화제였다.

‘팬텀싱어3’ 예선에선 오페라 아리아와 노래방 18번인 윤도현의 ‘사랑투(two)’를 불렀다. 비트박스와 랩도 좀 했다. 복장만큼 고정관념을 깬 무대였다. 본선 첫 무대에선 안드레아 보첼리와 셀린 디온 ‘더 프레이어(The Prayer)’을 오갔다. “가진 소리가 이미 천재성으로 느껴진다”(음악감독 김문정)라는 찬사가 나왔다. ‘팬텀싱어3’를 통틀어 유일하게 ‘성악 천재’라는 별칭이 붙었다.

남들보다 이른 시작은 아니었다. 목회자인 부모님을 따라 신학도를 꿈꿨다. 미국에서 보내던 고교시절에 친구를 사귀기 위해 들어간 ‘남성 중창단’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중창단이 잘 돼 교황청에 초대를 받기도 했어요. 푸치니의 미사를 부르기 위해 공부를 하던 중 파바로티의 ‘네순 도르마’를 보게 됐어요.” 영상 아래 달린 댓글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니 신이 있다는 걸 믿게 됐다는 댓글이었어요. 이 글을 보고 성악의 힘이 엄청나구나,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신학보다 음악과 목소리로 살아가도 되겠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부모님의 걱정도 만만치 않았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성악가는 순위가 제일 낮다고 하더군요.(웃음) 그만큼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렵다는 걸 알고 계셨어요. 만약 대학에 지원해 붙으면 가고, 아니면 단념할 생각이었어요.” 지원한 대학도 딱 한 군데였다. “부모님도 한 번 해봐라, 네가 설마 되겠어? 이런 마음이셨나봐요.(웃음)” 고3 때 시작해 준비 기간은 1년. 미국 존스홉킨스 피바디 음대에 합격했다. “말을 잘 듣는” 학생이었다던 존노가 처음으로 “말을 안 들었던” 일대 사건이었다.

늦게 시작한 공부는 밤샐 줄도 몰랐다. “행복했어요. 좋아하는 걸 배우니까요. 물론 성적은 안 좋았어요.(웃음) 하지만 전 ‘비기너’니까, 당연히 못 할 수 있다고 한없이 최면을 걸었죠.” 오디션에 익숙하지만, 존노의 사전에 ‘경쟁’이나 ‘비교’라는 단어는 없어 보였다. 동양인 클래식 전공자는 누구나 겪는 한계와 벽 앞에서도 그는 의연했다. “요즘 ‘펜트하우스’(SBS)를 즐겨봐요. 드라마니 과장이 있지만, 가끔 내가 있던 곳이 이런 곳이었나? 성악이 이런 건가 싶어 깜짝 놀랐어요.(웃음) 대학원(줄리어드)에 가니 ‘펜트하우스’를 경험하고 온 듯한 눈빛의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스스로를 다그치기 보단,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무대를 찾았다. “저를 채찍질하며 살고 싶진 않았어요. 이렇게까지 해서 완벽해질 필요가 있나 싶더라고요. 각자가 가진 개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냥 나니까, 제 개성을 찾아가려 했고, 그걸 찾았어요.”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왔다. 한국에 오기 전 존노는 일 년에 오페라 4~5편의 무대에 올랐다. 빽빽한 스케줄 속에 도전한 ‘팬텀싱어3’에선 라비던스 팀으로 최종 2위에 올랐다. 국악, EDM, 월드뮤직을 소화하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가지면서도 클래식 음악가로서 자신의 색깔과 뿌리를 지키는 새로운 아티스트의 등장이었다. “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무대에 올랐어요. 그 생각이 오히려 절 자유롭게 했던 것 같아요. 경연이라고 남을 짓밟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게 음악으로 나오거든요. 사람의 목소리에는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으려 했어요.”

그래서인지 존노의 음악과 목소리는 그의 선한 눈빛을 닮았다. “진심을 담았고”, “진심은 전해진다”는 믿음으로 음악을 전한다. 무대 위 존노의 목소리는 소통의 수단이다.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성악천재’라는 별칭 앞에서도 그는 손사래부터 친다. “저 천재 아니에요. 운이 좋기도 했고요. 음악을 천재라고 하면 세상과 좀 동떨어진 사람 같아요. 소통하려고 음악을 하는 건데 너무 멀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ENFP(MBTI 유형)”라는 존노에게 2020년은 “낯선 일들이 많아 즐겁고 행복한 한 해”라고 한다. 또 새로운 날들이 그의 앞에 있다. 라비던스로의 활동, 솔로 음반에 대한 구상, 한국에서의 오페라…. “제 음악이 공감하고 힐링할 수 있는 음악이라면 좋겠어요. 힘들 땐 같이 힘들어하고, 기쁠 땐 같이 기뻐하며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음악이요.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하면서 나를 잊지 않으려고요.”

고승희 기자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