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송승환 “보이지 않아도 들리니…무대에 서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
여덟 살에 아역 데뷔…연기, MC, 제작 ‘캐릭터 부자’
9년 만에 ‘더 드레서’로 연극무대 복귀
갑작스럽게 찾아온 시력 저하…“안개 낀 듯 뿌연 세상”
보이지 않는 대신 들리니 배우로 인생3막
“총칼 없는 전쟁의 시대…문화가 치유제될 것”
배우이자 제작자, 연출자, 기획자인 송승환은 최근 9년 만에 복귀한 연극 ‘더 드레서’를 통해 관객과 만나오다 코로나19 3차 유행으로 공연을 중단했다. 그는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진 때에 문화가 치유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전 세계 57개국 310개 도시를 사로잡은 ‘난타’가 태어난 PMC프러덕션은 유달리 전망이 좋다. 11층 사무실에선 대학로의 겨울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극장의 위층에 자리한 덕에 매일 저녁 북적이는 인파와 함께 하루를 마감하던 일상이었다. 이제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넓은 사무실은 올해 내내 불이 꺼졌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출근하는 직원이 없기 때문이다. 배우이자 PMC프러덕션의 대표인 송승환(63)은 요즘 이곳을 혼자 지킨다.

무대는 그의 인생이었다. 무대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빛나는 명장면이 쏟아졌다. 사무실 한켠엔 무대에서 보낸 그의 역사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열한 살에 출연한 1968년 ‘학마을 사람들’로 수상한 최연소 동아연극상 트로피부터 1998년 ‘남자 충동’을 통해 제작자로 받은 동아연극상 작품상 트로피가 나란히 서있었다. 공연계에 남긴 굵직한 그의 행보도 함께였다.

‘난타’는 이미 지난 3월 공연을 멈췄으나, 제작자가 아닌 배우로서 무대가 멈춘 상실감의 크기는 또 달랐다. 완연한겨울, PMC프러덕션 사무실에서 만난 송승환은 연극 ‘더 드레서’가 공연 도중 중단되자,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첫날은 당혹스럽고 허탈했고, 둘째날부턴 화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송승환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영국의 한 지방 극장에서 연극 ‘리어왕’을 올리던 노배우 ‘선생님(Sir)’ 역으로 9년 만에 관객과 만났다. 55년 연기 인생에서 배우 역할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극은 공습 경보가 끊임없이 울리는 전쟁의 위험 속에서도 공연을 이어가는 무대 안팎의 이야기를 담는다. 몰입도 높은 무대가 마치면, 관객들은 공연장을 나서며 “너무도 현실과 닮았다”는 후기를 내놓는다.

“지금도 총칼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까요. 연극에선 ‘버티고 살아남자’는 대사가 유달리 많이 나와요. 전쟁 못지 않게 힘들고 어려운 지금 상황을 배우들만큼 관객들도 느꼈던 것 같아요.”

송승환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마친 이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황반변성,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는 “지금은 뿌연 안개가 가득 찬 상태”로 “사람과 사물의 형체만 볼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 박해묵 기자

한 마디씩 곱씹는 그의 말소리에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이번 무대는 ‘인생 3막’을 시작한 그의 삶에 조금 더 특별한 의미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마친 이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황반변성,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다. “지금 제 눈엔 이 공간이 뿌연 안개가 가득 차있어요. 형체는 보이지만, 눈코입은 보이지 않아요. 글씨도 읽을 수 없고요.” 원인도 없이 찾아온 병은 치료법을 찾을 수도 없었다. 국내외 병원을 찾아다니며 검사를 했지만, 뾰족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러다 2018년 말에 병의 진행이 멈췄어요. 안개가 점점 짙어지다가 멈춘거죠. 더 짙어지면 아예 보이지 않는 건데, 얼마나 다행이에요.”

난데없이 습격해온 불청객으로 인해 그는 지난 시간을 돌아봐야 했다. 여덟 살에 연기를 시작해 청춘배우로 보낸 인생1막, 연출자·기획자·제작자로 무대를 진두지휘한 인생 2막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보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거나, 연출을 하는 건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연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대본을 읽을 수 없어, 듣고 외웠다. 1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듣고 또 들으니 다른 배역의 대사까지 완전히 외우게 됐다. 그는 모든 글씨를 소리로 듣는다. 보통 사람의 말보다 3~4배는 빠른 속도로 듣는 데도 완벽히 소화한다. “처음엔 저도 천천히 들었는데, 이젠 듣는 것에 익숙해져서 너무 느리면 답답하더라고요.”

시력이 흐려진 상태로 보내온 지난 2년 동안 그는 “보이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했다. “생각만큼 답답하지 않아요. 읽을 수 없는 것은 다 들을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안 보이나 보다 해요.(웃음) 대신 들으면서 교감할 수 있으니, 이 정도인 것만 해도 감사한 거죠.”

여덟 살에 연기를 시작해 청춘스타로, 제작자로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송승환은 그의 인생3막은 노역배우로 가꿔가고 싶다고 했다. 박해묵 기자

돌아보면 송승환의 인생 한 장, 한 장에도 ‘버티고 살아남은’ 기록들이 빼곡하다. “방송국과 연습장이 좋았던” 소년은 천부적 재능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청춘스타로 장르를 넘나들며 종횡무진했지만, 20대엔 “선택받는 직업”의 기다림이 싫어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는 “그때 그때 필요에 의해 시도하고 나아갔다”고 했다. “제작을 하다 보니 빚을 지게 되고, 빚 안 지고 제작하기 위해 넓은 시장으로 갔다”고 말했다. 전 세계를 호령한 ‘공연 한류’(난타)의 시작이었다. “배우는 축구선수가 슛을 넣고 세리머니하는 기분이라면, 제작자는 벤치의 감독이 선수가 골 넣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것과 같아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 공연 관련 단체장, 대학 교수까지 송승환의 이름 옆엔 수식어도 캐릭터도 넘쳐난다. 어느덧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그는 지난 영광에 취하지도 않았고, 새로운 길을 욕심내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회고했다.

“인생은 장애와 결핍이 있어야 재미있고, 발전도 하는 것 같아요. 톨스토이가 빚에 쫓겨 세계적 명작을 쓴 것처럼 제게도 한 때는 빚이 원동력이었어요.(웃음) 빚을 갚기 위해 연기도 하고, 제작도 했죠. ‘난타’가 잘돼 빚을 다 갚고 나니 허전하고 허탈하더라고요. 때로는 결핍도 장애도 창의력의 원천이 될 수 있어요. 지금도 대사를 들으며 남의 대사까지 다 외우니 얼마나 좋아요. 모든 일에 악재만 있는 것은 아니니, 그렇게 버티고 살아남는 거죠.”

젊은 시절의 열정을 뛰어넘는 또 다른 긍정의 힘은 송승환을 끊임없이 일으켜 세운다. “여러 역할 중 ‘배우’가 가장 잘 맞는 옷”이라고 했다.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3막’은 노역 배우로 열어볼 생각이다. 이번 연극 ‘더 드레서’도 출발인 셈이다.

송승환은 “인생은 장애와 결핍이 있어야 재미있다”며 “모든 일에 악재만 있는 것은 아니니 그렇게 버티고 살아남는 것”이라며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박해묵 기자

“내가 아닌 다른 캐릭터가 되기 위해 애쓰는 연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그런 만큼 재미도 크다. “대사 한 마디, 움직임 하나까지 수정하고 연구하기를 지금도 반복”할 만큼, 온 힘을 쏟는다. 무대 아래에선 한 장면 한 장면을 놓고 후배들과 곱씹기를 반복했다. 연습하고, 토론하는 긴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오르니 “진심 어린 관객들의 박수”에 벅찬 감동과 고마움이 절로 들었다고 한다. “연기도 하고, 제작도 하고, 좋아하는 걸 해봤으니 사실 후회는 없어요. 뭘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요. 대신 그때 그때 하고 싶은게 나타나더라고요. 기다림 끝에 이번 작품도 만났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야죠.”

지금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잠시 쉬어가는 공연들의 재개를 기다린다. 공연이, 문화가 “코로나로 황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큰 통증을 앓고 있어요. 마음의 병을 풀 수 있는 탈출구가 문화라고 생각해요. 이럴 때일수록 문화가 치유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sh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