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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석학·외교전문가가 재조명한 3·1운동…“윌슨 민족자결주의 기원설은 오독”
아리랑TV 특집 다큐 ‘3·1운동과 1919년 국제정세’

[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 아리랑TV가 3·1운동 102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3·1운동과 1919년 국제정세(March 1st Movement GLOBAL ANGLE in 1919)’를 3월 1일 방영해 주목된다.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세계적 석학 와다 하루키 교수, 한일 과거사 연구 전문가 조지워싱턴대 그레그 브레진스키 교수 등 국내외 전문가들이 세계사의 전환점이 된 3·1운동을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최초로 조명하고 3·1운동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서 비롯됐다는 그릇된 평가에 문제를 제기한다.

아리랑TV가 3·1운동 102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3·1운동과 1919년 국제정세(March 1st Movement GLOBAL ANGLE in 1919)’를 3월 1일 방영해 주목된다. [아리랑TV 제공]

▶3·1운동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오독

한국 항일독립운동사의 권위자 중국 푸단대 쑨커즈 교수는 “3·1운동이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로 일어났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오독”이라며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한국인들은 독립 쟁취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근대 이래 서양 열강의 침략과 압박을 견뎌온 중국은 한국의 3·1운동에 지지와 성원을 보냈으며, 특히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며 3·1운동이 중국의 항일 열정을 일깨웠다고 평가했다.

한국학 전문가인 러시아 과학원 동양학 연구소 벨라 박 교수 역시 당시 러시아에 보도된 신문기사 ‘한국은 15년 간 일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일본은 한국의 영토와 독립을 빼앗고 한국인들을 투옥시켰다’를 소개하며 3·1운동은 1905년부터 시작된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이었다고 평했다.

▶제국주의 전성기에 식민지 지배시대의 끝을 선언한 3·1운동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제국주의국들끼리 식민지배를 서로 보장한 영일동맹,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에 대해 언급하며 “그건 밀약이 아니라 공공연한 약속이었다”면서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 지배를 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한국인들이 전세계를 향해 선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3·1운동을 한마디로 “식민지 지배 시대의 끝의 시작”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패전국의 식민지 분할의 도구가 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조지워싱턴대 그레그 브레진스키 교수는 3·1운동을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며,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워 당시 식민주의의 굴레에서 고통받고 있던 세계 여러 지역의 사람들을 고무시켰는데, 윌슨은 그가 주장한 견해와 여러 면에서 모순되는 입장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파리강화회의에서 윌슨이 주장한 식민지국들의 민족자결권은 의제로도 상정되지 않았다며 이는 “당시 식민지주의 지배가 정치적 현실이었다”고 비판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연합국과 패전국인 독일제국이 체결한 베르사이유조약에서 승전국인 연합국 멤버들이 패전국인 독일제국의 식민지를 나눠갖는 데 사용된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정상수 강사는 “승자의 법칙이 작용된 것”이라며 “당시 5대 강국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일본은 표결권이 두 표씩이나 있었다”고 비판했다.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1919년 뉴질랜드는 영국 제국에 속해 있어서 한국 독립운동 보도에 큰 관심을 가졌는데, 불행히도 당시 영국 제국에 속해 있어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대가로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던 사모아를 분할받아 1962년까지 해당 지역은 뉴질랜드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던 불행한 역사”를 소개하며 ”뉴질랜드 정부는 2002년 정식사과를 했다“고 소개했다.

▶전세계 독립운동의 메타포가 된 3·1운동

구스타프 슬라메취카 주한 체코 대사는 “멀리 떨어져 있던 양국을 연결시킨 한 가지는 바로 독립과 자유를 위한 싸움”이었다면서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맞서 싸우던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서 발행한 신문 ‘덴니크’에 실린 3·1운동과 항일독립투쟁을 소개했다.

한국과 인도의 독립운동 교류사를 연구해 온 한국학 전문가 산토쉬 란전 인도 네루대 교수는 3·1운동 이후 일제의 보복으로 벌어진 제암리 학살 사건이 인도에서 보도되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제암리 사건이 1919년 4월 천명 이상의 인도인들이 영국군에 의해 학살된 ‘잘리안왈라 바그’ 학살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라면서 인도인들이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 각별한 연민의 감정을 가졌다고 말했다.

▶면밀한 국제정세 분석을 통해 계획된 3·1운동

동아시아 근현대 외교관계 전문가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1919년은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승전국들 사이에서 식민지에 관한 이권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국제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며 당시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국제정세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었다고 평했다.

항일독립운동사 전문가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그 일례로 “1917년에 신규식, 김규식, 조소앙 등이 주축이 되어 대동단결 선언문을 발표하는데, 이제 1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이 되니까 강화회의가 열릴 것이다, 그 때 우리는 대표를 파견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또 정부도 만들어야 된다, 그리고 국민적인 반일 운동이 거대하게 일어나야 한다”며 “해외 각처와 연계했다”고 소개했다.

▶냉혹한 국제질서가 작동되는 현재에 더욱 유효한 3·1운동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코로나가 오면서 명확히 드러났던 게 UN, WHO를 포함한 국제기구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며 냉혹한 국제질서가 작동되는 현재 3·1운동 정신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3·1독립선언서에 담긴 정신과 가치에 대해 언급하며 “3·1운동이 유구한 역사에 걸쳐 국가 간 평등의 가치 뿐 아니라, 적대와 억압, 권위주의를 탈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3·1운동 102주년을 맞아 방영되는 아리랑TV 특집 다큐멘터리 ‘3·1운동과 1919년 국제정세’는 오는 3월 1일 저녁 8시 아리랑TV를 통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방송된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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