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헤럴드광장] 보훈에는 국경이 없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양국 대통령의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노병에게 함께 무릎을 꿇어 존경을 표하는 모습이 찍힌 것. 자유와 평화를 위한 헌신을 예우함에 국경이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로 잘 알려진 미국 조지아주에서 국경 없는 보훈을 실감케 하는 일대 사건이 있었다. 미군에 한해 참전용사 자격을 부여하던 미국에서 동맹군으로 참전한 외국 출신 군인들까지 예우하는 법안이 상·하원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이다. 보수적 성향이 짙은 남부 조지아주에서 미국 최초로 이러한 변화가 시작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참전 용사에 대한 예우가 대단한 나라다. 우리의 국가보훈처와 같은 제대군인부는 연방정부에서 국방부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소속 직원만 34만명이 넘고 그 정책 대상은 제대 군인과 가족을 포함해 2670만명에 달한다.

지방정부는 주별로 ‘베테랑(Veteran)’이라는 단어와 성조기가 새겨진 운전면허증과 차량번호판을 발급해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그런데 왜 하필 자동차번호판일까? 모두가 보는 곳에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군인의 표식을 새기는 것, 이것은 단순한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그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것이 진정한 보훈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조지아주에서는 우리 교민의 노력으로 한국전쟁부터 아프가니스탄전쟁까지, 미국의 동맹군으로 참전한 모든 군인이 이러한 예우를 받게 됐다.

특히 이민자들에게 베테랑이 된다는 것은 이제는 이방인이 아닌 사회의 존경받는 구성원이 됐다는 의미가 있어 더욱 뜻깊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연들이 발생했다. 미국 ‘베테랑’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참전 확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오래전 고국을 떠난 고령의 참전용사들은 국내에 도와줄 친인척도 없었고 인터넷을 이용하기도 어려웠다. 설상가상 코로나19가 유행하며 아흔이 넘은 한 참전 용사는 그토록 원했던 ‘베테랑’ 인정을 포기하고 눈물을 훔쳤다.

교민의 사연을 들은 국민권익위는 수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참전 사실이 적힌 영문 병적 증명서를 조지아주로 보냈다. 지금까지 베테랑 면허증과 번호판을 발급받은 우리 교민은 약 100명. 그중 44명이 국민권익위의 도움을 받았다.

한 참전 용사는 “고국이 나를 기억하고 나의 잊혀진 참전 기록을 꺼내 대한민국의 인장을 찍어 보내줬다. 생전에 얻을 수 없는 영광이었다.”라는 소감을 보내왔다. 그리고 현재 국민권익위는 학도병을 포함한 참전용사 5명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나라를 위한 희생에 보답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는 그들이 조국을 떠났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한 참전 용사들에게 “나에게는 내 조국 대한민국이 있다”라는 자부심을 드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위 질문에 당당히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를 위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 그곳에 국경은 따로 없다.

이정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oskymoo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