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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 설] ‘묻지마’식 대출 조이기에 현실화된 주택 난민

정부의 강도 높은 일률적 가계대출 조이기가 가을 이사철 전세·대출 난민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4년간 전국적으로 집값·전셋값이 치솟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은행권 대출이 막히면서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가 어려워지고,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서민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청와대 게시판 등에는 대출을 못 받아 새 아파트 입주나 청약 당첨을 포기하는 사람들, 전세 계약이 어그러지거나 사채까지 융통하는 등의 사례가 넘쳐난다. 경기도 남양주의 24평 공공분양 아파트에 다음 달 입주하려던 50대 가장은 “현실을 모르는 정부 정책이 서민들을 고금리 사채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고 적었다. 대출 규제로 어려움에 처한 서민들의 처지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패러디한 글도 회자된다.

1800조원으로 불어난 가계대출이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부상한 만큼 정부가 선제적인 관리에 나서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올해 5∼6%, 내년 4%로 정한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탓에 부작용이 크다. 3호 인터넷은행 토스뱅크는 지난주 출범하자마자 대출 영업을 중단할 처지에 놓였다. 금융당국이 올해 신용대출 총량(5000억원)을 정해줬는데, 출범 나흘 만에 60%를 소진한 것이다. 시중은행 가계대출도 곧 ‘셧다운(전면 중단)’될 형편이다. 주요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은 7일 현재 4.97%로, 목표치(5∼6%)의 턱밑까지 차올랐다. 이미 목표치를 넘겼거나 한도에 육박한 은행들이 잇달아 대출을 제한하면서 ‘대출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대출자들이 찾는 저축은행, 상호금융, 카드사 등 제2금융권도 당국의 압박에 대출 축소에 나섰다. 대부업체도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대출을 조이고 있다. 여기서도 돈을 구하지 못한 취약계층은 고금리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대출 총량은 잡힐지 몰라도 대출의 질은 더 악화되는 셈이다.

2002년 이후 가계대출 증가율이 6%를 밑돌았던 적은 2004, 2012, 2018, 2019년 네 번뿐이다. 여전히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인데 전 금융권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대출을 틀어막는 게 올바른 해법인지는 의문이다. 당국은 이달 중순 전세대출 규제를 포함한 가계부채 추가 대책을 발표한다. 치솟는 집값이 잡히지 않는 한 대출 수요는 줄어들기 힘들다. 무차별적인 대출 총량 관리보다는 주거비 부담이 급증한 무주택자와 긴급 생활자금이 필요한 서민, 자영업자 등을 배려하는 정교한 ‘핀셋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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