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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훈의 매크로뷰]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부쳐
박종훈 SC제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3개월 소비자물가가 5%를 넘었고 지난 9월 유로 지역에서는 13년 만에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반면 올해 초 강한 반등을 보이던 경기는 코로나 델타 변이 확산으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미국의 고용률은 지난 8월과 9월 급속하게 둔화됐고 공급 병목현상은 에너지 가격을 상승시키고 유럽과 중국의 생산라인을 멈추게 하고 있다.

많은 시장 참여자들은 현재의 경제 현상이 1970년 경험한 스태그플레이션과 닮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지만 이런 우려는 과하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델타 변이로 경기의 성장세가 둔화되긴 했지만 미국, 유럽 등은 올해와 내년 견고한 경제 성장을 할 것이라 본다. 백신 보급이 임계치를 넘어가면서 위드코로나 경제 체제로 많은 국가들이 변하고 있다. 코로나로 빚어진 공급망 이슈도 중장기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낳은 공급 부족의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이며 또한 대체 에너지가 1970년대와 달리 다양하다는 측면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낮게 본다.

그럼에도 요즘 대두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관심을 갖고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리스크에 대비해야 할 이유는 많은 것 같다.

첫째, 시장은 늘 과도하게 반응한다. 과도한 반응은 시장의 변동성을 야기하고 그 기간이 상당히 지속될 수 있다.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지 않더라도 시장 참여자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라면 그 가능성에 대해서 지속적 점검이 필요하다.

둘째, 코로나 극복 이후의 미래 청사진을 그려가는 규제의 변화가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화석연료 의존도를 급격하게 줄이면서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물가가 상승하는 이른바 ‘그린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빠르게 진행되는 규제 변화는 공급발 인플레이션을 구조적으로 유발할 수 있다.

셋째, 통화량 증가를 통해 재정을 확대하면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소비 진작을 위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면서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에도 움직이지 않던 물가가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향후 발권력을 통한 재정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듯하다.

넷째, 블랜차드나 서머스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존슨 대통령 시절의 베트남 전쟁과는 형태만 다를 뿐 강력한 경제 부양책을 통해 국내 소비를 진작하고 실업률을 자연실업률 아래로 빠르게 떨어뜨림으로써 고통스러운 물가 상승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비록 역사가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비슷한 형태로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시장 참여자들의 경기심리 압박으로 소비와 투자를 둔화시켜 경기를 악화시키는 자기성취예언(self-fullfiling prophency)의 누를 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과도한 우려는 피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지나치게 재정을 확대하며 유효수요를 강조한 우리 정책에 문제점이 없는지는 다시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빈부 격차의 심화와 기업간의 불균등 성장 문제를 환경 규제 강화와 기업 활동 규제로 해결하려는 방향이 맞는 것인지, 그리고 새로운 규제 도입으로 확대되는 정부의 역할이 오히려 기술발전을 저해하고 공급 혁신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 초반까지 경제 성장을 이끌던 케인즈학파의 경제이론은 스태그플레이션을 만나 경제학의 주류에서 20여년 간 멀어진 적이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극복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기업의 자율을 높여 공급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이론이 1980년대 이후 금융위기 직전까지 케인즈학파를 밀어내고 경제학의 주류로 우뚝 섰다. 하지만 지나친 신자유주의적 접근법은 금융위기를 예견하지 못하고 이를 제대로 극복하지도 못하는 과오를 범했다. 경제 정책이 한쪽으로 치우친 채로 오랫동안 지속되면 또 다른 형태의 위기를 불러오는 것 같다.

경제학은 항상 보편 타당하지 않기에 실현 가능성이 낮은 리스크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nature6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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