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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에 살아 불행하십니까?”[부동산360]
경기도 인구, 경제규모 서울 앞서
‘경기공화국’ 불릴 정도로 급성장
집값 상승폭도 서울 앞서는 곳 많아
“서울에서 독립된 자립도시로 발전”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저 먼저 일어날게요.”, “왜, 벌써 가게?”, “막차 시간이 다 돼서...”

최근 방영을 시작한 토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직장인 염미정은 회식자리에서 늘 먼저 일어난다. 사실 그는 회사에서 지원하는 동아리 모임도 나가지 않는다. 집이 멀어서다. “집이 어딘데?”, “산포시오.”, “용인 쪽인가?”, “수원 근처요.”

미정의 오빠인 창희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가장 큰 이유가 경기도에 살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이렇게 하소연한다. “걔가 경기도를 뭐랬는줄 아냐?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내가 산포시 산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산포시가 어디 붙었는지 몰라. 어차피 자기는 경기도에 안살건데 뭐 하러 관심 갖냐고 해. 하고 많은 동네 중에 왜 계란 흰자에서 태어나갖고...”

이제 4회까지 방영됐는데 주인공들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지치고 쓸쓸한 표정으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내려,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타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삼남매 중 장녀인 기정은 “우리가 서울에 살았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자문한다. 불행한 삶의 가장 큰 배경이 경기도민이라는 것이다.

드라마를 본 경기도민 중 불편한 사람이 있었나 보다. 각종 포털 게시판, 블로그 등엔 “경기도 비하 드라마냐”라는 반응도 꽤 나온다.

JTBC 드라마 〈나의해방일지〉 포스터 한 장면. [나의해방일지 홈페이지 캡쳐]

경기도에 대해 중심부 서울을 둘러싼 주변부라는 인식은 정당한 것일까.

객관적인 지표를 찾아봤다. 일단 경기도는 서울보다 규모가 더 크다. 2021년12월 기준 경기도민은 1356만5440명이다. 서울시민(950만9458명)보다 400만명 이상 많다. 최근 6년간 서울에서 경기로 빠져나간 인구만 340만명이 넘는다. 매년 50만~60만명 규모다. 창희의 헤어진 여친이 경기도에 살 일이 없다고 했지만 모를 일이다. 경기도로 빠져나가는 주요 연령대는 20~30대다.

감사원이 인구추계 및 사회이동까지 고려해 미래 인구 추이를 산정한 결과, 경기도는 17개 광역지자체중 유일하게 인구감소와 소멸위기를 버티는 곳이다. 경기도에서 하남, 김포, 광주, 화성, 양평은 2067년까지 인구가 늘어나는 ‘이변 도시’로 예측됐다. 수원, 고양, 용인 등은 전국 평균보다 감소폭이 덜하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상도시 산포시는 수원시 옆이라고 묘사된다. 화성, 용인 정도 위치란 이야긴데, 미래에도 인구소멸을 겪지 않을 곳이다.

은퇴자도 경기도를 선호한다. 직방이 지난해 10~11월 ‘은퇴이후 희망하는 거주지’를 조사한 결과 1위는 경기도였다. 설문 응답자 1323명 중 35.4%가 경기도에 살고 싶다고 했다. 서울은 17%에 불과했다.

GRDP(지역내총생산)도 경기도가 서울을 능가한다. 경기도 GRDP는 486조7000억원(2020년 기준)으로 서울(440조3000억원)을 한참 앞섰다. 2014년부터 경기도 총생산(352조원)이 서울(341조원)을 앞서기 시작해 격차를 더 벌이고 있다. 2020년 실질성장률만 따져도 경기도는 5.1%인데, 서울은 마이너스 변동률(–0.1%)을 기록했다. 경기에선 신도시 개발과 대기업 사업지 이전 등으로 신규 일자리가 계속 창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값 상승폭도 서울을 앞서는 경기도 지역이 많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2017년3월부터 올 3월까지 5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62.25% 올랐다. 이 기간 경기도 의왕(72.57%), 성남(72.46%), 광명(72.12%), 수원(65.34%), 부천(64.95%) 등 주로 경기 남부권 지역 중엔 서울보다 더 오른 곳이 많았다.

인구 전문가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경기도가 서울 의존형 도시에서 ‘직주자립형’으로 바뀌고 있다”며 “경기공화국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노른자 서울을 둘러싼 흰자 경기가 아니라, 이미 서울에서 ‘해방’된 자립도시로 성장했다는 진단이다.

수도권에서 경기도가 서울의 ‘외곽’이라는 서울 중심주의를 벗어난 사례로 광역 고속국도 명칭이 변경된 사례도 있었다. 2020년 9월1일부터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로 변경된 일이다.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경기도가 서울의 변두리(외곽)라는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 수도권 중심축이라는 현재 위상을 거듭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민 중에 실제로 미정 삼남매와 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서울에 살면서도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과 같다. 경기도는 죄가 없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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