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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 조광조와 이율곡의 교훈

모든 정부가 출범하면 첫 번째로 내세우는 모토는 개혁정책이다. 개혁의 목표는 ‘정의로운 국가는 무엇인가, 모두가 공정하고 잘 사는 정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결방안이다. 기존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고정개념과 철학적 대립이며, 한편으로 기득권화 세력에 대한 이해관계 재분배를 위한 경제적 문제다.

근대 지성사의 전환점으로 아이삭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꼽을 수 있다. 종교가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 뉴턴은 수학을 통한 우주질서의 새 원칙을 증명했다. 다윈은 모든 생명체가 신의 피조물이라는 기독교 교리를 거부한 혁신적 성찰을 펼쳤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진화론을 발전시켜 인류의 역사적 발전을 변증법이라는 ‘정반합’(테제·안티테제·종합테제)으로 발전시켰다. 반면 동시대에 중국과 한국 등 유교문화권은 천지인(天地人, 하늘과 땅과 사람은 하나)이라는 인성론적 철학에 빠져 서구로부터 침략과 수모를 겪기도 했다. 최근 수십년 동안 한국의 대통령선거 이후 새 정부가 출범할 때를 보면 직전 정부의 정책을 전부 부인하는 이른바 ‘안티테제와 종합테제’를 반복하고 있다. 문제는 ‘정반합’에 의한 역사적 발전이 아니라 후퇴를 가져오는 실패한 정책이 양산된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위대한 개혁가이자 유학자인 조광조와 이율곡의 역사적 개혁 사례를 생각해본다. 조광조는 중종 임금 때 우수인재를 뽑는 ‘현량과’ 과거시험을 통해 관리로 등용됐다. 중종은 조선 건국 100여년 후의 인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혁명을 통해 집권한 임금이다. 당시 여건은 개국공신인 훈구파, 이들과 외척을 맺는 척신세력이 기득권화돼 토지제도의 문란 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노출되던 시기다. 내부적으로 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개혁정책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성리학으로 이론을 무장한 향촌세력과 중산층 지주 출신의 새로운 엘리트 관료들이 훈구파와 척신세력의 부조리에 대항해 개혁파인 사림(士林)세력으로 성장했다. 조광조 등 개혁소장파의 요구사항은 매우 급진적이었다. 소득분배를 위해 토지소유의 상한선인 한전법(限田法)을 제시하거나 중국 송나라 주자(朱子)의 향약(鄕約)을 그대로 조선에 시행함에 따라 현실과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주장 등이었다. 이는 중종을 포함한 구세력의 반발을 일으킨다. 결국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누명을 씌워 사약을 내린 기묘사화 발생으로 5년의 개혁이 끝난다.

조광조보다 54년 뒤에 태어난 이율곡은 누구보다 조광조의 이상사회 개혁 실패를 아쉬워했다. 이율곡은 “일을 추진하면서 점진성이 없고, 너무 날카롭게 앞으로만 나가려고 했다”면서 조급성을 실패의 원인으로 보았다. 이율곡은 조선의 후퇴기로 접어든 16세기 후반 경륜가로서 임진왜란을 예측하고 전비증강 등을 주장했으나 임란 발생 전에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개혁안을 진언하고 변법경장(變法更張)을 주장했다.

조광조와 달리 민생문제 해결이 우선이고, 도덕은 다음이라는 ‘선부후교(先富後敎)’를 주장했다. 사족 외에 능력이 있는 평민과 서얼 출신의 관리 등용을 주장(향후 정조 때 시행)한 것으로 비롯해 지방관아 서리에 대한 녹봉 지급(조선시대는 서리에 대한 급여가 없어 부패의 온상이었다), 사창제(社倉制) 실시를 통한 빈민구제 강화 등을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의 개혁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도약과 역사적 진보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현대는 초다원적 사회로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의 조정이 어려운 여건이다. 조선시대처럼 소수의 사대부 엘리트에 의한 개혁은 어렵다.

정치세력화·이념화된 수많은 시민단체, 노동단체의 기득권 세력과 타협도 힘든 과제다. 단기성과에 조급한 책사(策士)형 엘리트보다는 복잡한 시대 변화를 통찰하고 역사를 선도하는 이율곡 같은 전문가의 등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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