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 ‘3당합당’으로 ‘여소’ 돌파
DJ·盧·文 진보정부도 여소야대로 출발
일시적 정책 연대…의원 빼가기로 우회
‘정계개편 스페셜리스트’ 김한길 주목
민주, 8월 당대표 선출 때 분열 전망도
지난 1990년 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가운데)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오른쪽)가 청와대에서 긴급 3자회동을 갖고 민정, 민주, 공화 3당을 주축으로 신당창당에 합의했음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1.지난 1987년 12월 제 13대 대통령 선거. 노태우 대통령은 단일화에 실패한 김영삼(YS)·김대중(DJ) 후보를 누르고 승리를 거머 쥐었다. 하지만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은 정권 재창출 성공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위기를 맞는다. 노 대통령 취임 2개월 여만에 치러진 1988년 4월 제 13대 총선에서 전체 299석 중 125석(41.8%)을 얻는 데 그치며 과반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헌정사 첫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노 대통령은 각종 현안이 야당 주도 아래 처리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국회에서는 ‘5공 비리 청문회’가 열려 대통령과 여당을 압박했다. ‘물태우’란 조롱섞인 별명이 붙은 것도 이 즈음이다. 노 대통령은 답답한 여소야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그가 이끄는 민정당과 YS가 이끄는 통일민주당, 김종필(JP) 총재가 이끄는 신민주공화당과의 이른바 ‘3당 합당’ 추진이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YS와, 이전까지 늘 권력 중심에 있던 JP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3당 야합’이란 비난도 받았지만, 결국 1990년 2월 개헌선을 초과하는 216석의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민자당)’이 탄생한다. 여소야대가 한 순간에 여대야소 정국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민자당은 대한민국 보수우파 정당(현 국민의힘)의 뿌리가 된다. 합당 후 ‘한지붕 세가족’이란 말이 나올 만큼 극심한 계파갈등 부작용도 있었지만, 어쨌든 인위적 정계개편을 단행한 민자당은 1993년 대선에서 YS를 통해 다시 한 번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 |
#2. 윤석열 정부는 그보다 더 극단적인 여소야대 국면에서 출범했다. 노태우 정부 이후로도 여소야대 상황에서 임기 초반을 맞은 정부들은 적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단일 야당(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넘는 압도적 원내 제 1당인 경우는 흔치 않았다. 단일 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던 과거 마지막 사례는 DJ정부 임기 말(2002년 말)에서 노무현 정부 출범 후 1년(2004년 4월 총선 전)까지로 거의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검찰의 수사권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과정은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본격화된 ‘여소야대’ 정국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개정안 처리에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의원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이상섭 기자] |
더구나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허니문’ 기간도 없이 여야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졌다. 그 배경에는 역대 최소 표차(0.73%포인트)의 치열했던 대선,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지방선거,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드라이브 등이 있다. 근저에는 전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인물이 그 정권과 숱한 갈등을 겪다가 반대 진영으로 가서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이 자리한다. 여야 모두 입으로는 ‘협치’를 말하지만 ‘정권 견제냐, 발목 잡기냐’의 프레임 전쟁이 윤 정부 내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오는 2024년 제 22대 총선까지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입법권이 묶인 반쪽짜리 집권여당으로 보낼 공산이 크다. 아니면 과거 소수당이었던 집권당이 ‘야당 의원 빼오기’를 시도하거나, 제2·제3 야당과 정책 연대를 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정국을 돌파했던 사례가 재현될 수 있을까.
1996년 12월 19일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국민회의-자민련 합동송년회에서 김대중, 김종필 총재가 합창하고 있다 [연합] |
▶의원 빼오기·소수당과 정책 연대…과거 정부의 ‘여소야대’ 돌파 방식은
민주당 계열 진보정부는 매번 여소야대로 임기를 시작했다. DJ 정부 출범 때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통합민주당과 무소속 의원들을 흡수하며 160석대를 확보한 상태였다. 반면, ‘DJP연합’ 공동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합쳐도 122석에 불과했다. 하지만 국민회의는 한나라당과 국민신당 소속 의원들을 하나 둘씩 영입하며 의석 수를 불렸고, 자민련 역시 보수파 의원 영입을 이어가며 결국 공동여당은 총 157석 의석을 확보해 여대야소를 만들어냈다.
노무현 정부도 여소야대 정국 속 출범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1년여 만인 2004년 3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는 대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야권이 ‘탄핵 역풍’을 강하게 맞으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결국 2004년 4월 열린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 과반 의석을 얻으며 여대야소 반전에 성공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5월 여소야대 국면에서 취임했다. 다만 현 21대 국회와는 상황이 다르다. 20대 국회는 국민의당이 38석을 깜짝 석권했던 ‘다당제’ 국회였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이념 지향도 중도진보 성향을 띠던 시절이다. 이에 민주당은 국민의당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 야당과의 일시적 ‘정책 연대’에 나섰다. 2019년 하반기엔 바른미래당 일부와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등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 [연합] |
한편, 김영삼(YS)·이명박(MB)·박근혜 등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권은 대부분 ‘여대야소’ 정국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그나마 YS는 임기 중반이던 1996년 제 15대 총선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며 여소야대 상황을 맞았지만, MB는 출범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고 대통령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임기 말(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던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의 활약으로 임기 내내 과반 여당을 유지하는 행운을 누렸다. 박근혜 정부도 여대야소로 시작했다. 다만 임기 후반인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원내 제 1당을 내주는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졌고,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됐다.
지난 2009년 2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 및 중진의원 초청 오찬에서 나란히 자리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헤럴드경제DB] |
▶민주 분당(分黨)으로 인한 정계개편 시나리오도 일각서 회자
현 정국 상황에서 과거 정부가 여소야대를 돌파했던 사례를 그대로 윤석열 정부에 대입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과거처럼 국민의힘이 민주당 의원들을 빼오는 모습도 현재로선 상상하기 어렵고, 민주당이 단일 야당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국민의힘이 아무리 다른 소수 야당과의 연대를 한다 해도 돌파가 쉽지 않다. 다만 정치권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윤석열 시대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꾸준히 흘러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가 14일 인천시 계양구 임학동에서 열린 6·1 지방선거 사무소 개소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
일단 민주당의 자체 분열로 인한 분당(分黨)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이미 민주당 일각에서도 8월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한 분당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처럼회’로 대표되는 강성 개혁파와 함께 하는 ‘신주류’ 이재명계와,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에 가까운 ‘구주류’ 친문·친낙(친이낙연)계가 차기 당권을 놓고 극한 갈등을 벌이다 갈라설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차기 당 대표는 2024년 총선 공천권을 쥐기 때문에 6·1 지방선거 이후 계파 간 치열한 혈전이 예상된다.
앞서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공천 과정에서의 벌어졌던 잡음을 두고 이재명계와 반(反)이재명계 당권 투쟁의 전초전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만약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이재명계 일각에서 요구하는 ‘전당대회 룰 변경(대선 이후 입당한 권리당원에 투표권 부여)’까지 현실화할 경우 양측 갈등은 더 극심해질 수 있다.
김한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원장이 지난 4월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
▶尹대통령 정치 멘토, ‘정계개편 스페셜리스트’ 김한길의 존재
다른 한 편에서는 ‘정계개편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김한길 전 인수위 국민통합위원장의 존재가 정계개편 시나리오의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다. 김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정치 멘토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달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계 개편은 누가 인위적으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무르익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과 자주 교류하는 한 소수당 의원은 최근 10여 명의 의원들과 정계개편 관련 논의 테이블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있다.
반면, 정계개편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 쪽에선 민주당이 ‘반(反) 윤석열·한동훈·검찰공화국’ 전선으로 뭉쳐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이는 민주당이 지난 대선 때 계파 간 화학적 결합이 다소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 ‘원팀’ 모양새를 만들어준 원동력이기도 하다. 최근까지도 ‘문재인-이재명 지키기’라는 말이 나올 만큼 ‘외부의 적’이 더 위협적인 상태에서, 당내 갈등이 아무리 심화해도 민주당 내부의 전략적 연대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아울러 새 정부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안팎에 그칠 정도로 양 진영 간 대결 상태가 공고화된 상태라는 점도 정계개편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근거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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