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이해충돌 논란 청문회 진통
'지렛대론' 등장해 막판까지 수싸움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천신만고끝에 21일 임명됐다. 이로써 윤석열 대통령의 '1기 내각' 컨트롤타워가 채워졌다. 정치권 진통이 끊이지 않았던 한덕수 총리 지명부터 임명까지 48일의 기록을 돌아봤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
▶'올드보이'의 귀환…尹 "경제안보 책임자"=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달 3일 새 정부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한덕수 총리를 지명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정파와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정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한 분"이라고 한 후보자를 소개하며, 특히 한 후보자의 경제, 통상, 외교 분야 식견이 깊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또 "새정부는 대내외적으로 엄중한 환경 속에서 경제 재도약 기틀을 닦아야 하고, 경제와 안보가 하나가 된 '경제안보 시대'를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한 총리는 내각을 총괄·조정하며 국정과제를 수행해 나갈 적임자"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총리는 2008년 2월 국무총리 퇴임 전까지 공직사회에서 보수·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중용됐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대통령 경제수석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때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총리 재임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의 기반을 조성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지낸 ‘미국통’으로도 꼽힌다.
이에 지명 당시만 해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국민의힘 측은 국회에서의 무난한 인준을 바라봤다. 의석 절반 이상을 차지한 '거대 야당' 민주당도 노무현 정부 총리 출신인 한 총리의 인준에 흔쾌히 동의해 줄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총리 임명은 다른 국무위원 후보자들과 달리 국회 인준이 필요한데, 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의원 과반 찬성이 요구된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4월3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새 정부 초대 총리후보로 한 전 국무총리를 지명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
▶김앤장 고액보수·전관예우 논란, 검증 도마에=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 총리가 지난 2017년 12월부터 총리 지명 직전까지 4년여 동안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지내며 총 18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다는 사실이 지명 바로 이튿날 보도되며 고액 자문료, 전관예우 논란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그는 앞서 2002년 11월부터 8개월여간 김앤장 고문을 맡아 1억5000만원의 보수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인수위원회와 한 총리 본인 모두 "청문회에서 소상히 설명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언론의 취재로 추가 의혹들이 제기되며 논란은 지속됐다. 한 총리가 보유한 서울 신문로 단독주택을 외국계 기업에 고액으로 임대하며 국내 사업 편의를 봐 준 것이 아니냐는 이해충돌 의혹, 아내의 그림 판매가 프리미엄 의혹 등이 대표적이었다.
원일희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 수석대변인이 4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 기자회견이 끝난 뒤 한덕수 총리 후보자가 서명한 국무위원후보자 추천서를 공개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
▶'책임장관제' 천명했지만…=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한덕수 총리후보자 지명과 함께 띄웠던 '책임총리제'는 시동을 걸었다. 윤 대통령이 4월 10일과 13일, 그리고 14일 장관 후보자를 직접 발표한 자리에는 한 후보자가 모두 동행, 배석해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 추천권을 행사했음을 알렸다.
특히 장관인선 발표 첫째날 한덕수 총리가 자필로 국무위원 후보들의 이름을 쓰고 서명한 국무위원후보자 추천서를 제출한 문서가 주목받았다. 인수위원회 측은 “총리 후보자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추천권을 행사하는 데부터 책임총리제를 실현하겠다는 당선인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인수위 측은 총리지명자가 장관에 대한 인사추천권을 갖고, 향후 장관이 차관 인사를 추천한다는 '책임장관제'도 강조했다. 특히 "총리 지명자가 인사 제청에 대한 책임도 나눠가지는 구조로, 대통령과 총리가 인사에 있어서는 권한과 책임을 확실히 나눠가지겠다는 상징적 의미"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청문회 파행·연기…야당 총공세= 지난달 25~26일 양일간 진행이 예정됐던 한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부실 제출 논란 속에 민주당과 정의당 불참으로 파행됐다.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에 대한 첫 인사청문회가 파행으로 출발하며 시작이 좋지 않았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자료제출 미비에 항의하며 퇴장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양당은 "기본적 자료 제출은 고위공직자 검증의 대전제이지만, '개인정보제공 미동의, 사생활 침해 우려, 서류 보존기간 만료와 영업상 비밀이므로 제출이 불가하다'는 입장으로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일정 재조정을 요구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곧이어 이달 2일과 3일로 인사청문회 일정을 한주 미루기로 합의했다. 이때부터 정치권 안팎에서는 한 후보자 '낙마'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거론됐다. 다만 민주당은 이때까지만 해도 낙마 방침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며 '송곳 검증'을 벼렀다.
인사청문회 재개까지 한동훈 법무장관 당시 후보자와 정호영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 김인철 전 교육부장관 후보자 등 내각 주요 인선에 대한 검증과 방어 태세가 격화되면서 인준 방정식은 점차 꼬여 갔다.
2~3일 재개된 인사청문회에서는 한 후보자에 제기된 전관예우, 이해충돌 논란 검증이 주를 이뤘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총리와 고위 공직자들 사례를 일일이 거론하며 역공에 나섰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간사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한동훈·정호영 '연계설' 등장…尹 '협치' 강조= 한 총리 인준을 위한 본회의 개최가 늦어지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덕수 지렛대론'이 등장했다. 민주당이 한덕수 인준 가결을 무기로 한동훈·정호영 등 후보자 낙마를 압박하는 전략을 편다는 해석이었다. 다만 민주당은 "연계는 없다. 국민 눈높이에 맞춰 판단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회에서 진행한 2차 추경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인준 처리 협조를 직접 당부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 당선 전부터 협치와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한 후보자가 총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시정연설에서도 대통령이 '협치'를 강조하고, 이날 야당 의원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등 화합을 위한 모습을 보이자 야당 일각에서는 '가결'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이튿날 대통령이 야당이 극구 반대하는 한동훈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한덕수 총리 부결 기류가 민주당을 더 세게 휘감았다.
다만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에 이어 이재명 당 총괄선대위원장까지 나서 한덕수 인준 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기류는 점차 바뀌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목잡기' 프레임이 힘을 얻고 지지율 하락세가 두드러지면서 민주당의 강경 세력도 점차 누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 |
민주당은 결국 20일 오후 2시부터 약 3시간30여분 가량 비공개 의원총회를 진행한 뒤 한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가결하기로 당론을 모았다. 이후 6시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에 부쳐진 총리 인명동의안은 재석 의원 250명 가운데 찬성 208명, 반대 36명, 기권 6명으로 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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