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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강소기업의 유리천장] 관행이라는 ‘규제의 장벽’에 신음하는 혁신기업
국내 많은 중소기업, ‘규제의 장벽’에 어려움 겪어
피씨엘, 2020년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으로 선정
2018년 국내 업체 최초로 혈액선별기 개발
실적 등 이유로 미국 애보트에 밀려 입찰 탈락 위기
“적십자, 애보트 제품 반입 후 입찰진행…경고받아”
피씨엘 “적십자, 국내 업체 역차별” 의혹 제기
“‘포스트 코로나 선도 국가’ 되려면 규제 혁파 필요”

[반론보도문]

헤럴드경제의 보도에 대해 적십자는 5월 31일 “특정업체의 입찰을 방해하거나, 특혜를 준 사실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피씨엘의 혈액선별기 ‘하이수’ [피씨엘 홈페이지 캡처]

[헤럴드경제=특별취재팀 신상윤·손인규·박준규·정경수·김빛나 기자] 중소기업을 괴롭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규제의 장벽’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촘촘하게 얽어 놓은 규제가 투자를 받거나, 공격적 경영을 할 때 ‘암초’가 된다고 중기 경영인들은 입을 모은다. 규제는 지자체 조례는 물론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제 등 제도화된 것이 대부분이다.

비단 제도뿐만이 아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인습과 관행이 일종의 규제가 돼 중소기업을 옥죄기도 한다. 특히 세계 30개국에 특허를 내는 등 원천기술을 가진 ‘강소기업’이 이 같은 인습으로 인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진단업체 피씨엘 이야기다. 이 회사는 단 하나의 장비와 시약으로 최대 64개의 질병을 한꺼번에 검사할 수 있는 다중 면역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동국대 의생명공학과 교수 출신의 김소연 대표가 세운 회사다.

피씨엘은 지난해 11월 대한적십자사가 실시한 혈액선별기 납품 입찰에 미국 애보트와 함께 참여했다. 혈액선별기는 수혈한 혈액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B형 간염 등 감염병이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 등을 확인하는 면역검사 장비다. 해당 장비의 국내 물량 중 90% 이상은 적십자가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입찰이 공정하지 않다는 의혹에 있다. 애보트의 국내 법인인 한국애보트는 적십자혈액원에 혈액선별기를 올해까지 16년째 공급해 왔다. 실제 적십자는 지난해 7월부터 애보트의 신규 혈액선별기 ‘얼리니티 아이’ 21대를 설치, 신규 시약을 납품받는 중이다. 그러나 2018년 피씨엘이 국내 업체 중 최초로 혈액선별기를 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피씨엘은 2019년 5월 혈액 진단 전문 국제 워크숍 IPFA·PEI에 국내 업체로는 최초로 초청됐다. 자사의 시약만 사용할 수 있는 애보트 제품과 달리 피씨엘의 ‘하이수’는 LG화학 등 다른 업체의 시약도 활용할 수 있다. 해당 기업에 따르면 이 제품은 시간당 540개 검체를 검사할 수 있기에 시간당 200개 검체가 한계인 ‘얼리니티 아이’에 비해 시간당 검체처리량의 면에서 성능이 뛰어나다. 당시 워크숍에서는 이 업체의 혈액선별기가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바꾸리라는 예상까지 나왔다.

피씨엘은 자가검사키트 분야에서도 이름난 업체다. 이달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타액(침)을 사용할 수 있는 피씨엘의 자가검사키트가 120개국에서 온 VIP 참석자들에게 제공됐을 정도다. 이 같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2020년 7월 정부의 1차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숫자와 관행이 피씨엘의 발목을 잡았다. 스위스 로슈 등과 함께 연 5조원 규모의 글로벌 혈액선별기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애보트에 비해 피씨엘은 2020년 한마음혈액원에 1대를 납품한 것이 실적의 전부다. 10년 넘게 써 온 애보트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입찰에서 특혜를 줘 왔다는 의혹도 문제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2017년 감사원 감사 결과, 적십자는 입찰 사전규격공개 전 특정업체 평가용 장비를 부적정하게 반입했다는 이유로 기관경고 조치를 받았는데, 당시 애보트 장비를 미리 들여와 사용하면서, 입찰에 참여하게 한 이유였다”며 “현재도 적십자는 같은 의혹을 받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적십자가 또 다시 애보트의 손을 들어주려 하자 피씨엘은 결국 이를 근거로 지난달 기획재정부 산하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냈다. 결과는 이달 말 나올 예정이다.

김소연 피씨엘 대표는 최근 헤럴드경제와 만나 국내외 기업이 참여한 입찰이 잡음을 내는 데 적십자가 자유롭지 않다며 “국내 공공기관이 국내 기업에게 가점을 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역차별하는 게 아닌가”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피씨엘 관계자도 “적십자가 (자사의 장비를)사용해 주면 가격경쟁력이 있어 세계 시장 진출이 가능하다”며 “이번 입찰에 따른 기간은 5년이지만 한 번 연장할 수도 있어서 앞으로 10년은 (시장에)못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반면 적십자는 이 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적십자 측은 “혈액 안전성 확보를 최우선으로 면역검사 도입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특정 업체에 특혜를 제공한 바는 없다”고 했다.

실제 많은 중소기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치명타를 겪은 것일 현실이다. 지금은 중소기업들을 돕기 위해 관행 등 규제 완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박종구 초당대 총장은 “규제를 확 풀어 기업이 신명나게 뛰도록 해야 한다. 규제 혁파 없이는 ‘코로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포스트 코로나 선도 국가가 되기 위해서도 규제 혁파의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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