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어느 강소기업의 유리천장] “외국 기업 밀어주면서 기술력 가진 국내 기업 오히려 역차별”
피씨엘, 세계 최초 다중면역진단검사법 개발
“적십자사 혈액 면역검사 사업 입찰에서 불이익” 주장
“국내 기업 밀어줘야 글로벌 기업으로 클 수 있어”

[반론 보도문]

헤럴드경제의 보도에 대해 적십자는 지난 5월 31일 “피씨엘은 해당사의 다중면역진단검사법으로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알려왔습니다. 또한 “특정업체의 입찰참가를 방해하거나, 특혜를 준 사실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헤럴드경제와 인터뷰 한 김소연 피씨엘 대표 [헤럴드DB]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미국의 애보트·독일 지멘스·일본 후지레비오는 모두 자국 적십자가 키운 회사들입니다. 그런데 한국 적십자는 오히려 우리 같은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고 있어요.”

최근 서울 송파구 피씨엘 연구소에서 만난 김소연 피씨엘 대표(사진)는 아무리 생각해도 적십자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김 대표가 2008년 창업한 피씨엘은 세계 최초로 고위험군 바이러스(에이즈, 간염, 매독 등)의 항원·항체를 한 번에 여러 개 검사할 수 있는 다중면역진단검사법을 개발해냈다. 우리가 헌혈을 하면 그 혈액을 수혈하기 전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살펴보게 되는데 이 기술을 활용하면 더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의 혈액을 검사해 바이러스를 높은 민감도로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피씨엘의 이 기술은 아직 국내에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 4등급 허가까지 받고 해외 적십자에서도 우수하다고 인정한 이 기술이 아직 대한적십자 등 국내 공공기관에서는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라는 큰 벽이 존재한다. 외국에서는 수혈 사업이 공공과 민간이 반반씩 나눠 하지만 국내에서는 95% 이상을 적십자가 수행하고 있다. 사실상 적십자가 국내 혈액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셈.

문제는 적십자가 10년 넘게 외국 의료기기 회사의 장비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적십자는 혈액 면역검사를 위해 미국 애보트 장비 16대와 독일 지멘스 장비 13대를 설치했다. 이후 2016년 면역검사 시스템 노후 장비 교체 사업을 공고하고 입찰을 진행했다. 하지만 6년 동안 이 입찰 사업은 11차례나 유찰이 되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 배경으로 적십자의 요지부동 태도를 꼽았다. 그는 “입찰 평가를 앞두고 애보트의 장비가 사전에 설치되면서 불공정한 입찰이 진행됐다. 2017년 보건복지부의 특별 감사를 통해 문제점이 확인돼 적십자 관련자들이 경고 내지 징계를 받기도 했고, 매년 국정감사에서도 의원들을 통해 이런 문제가 지적됐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 제품보다 성능면에서 월등한데도 그동안 이득을 보는 것은 16년 이상 장비와 시약을 공급하고 있는 애보트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적십자가 조직적으로 애보트 장비를 밀어주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적십자가 설정한 면역 검사법으로는 애보트만 기준을 통과할 수 있었고 피씨엘의 장비는 탈락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 대표는 “적십자가 설정한 검사법으로는 우리가 떨어질 수 밖에 없으니, 이것이 부당하다고 감사원에 이의를 제기해 지난해 재개된 입찰부터는 참여할 수 있게 됐다”면서도 “이후 입찰 평가에서 사전설치된 애보트 장비로 추출한 검체를 사용하거나, 우리 시약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공공기관이 국내 기업에게 가점을 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역차별하는 셈”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적십자 측은 “절차대로 사전규격 공개시 피씨엘이 제출한 의견을 수용해 진행한 것으로, 감사원을 통해 규격이 변경되어 진행된 사실이 없다”며 “시약 훼손과 관련해서는 어떤 시약이 훼손됐는지 피씨엘이 증거와 설명도 못 하면서 일방적 주장만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대표는 “오랜 기간 애보트와 적십자 간 이해 관계가 얽히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게 그들만의 울타리를 쳐 놓은 것 같다. 애보트는 연구개발 활동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국내 모든 혈액 사업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는 적십자 직원들에 대한 관리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애보트는 전 세계 혈액진단 분야에서 우수한 회사지만 한국애보트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직 세일즈에만 집중하며 연구에는 단 1원도 투자하지 않는다. 2012년 국내 의료기기 허가 제도가 바뀌면서 신제품 허가를 위해 국내 임상을 진행해야 하니까 그걸 하지 않기 위해 전에 쓰던 장비만 공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수 출신의 김소연 피씨엘 대표는 유리천장에 막혀 세계적 기술을 개발하고도 고사할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헤럴드DB]

김 대표는 이런 부당함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 애보트 본사에 편지도 써보고, 적십자 앞에서 1인 시위도 해봤다고 했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입찰 사업에서 애보트 장비가 선택되면 앞으로 면역진단 시장에서 한국의 자리는 더 이상 없어질 것이란 위기감도 있다. 이번 입찰에서 계약 기간은 5년이지만 통상 한 차례 연장될 수 있어 10년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피씨엘 측은 “애보트의 장비에는 자사 전용 시약만 사용되기 때문에 이번 입찰에서 애보트가 낙찰되면 피씨엘 외에 국내에서 시약을 만드는 동아제약, LG화학도 더 이상 시약을 공급할 수 없게 된다”며 “전 세계 30조원에 이르는 면역검사시스템 시장에 국내 기업이 들어가는 동력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12번째 입찰이 진행되며 이번에는 공정하고 절차상 문제없는 입찰을 기대했지만 적십자는 입찰과 관련된 사항을 숨기거나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이런 주장이 나온 후 현재 국가분쟁조정위원회가 이 사안을 검토 중이다. 적십자는 “입찰과정에서 평가프로토콜 등 공개 가능한 자료는 모두 공개했다”는 입장이다.

김 대표의 전반적 주장에 대해 적십자 측은 “피씨엘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 있는 증거 자료를 확보하고 있고, (부당한 주장에 대해서는)법적 조치도 검토 중”이라며 “적십자사는 수혈용 혈액에 대한 검사 중단 없이 수혈자에게 안전한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신규시스템 도입을 위한 입찰 절차를 조속히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수(동국대 의생명공학과)의 길을 걷다 기업가가 되면서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경험한 김 대표는 국내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절절히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는 “기업이 새로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건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더 좌절하게 만드는건 그런 원천기술이 개발되더라도 각종 규제와 방해로 끝까지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교수들이 만든 회사는 거의 다 망했다. 정부의 규제를 어렵게 뚫었어도 다국적기업들이 그 기술을 헐값에 사간다거나 그게 안되면 로펌 등을 동원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아예 싹을 자른다”고 안타까워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결국 정부가 국내 기업을 도와주지 않으면 해외에도 나갈 수 없다. 기술 사대주의에 머물며 언제까지 해외 기업의 제품이나 기술을 카피(복제)만 해야 하나. 정책적으로 국내에서 개발된 기술과 기업을 지원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ikso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