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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옥건축가라고요? 우리 시대의 한국에 맞는 건축을 합니다.” [건축맛집]
어번디테일 텐들러 다니엘·최지희 대표 인터뷰
어번디테일이 설계한 서울 은평구 은평한옥마을 서희재의 모습. [훅스미 이상훈 제공]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따뜻한 온돌과 시원한 마루, 부드러운 곡선의 기와처마, 돌과 흙과 하늘을 품은 마당. ‘한옥’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서울 은평구 북한산 자락 은평한옥마을에 자리 잡은 ‘서희재’의 첫인상도 그랬다. 나뭇결이 살아 있는 기둥과 보는 목구조 특유의 따뜻한 기운을 풍겼고 용마루 너머로는 북한산의 산세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살짝 고개를 내민 누마루(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는 예스러움과 고즈넉함을 더했다.

그러나 전형적이지만은 않았다. 특히 내관은 누가 봐도 21세기의 주거공간이다. 멋은 살리되 불편함은 없앴다.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1.5층 구조로 공간 활용도를 높이면서 붙박이장으로 수납공간을 확보했고 전통 한식 목창호와 함께 시스템 창호를 적용해 단열 기능을 갖췄다. 주방도, 욕실도 모두 현대식이다. 그래서일까. 서희재를 설계한 어번디테일 텐들러 다니엘·최지희 대표는 서희재를 ‘한옥’이라는 말에 가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한국에 맞는 한국의 건축물’ 그 자체로 봐달라는 얘기였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을지로4가 어번디테일 사무실에서 만난 텐들러 다니엘, 최지희 대표는 “한옥건축가로 규정짓지 말아달라”고 했다. 분명 현대한옥을 짓는 건축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보수적으로 보는 분은 ‘조선시대 후기 한옥’만 한옥이라고 봐요. 그런데 한옥이라는 표현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생각해보세요. 아마도 근대에 외국의 것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현일 뿐입니다. 옛날엔 한옥이 아니라 그냥 ‘집’이었겠죠.”(텐들러 대표)

어번디테일 텐들러 다니엘 대표(왼쪽)과 최지희 대표.
어번디테일이 설계한 서울 은평구 은평한옥마을 서희재의 모습. [훅스미 이상훈 제공]

최 대표는 “꾸준히 문화재 한옥을 하는 분들은 있어야 한다”면서도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현대 건축에 우리 전통 건축의 공간을 접목하고 재해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란히 앉아 고개를 끄덕이던 텐들러 대표도 “한옥보다는 한국건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면서 “우리는 한국 문화유산을 담은 현대건축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두 대표가 현대한옥을 ‘한옥’이라는 경계에 가두지 않고 넓혀가겠다는 포부를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전통한옥에 대해 탐구해왔기 때문이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작업을 위해선 먼저 한옥을 제대로 해본 경험이 있어야죠.” 두 대표는 입을 모았다.

텐들러 대표와 최 대표는 한옥 설계로 유명한 구가도시건축에서 인턴과 신입사원으로 처음 만나 한옥에 대한 경험을 함께 쌓았다. 한옥이 좋아 무작정 건축을 시작한 텐들러 대표와 이런저런 도전과 방황 끝에 한옥이라는 제 옷을 찾은 최 대표. 그들의 출발은 달랐지만 방향성은 같았다. 전통 건축의 공간과 의미를 현대 건축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담아내는 것이다.

어번디테일이 설계한 서울 종로구 체부동 한옥의 모습. [훅스미 이상훈 제공]
어번디테일이 설계한 서울 종로구 체부동 한옥의 모습. [훅스미 이상훈 제공]

최 대표는 “한옥의 특정 형태가 들어가야 한다거나 규격화된 무언가를 따라야 한다기보다는 시대 생활상에 맞는 건축물에 한국적인 요소, 한국적인 특성, 우리 전통 공간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제가 좀 트렌디하지 못해요. 천천히 오래가는 스타일이죠.” 최 대표의 말에 텐들러 대표도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서로의 속도가 잘 맞았고 그렇게 올해로 13년째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텐들러 대표는 “어느 나라든 전통건축은 그 나라의 기후와 문화를 바탕으로 생기기 마련인데 한옥도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 맞춰져 있다”며 “더운 남부지방에서 생긴 여름의 공간 ‘대청’과 추운 북부지방에서 생긴 겨울의 공간 ‘온돌’이 만났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사회적 배경도 들어가 있는데 한옥을 마당에서 대청, 방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보면 대청은 시원하게 열려 있고 방은 완전히 폐쇄적이다. 한 집에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의 공간이 있는 것은 다른 나라 건축에선 찾기 힘든 특징”이라며 “현대건축에서도 이 부분을 잘 재해석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한옥만이 가지고 있는 공간의 비례감에 주목했다. 마당의 크기나 처마의 높이, 실내외 공간의 비율, 창호의 높이 등에서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한옥에는 크고 높고 넓어 사람을 압도하기보다는 조금은 작고 낮고 좁아도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휴먼 스케일’(사람 몸 크기를 기준으로 하는 척도)이 녹여져 있다고 했다. “한옥은 작아도 같은 평수의 양옥보다 넓게 느껴져요. 마당을 통해 자연까지도 집의 일부로 만들어 시선이 밖으로 향할 수 있게 돼 있어서죠.” 텐들러 대표는 덧붙였다.

어번디테일이 설계한 서울 은평구 은평한옥마을 서희재의 모습. [훅스미 이상훈 제공]
어번디테일이 설계한 서울 은평구 은평한옥마을 서희재의 모습. [훅스미 이상훈 제공]

두 사람이 그리는 현대한옥에 대한 이상향이 고스란히 담긴 집이 바로 서희재다. 기본 설계부터 인테리어 시공까지 두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 최 대표는 “건축주가 믿고 맡겨준 덕분에 우리가 그려왔던 공간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두 대표가 서희재에서 특히 좋아하는 공간은 누마루다. 전남 구례군에 있는 고택인 운조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텐들러 대표는 소개했다. 텐들러 대표는 “운조루 용마루 위로 산맥이 보이는데 너무 아름다웠다”며 “안방 끝에 작은 누마루를 만들어 문간채를 통해 북한산 자락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건축주는 물론 서울우수한옥 심사위원들이 좋아해 줘서 기뻤다”고 전했다. 서희재는 지난해 ‘올해의 서울 우수한옥’으로 선정된 바 있다.

어번디테일이 설계한 광교주택의 모습 [훅스미 이상훈 제공]
어번디테일이 설계한 광교주택의 내부 모습 [훅스미 이상훈 제공]

어번디테일은 최근 현대 건축물에 전통한옥의 공간 요소를 접목하는 작업에 특히 힘을 쏟고 있다. 텐들러 대표는 “낡은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하고 있는데 의도적으로 한옥을 모티브로 삼아서 만들려고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한옥의 요소요소가 녹아들어 가고 있다”면서 “다른 용도, 다른 규모, 다른 성격의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전통적 요소를 담아내 보고 싶다”고 했다.

주택뿐 아니라 최근에는 맥주양조장 신축 설계도 하고 있다. 최 대표는 “겉으로 봤을 때 ‘딱 한옥이다’ 이런 건 아니지만 나무 소재를 잘 이용하고 마당 공간을 통해 실내외가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두 대표는 어번디테일의 건축물이 ‘한옥’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맞지만 시대에 맞는 공간 자체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고 했다. 텐들러 대표는 “일본 현대건축을 보면 굳이 다다미방이 없어도 일본건축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냐”면서 “‘한옥’이라는 어떤 규격이 없더라도 한국만의 전통미가 느껴지는 한국건축을 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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