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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불청객’ 인플레이션이 들고 온 ‘빚 명세서’

결국 인플레이션이 문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온 세계가 요란법석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저금리와의 결별에 나선 것도, 경제를 살린다며 시중에 풀었던 ‘돈’을 급하게 거둬들이는 것도 모두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도 모자라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1.00%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는 등 유례없는 돈줄 죄기에 들어간 것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다.

인플레이션과 전쟁은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칼춤을 추는 것과 흡사하다. 작두에서 떨어지면 죽음(레닌은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통화 파괴를 꼽았다. 인플레이션 유발이다)밖에 없다. 설령 작두에서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칼춤을 추더라도 남는 것은 발의 상처뿐이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 중 하나는 ‘빚 명세서’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극약처방(급격한 금리인상)이 남긴 것은 눈덩이처럼 늘어난 이자 부담이다. 인플레라는 불청객이 어느 날 불쑥 ‘빚 명세서’를 쥐고 안방으로 들어온 셈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가계신용(부채) 규모는 1859조4000억원에 달한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지난해 말에 비해 22%포인트 하락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168.9%로, 높은 수준이다. 부채가 처분가능소득보다 1.7배나 많다는 얘기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를 보더라도 한국의 지난해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06.6%로, 최근 5년간 19.3%포인트 높아졌다. 41개국 중 홍콩(+25.5%포인트)을 빼면 상승폭이 가장 크다.

그만큼 가계부채는 한국사회의 고질병이다. 정권 대부분이 가계부채를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움직인 결과다. 가계부채는 부동산과 맞물려 있어 그 누구도 쉽사리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은 그나마 가계부채 규모를 늘리지 않는 것이었고, 대부분은 빚 폭탄돌리기를 했다.

빚더미에 짓눌린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는 이자 부담에 허덕인다. 금융감독원은 연 3.96%(3월 기준)였던 금융권의 가계대출 평균 금리가 7%가 될 경우 원리금 상환에 소득의 70% 이상을 써야 하는 대출자가 19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한다. 이 가운데 120만명은 소득의 90% 이상을 온전히 대출을 갚는 데 써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사실상 생계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빚을 권하는’ ‘빚에 의지해야만 연명할 수 있었던’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리인상은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그 부담이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돼서는 안 될 것”(14일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일 게다. 금융 당국이 모럴해저드 논란에도 125조원 규모의 민생안정대책을 내놓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더라도 민생안정대책이 남긴 여운이 썩 개운한 것만은 아니다. 이번에도 결국엔 금융권의 팔을 비틀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부터 형평성 문제까지 우려스러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정책은, 특히 민생 직결 금융정책은 정교함과 동시에 신속하고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혼란을 줄이고, 사회구성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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