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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시골살이와 치유의 일상

강원 산골은 벌써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창고 뒤쪽 경사진 과수밭에 듬성듬성 보이는 도라지들도 꽃은 지고 새 생명을 담은 씨앗 주머니를 키우고 있다. 아마도 내년에는 더 많은 꽃을 피우리라.

애초 도라지 씨앗을 뿌린 적은 없다. 이웃 밭에서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스스로 생명을 틔운 것. 처음 도라지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놀랍고 기뻤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후 성장 과정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고 오로지 자연의 도움만 받아 스스로 자라도록 내버려뒀다. 홀연히 날아와 숱한 고난에도 언제나 그곳에 있는 도라지를 볼 때마다 생명의 경이와 함께 치유를 얻는다.

올봄엔 꽤 떨어진 과수밭 외곽 쪽에서도 이 치유의 도라지를 만났다. 발도 없고 날개도 없지만 오묘한 생명의 씨앗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 조용히 널리 퍼진다. 이를 통해 치유를 얻을 기회 또한 그만큼 확산된다. 자연이 거저 주는 고마운 선물이다.

지난 늦겨울과 초봄 사이 집중호우에 대비해 집·창고와 경사진 과수밭 경계에 야트막한 축대를 쌓고 수로관을 설치했다. 이때 대추나무 한 그루가 굴착기 바퀴에 치여 줄기의 절반 이상이 찢기는 중상을 입었다. 살 가망이 없다고 거의 포기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아주 작은 새순을 낸 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에 감동해 찢긴 줄기를 비닐 끈으로 감아주었더니 다시 합체돼 지금은 왕성한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두 차례나 이식했던 또 다른 대추나무의 소생 과정은 더욱 극적이다. 초여름까지 새순이 나오지 않아 밑가지라도 살려보려고 나무 줄기의 윗부분(생장점)을 잘라내는 최후 처방을 했다. 그래도 살아날 기미가 없어 아예 손을 놓아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풀을 깎다가 문득 바라보니 앙증맞은 새순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 경이로운 생명력에 강력한 치유를 얻었음은 물론이다.

포도나무 한 그루도 그랬다. 죽었다고 포기한 포도나무에 온통 잡초덩굴이 뒤덮고 있어 예초기로 함께 제거하려던 순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예초기를 멈춘 채 가만히 손으로 잡초덩굴을 걷어내니 그 안에서 남몰래 낸 작은 가지와 잎이 “나는 살아 있다”고 외치는 게 아닌가!!

이런 생명의 오묘와 신비는 단순히 식물의 접목 친화성이나 강한 생존력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자연과 하나 돼 직접 지켜보면 과학적인 이해를 넘어 자연의 생명 기운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 생명에너지가 그대로 내 안에 충전되니 곧 자연 치유다.

올해 농사는 옥수수·감자·수박·호박·토마토 등을 심어 제법 거뒀다. 그중 옥수수와 감자는 검정비닐을 씌우지 않고 직접 김을 매주었다. 화학비료와 농약, 제초제도 일절 쓰지 않고 땅심으로 키웠다. 이렇게 자연에 맡겨 자생력으로 키운 감자와 옥수수를 먹어 보면 ‘음식이 보약’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지난해 귀농·귀촌인구가 4년 만에 다시 5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귀농·귀촌 전성시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러나 자연이 거저 주는 이 치유의 축복을 제대로 누리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될 수 있는 한 매일 자연과 만나 교감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라. 그리하면 치유의 일상은 내 것이 될 수 있으리니....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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