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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四色] 여행 만렙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우리는 이 잠언을 ‘뭐든 차근차근 하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였지만 정작 이 말을 꺼낸 노자는 그 뜻에 더해 ‘발품을 팔아 현장에서 해답을 찾으라’ ‘여행을 하며 경험을 쌓고 결국 자연법의 이치를 하나 둘 깨달으라’는 점도 강조한다. “좋은 여행자는 고정된 계획이 없고, 도착이 목적은 아니다”고도 했던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여행자다. 여행을 하면서 성인군자가 된 것이다.

문학가이면서 미술가이기도 한 헤르만 헤세는 대단한 여행가다. 헤세는 “여행은 헌신적 사랑의 마음으로 낯선 것에 귀 기울이고, 낯선 것의 본질을 끈기 있게 알아내려는 행위”라고 했다. 그의 팔방미인 재능은 여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 했다가 사진을 정리하면서 “웰빙의 파묵칼레와 웰다잉의 히에나폴리스의 공존... 아등바등 살 필요가 있을까” “초석잠 장아찌, 누에고치 닮았는데 참 맛있었지”라고 되새긴 매력들은 어느새 ‘착하고 맛깔나게 살자’는 마음으로 스며든다.

“여행을 마친 뒤 집에 돌아와 내 오래되고 익숙한 베개에 기대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여행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깨닫지 못한다”고 했던 임어당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여행기다. ‘세상사 웃음으로 푸는 문학가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인물인데 그건 유몽인이 가진 101가지 장점 중 하나일 뿐이다. 그는 대사간, 도승지, 한성부좌윤을 했던 언론과 행정 전문가다. 장원급제 직후 명과의 외교에 나섰고 나중엔 정부 일을 견제하다가 임금 비서실장, 수도권행정을 맡았다. 명청교체기, 국내 정쟁, 나라를 망국으로 이끈 능양군 이종의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사되기 전까지 유몽인은 국내외 여행을 다니며 민초의 이야기를 엮었다. 그가 급살당하는 바람에 여러 판본이 난무했는데 20여 버전마다 작게는 10편, 많게는 540여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민초 개개인의 일화들이다. 이를 범주화하면 충효, 덕의, 신앙, 교육, 문예, 의식, 벼슬길, 천지, 초목, 인류 등으로 동서양 웬만한 철학서적보다 큰 교훈과 세상 사는 재미를 품고 있다.

유몽인은 어우집에서 “옛 사람은 세상을 두루 유람하고, 한곳에 얽매여 사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는 말로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공자의 높은 학문과 세상을 보는 직관력은 여행, 즉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통해 성취됐고, 두보의 식견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좌천되는 바람에 천하를 두루 찾아다녔기 때문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의 여행론을 전한 강정화 경상대 교수는 “학생들과 마주하면 늘 여행에 나서라고 권한다.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말고 일단 나서라고 강권하다시피 한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 초롱초롱해진 눈빛을 볼 때마다 더욱 확신하게 된다”고 전했다.

여행할 때마다 우리는 새로 배우고 익히며, 낯선 것이 주는 시사점으로 나를 돌아보는 ‘셀프 여행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그래서 여행의 추억은 내 영혼이 길을 잃을 때 바로잡아 주기도 한다.

여행만큼 좋은 과외, 평생학습도 없다. 준비물은 심미안을 품은 눈, 걷기 좋은 운동화, 메모장과 볼펜 하나면 족하겠다.

매서운 태풍이 갔으니 가을이 짙어지겠다. 여행에 관한 한 가을은 ‘계절의 왕’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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