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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암이 달리던 ‘불의 숨길’...1만년 지나 ‘사람’이 걷다
제주 유네스코 세계유산 축전 10.1 개막
거문오름서 분출한 용암 큰 하천 이루고
덕천리 중산간 곳곳 생명수 ‘빌레연못’ 생성
지하동굴 만들며 월정 바닷가서 생마감...
용천동굴 찾은 유네스코 심사위원도 ‘탄성’
미개방 ‘불의 숨길’ 워킹투어로 생생 체험
문명 터 자리한 선흘·성산리 등 7개 마을
해녀 물질·정크아트·플로깅 등 행사 다채
거문오름 인근 벵뒤굴은 용암하천을 나온 용암이 갈 곳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듯 작은 동굴이 미로처럼 형성돼 있다.

팬데믹 와중,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보호캠페인 ‘익스플로링 월드 헤리티지’ 첫 회는 제주였다. 세계자연유산과 세계지질공원의 매력이 모인 제주도는 그만큼 세계적으로도 매우 소중한 곳이라는 뜻이다.

변화무쌍한 자연과 이에 적응하는 인간 문명의 만남, 자연과 사람이 아름답게 상생하는 모습을 제주가 가장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더 잘 하기 바란다”는 충고로도 받아들여진다. 한라산 형님의 호위 아래,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은 큰 용암하천을 이루고, 들판으로 나아가 덕천리 중산간에도 생명수가 고이도록 빌레연못을 여럿 만들어 주더니, 지하로 다시 들어가 동굴을 만들며 달리다, 결국 바닷물을 만나는 과정을 통해 문명의 터를 일궜다. 거문오름을 꼭지점으로 김녕리-월정리-행원리-성산리에 이르는 제주 동북의 부채꼴 지형은 ‘불의 숨길’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부채꼴 속 내륙에는 덕천문명, 선흘문명이 자리한다.

제주 만장굴 미공개(보호)구간 탐험.

▶유네스코 심사위원의 감탄=4.3사태때 주민들이 대피했던 곳, 드라마 ‘아스달연대기’, ‘킹덤’ 촬영지 벵뒤(너른 들판)굴, 웃산전굴은 용암분출지점, 용암하천과 가깝다. 검거나 검붉은 색의 용암교, 대림굴, 만장굴을 지난 이후엔 점차 삶과 생명의 흔적이 더해져, 용천, 당처물 동굴에 이르자 황금색, 회색빛 고드름으로 응결되는 석회동굴 특성까지 띤다. 용천, 당처물 굴은 긴 용접봉 같은 문명의 고드름을 촘촘하게 드리우며 아름답게 살아쉼쉬고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심사위원들이 용천동굴의 입구에 비친 모습만 보더니 용암과 문명이 빛어낸 아름다움에 반해 “더 안들어가봐도 되겠다”며 제주의 승리를 뜻하는 게임아웃을 선언했다. 마침내 자연과 문명이 연결된 지점, 김녕, 월정, 행원리에 이르자 B.C. 8000~6000년 용암의 길을 따르던 A.D. 2022년을 사는 사람들이 친환경 풍력발전기의 호위 속에 재잘거리며 다이빙하는 행복과 건강의 풍경을 목도한다.

해안과 아주 가까운 석회동굴인 당처물굴의 석순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연결 고리=자연과 동행하려는 의지가 실종돼 환경과 생태가 변하고, 그로 인해 숱한 변이가 양산되면서 지구촌 모두가 바이러스로 고생했는데, 지난 2년간 우리가 이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제주 화산섬 불의 숨길과 제대로 동행하지 못했다는 것도 적지 않은 아픔이었다. 1만년 전 쯤 제주도의 용암이 달린 지상·지하의 길을 2022년 사람들이 걷는다. 보호구역이라 개방하지 않던 곳, 걸음 마다 신비로움과 감동이 가득한 ‘불의 숨길’을 탐방하게 되는 것이다. 2년 만에 정상화된 세계유산축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총감독 강경모)’이 유산마을보존회(회장 이일형)의 주도로 오는 10월 1~16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지역으로 지정된 불의 숨길, 한라산, 성산일출봉 일대에서 열린다.

▶탐험=축전의 핵심 프로그램은 거문오름에서 시작해 용암의 흐름을 따라 월정 바다까지 제주 자연의 속살을 경험하는 ‘세계자연유산 워킹투어’이다.

이번 용암길 걷기엔 이미 예약을 마친 국민 7000명, 자기 마을인데도 보호벽 때문에 못가 본 7개 마을 주민과 문화예술 출연진 등 3000명도 참가한다. 이는 비공개 구간까지 들어갈 수 있는 공식 참가 인원이고, 예약을 못해도, 용암분출구와 가까운 1구간(시원 의 길), 2구간(용암의 길)을 제외하고, 문명이 일궈지기 시작한 해변 가까운 평지 3구간(동굴의 길), 4구간(돌과 새 새명의 길)과 성산일출봉 일대에선 축전 영역에 진입할 수 있다. 비공개 만장굴 2, 3에 못들어 가면 공개된 만장굴1에 가면된다. 시원(始原) 구간의 거문오름은 축전 기간을 제외한 때에 온라인 신청을 통해 갈 수 있다. 전문가급인 특별탐험대의 경우 1시간만에 매진을 기록했는데, ‘만장굴 전구간 탐험대’ 90대 1, ‘세계자연유산 순례단’ 50대 1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다.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덕천마을 빌레못 모산이연못.

▶문명의 터로 자유롭게 진입=선흘1리, 선흘2리, 덕천리, 김녕리, 월정리, 행원리, 성산리 등 세계자연유산마을 7곳은 ‘세계자연유산마을을 찾아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선흘 1리는 ‘선흘곶에서 생명의 숨길과 마주하다’, 선흘2리는 ‘찾아가는 유산교육’, 덕천리 ‘덕천리 자연유산 스테이’, 김녕리 ‘제주의 문화 해녀 그리고 어머니’, 월정리 ‘밭담: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 행원리 ‘제주의 바람을 품고 있는 행원’, 성산리 ‘수성화산 바다를 걷다’를 주제로 여러 체험이 펼쳐진다. 비예약자라도 유산마을에 놀러갈 수 있다. 이를테면, 덕천리마을 모산이 연못 등을 산책하고 그 마을 식당에서 토속음식을 먹는데엔 아무 문제가 없다. 마을 주민들이 만든 ‘기름떡’을 먹고, 연못가를 산책하며, 연못뒤 너른 들판에서 캠핑하고 공놀이도 할 수 있다. 양영선 덕천리 사무장은 “최근 드라마 ‘우영우’를 통해 유명해진 팽나무와 호수, 너른 들판에서 건강하게 놀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제주의 3다(多) 여자, 바람, 돌인데, 김녕리는 ‘해녀’, 행원리는 ‘바람’, 용암의 주류가 바다와 만나 드넓은 용암대지를 형성한 월정리는 ‘돌’로 이번 축전을 준비 중이다. 행원리는 외교의 달인 광해군이 조카 능양군의 쿠데타 성공 이후 유배되어 제주에 처음 상륙한 마을로, ‘광해 음식(유배 수라)’을 개발했다.

▶떡과 문화예술 동반, 플로깅도=김녕리마을에선 비예약자라도 해녀가 물질하는데 쓰는 태왁, 소장용 굿즈 미니태왁 만들기를 하고, 해녀와 동반 물질체험이 가능하다. 태왁은 부표와 그물망태, 해녀의 구명조끼 역할까지 하는 다기능 물질 장구이다.

고영희 김녕리 해녀는 “해녀옷의 변천과정을 보여주고, 초창기 해녀잠수복을 입고 사진 찍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국민들에게 전하려고, 요즘 일상적인 물질을 마치면 주민 (콘텐츠) 회의도 많이 한다”고 전했다. 김녕리에선 요트 체험도 할 수 있다.

평소처럼 입장료만 내면 들어가는 성산일출봉 주 무대에선 10월 15일 개막식이 열리고, 세계유산축전 홍보관과 정크아트, 뮤직 페스티벌 등도 만난다. 플로깅이 이어지고, 플라스틱 분해기, 재생용지가 사용되면서 지속가능성도 담보한다. 자연유산을 잘 지켜서 두 번 다시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하지 않도록 모범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부종휴와 꼬마 탐험대’의 만장굴 발견 이야기는 생생한 공연으로 전해지고, 폐사한 나무토막은 객석이 되며, 미술작품으로 그늘을 만든다. 축전 기간 중 2번의 화요일(10월 4,11일)은 ‘자연휴식의 날’로 운영하지 않는다. 제주 용암이 자연환경을 변화시키고, 그 속에 사람을 품어 문명을 일구도록하며, 지속가능하게 공생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거대한 예술이다.

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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