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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울림] 여행하지 않는 작가...스튜디오서 보내는 ‘평행우주’로의 초대
‘갤러리바톤’ 리너스 반 데 벨데전
‘따뜻한 창문으로 햇빛이 스미고...’
‘너바나’ 멤버의 찬란한 젊음 포착
한없이 연장하고 싶은 정지의 순간
Rinus Van de Velde, In the warm window filtered sunlight..., 2021, oil pastel on paper, 112 x 149.3 cm [갤러리바톤 제공]

두 젊은이가 단 잠에 빠져있다. 오전의 해는 창문을 두드리지만 깨우기엔 역부족이다. 피사체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한없이 부드럽고 조심스럽다. 리너스 반 데 벨데(39)의 ‘따뜻한 창문으로 햇빛이 스미고(In the warm window filtered sunlight ...)’다.

화폭에 담긴 두 젊은이는 커트 코베인과 크리스 노보셀릭이다. 작가는 커트 코베인을 오랜기간 흠모해 왔다고 고백한다. “코베인은 나에겐 늘 특별했다.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록스타로 경외와 존경의 대상이다.” 작가가 커트 코베인을 듣기 시작한 건 그가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이 작품은 레퍼런스가 있다. 사진가였던 JJ곤슨이 1989년 7월 16일 메사추세츠주의 워터타운에서 촬영한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그룹 ‘너바나’로 유명해 지기 직전의 모습으로, 곤슨은 “보스턴 그린스트리트의 공연 다음날 아침 내 아파트에서 찍었다. 그리 늦은 밤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지쳤고, 타고온 밴에서 침낭을 꺼내 펼쳐놓고 잤다”고 회상한다. 지난 밤 세계 음악계에 무슨 충격을 주었는지도 모르고 잠이든 평화로운 아침이다.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젊음이 아름답다. 끝내 스스로를 저버린 선택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피어나기 직전의 이 순간을 한없이 연장하여 보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이미지 아래에는 “따뜻한 창문으로 햇빛이 스며 들었고, 계속되던 그의 복통은 마침내 잦아들었다. 우리는 포그롬(19세기 러시아에서 벌어진 반유대주의 폭동과 학살), 상상 속 나라의 탄생,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을 선사한 추상 예술에 대한 꿈을 꾸었다.”고 적혔다.

리너스의 그림은 픽션이다. 단편적 장면이 아니라 섬세하게 조각된 하나의 세계관이다.

난해한 현대문학작품에 가깝다. 한 작품 한 작품이 소설의 한 챕터이자, 시의 한 구절이다. 이들 사이 연관성이란 차라리 시적 발화다. 논리를 접어두고 한 발 짝 떨어져 보면, 느슨한 고리를 통해 하나의 세계가 완성된다. 그 세계에서는 트레이딩 룸에서 고민하는 증권중개인인 작가와 외로움이 가득한 골목길의 전경을 그리는 호크니와, 시대의 아이콘인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공존한다.

개인적인 이유로 여행을 하지 않는 작가는 또 다른 현실인 ‘평행우주’를 탐구해 왔다. 그의 작업은 평행우주의 모습이기도 하다. “스투디오 벽 안에서 몇년째 나만의 소설을 구체화 하고 있다. 일종의 페이크 자서전이다. 밖으로 나가 여행을 가는 상상을 하거나 과거의 인물이나 아티스트를 만나는 여행을 그려본다”

시작은 목탄 회화였다. 차콜만을 사용해 특정 장면을 묘사하는 그의 흑백회화는 신문 보도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이 쉽게 ‘사실’로 인지하는 신문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며, 그의 작업은 핍진성을 획득한다. 사진 캡션처럼 보이는 아래 글귀는 장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저 작가의 독백에 가깝다. 관련이 없다고 관객에게 주지시킴에도, 우리는 글에서 힌트를 얻어 장면을 이해한다. 미디어의 이미지와 전달방식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처럼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믿게 만드는 것이 몇가지 트릭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에 착안, 영상과 설치작업으로도 확장한다. 실제와 허구의 간극은 이토록 가깝다.

최근엔 컬러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0여년 전부터 서양미술 대가들의 작업을 연구했고, 지난 봄 벨기에 앤트워프 보자르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을 시작으로 이 오일 파스텔 작업을 공개했다. 흑백회화가 보도사진을 떠올리게 한다면, 같은 포멧의 컬러작업은 인스타그램이 떠오른다. 보여주고 싶은 욕망과 보고 싶은 욕망이 충돌하는 스마트폰의 작은 창은 강력한 힘을 지닌 유사 현실을 끊임없이 제조한다. 작가가 창조한 평행우주로 떠나고 싶다면, 한남동 갤러리바톤 전시장을 찾아야한다. 11월 5일까지.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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