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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사] 부동산 급랭은 급등 이상 해롭다

‘샤워실의 바보’는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 Friedman)의 촌철살인이다. 샤워할 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려면 조금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데 그걸 못 참고 더운물과 찬물을 급작스럽게 틀어 온도를 못 맞춘다는 것이다. 정책효과가 나타날 때까지의 시차를 기다리지 못하는 정책당국의 성급한 태도가 경제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킨다는 비유다.

샤워실의 바보는 우리나라 부동산시장 상황에 적확하게 들어맞는다. 부동산정책 실패는 섣부른 정부 개입의 산물이다. 이전 정부였던 문재인 정부는 임기 후반에 총 24번의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시장과 싸웠다’는 평가 이외에는 다른 말이 필요 없다. 당시 정부는 ‘부동산 투기세력이 부동산 가격 급등을 가져왔다’는 확신을 가졌었다. 따라서 정책목표는 부동산 투기세력을 발본색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반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투기세력이 다 어디로 꼭꼭 숨었기에 지금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곤두박질치는가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투기세력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허수아비를 공격하느라 정책 역량을 소진했다. 사람들은 어떤 특정 재화 가격이 향후 오를 것으로 예측되면 더 오르기 전에 그 재화를 사고자 한다. 그 ‘어떤 특정 재화’가 예컨대 서울 강남 아파트라면 더 오르기 전에 선점하고자 할 것이다. 이를 투기행위로 볼 것인가? 그렇다면 가격이 하락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 기다렸다 더 싸진 다음에 구매하는 것도 투기행위여야 한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현재 행동을 결정하게 한다. 합리적 행동을 투기로 낙인 찍을 일은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지 않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으로, 다른 사람은 부동산 가격이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서 부동산 거래가 이뤄지고 부동산 가격이 형성된다. 이것이 정상 상태이다. 이전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이유는 예측이 한쪽으로 동조화되었기 때문이다.

‘영끌과 빚투(投)’는 젊은 세대의 무리한 부동산 투자를 압축 표현한 것이다. ‘나만 소외되고 있다’는 조급증(FOMO)이 그들을 부동산시장의 ‘사자세력’으로 내몬 것이다. 하지만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빚까지 내서 산 부동산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거품 경고를 무시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그들의 성급함을 나무랄 것인가.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나라도 아니다. ‘투기과열지구 지정, 주택거래 허가제, 대출 규제, 부동산세 인상’ 등 온갖 수요억제책으로 2년 사이 부동산대책을 24번이나 세우며 조급증을 부채질한 이전 정부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국의 부동산 급등은 ‘과잉 유동성과 특정 선호지역에서의 주택 공급 부족’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투기세력과는 무관하다.

샤워실의 바보 비유는 정책당국뿐 아니라 부동산 실거래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최근 부동산 가격 급락은 부동산 유튜버 발흥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공영방송이 노영(勞營)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신뢰를 잃자 그 빈자리를 유튜브가 메워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부동산 관련 유튜브도 약진했다. 부동산 유튜버의 순기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무한경쟁 속에서 구독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 지나치게 선정적인 내용을 내보내고 있다.

‘부동산 거래 멸종, 끝없는 추락’ 같은 선정적인 방송이 부동산 ‘사자 체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부동산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영끌족들 뜨거운 맛을 봐야 한다’는 식의 선정적 댓글들을 주목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묻지 마 사자’가 ‘묻지 마 팔자’로 돌변하는 것은 또 다른 샤워실의 바보 행태라고 할 것이다. 부동산 급락이 금융시장 부실로 전이되기 때문에 부동산시장 급락은 급등 이상으로 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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