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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 지금은 물가보다 경기침체를 걱정할 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달 기준금리를 6, 7월에 이어 3회 연속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8월 소비자물가(CPI)가 시장의 예상(8.0%)과 달리 8.3%로 밝혀지자 더욱 공격적인 통화긴축으로 들어간 것이다. 전형적인 정책실패 사례로 처음 샤워할 때 찬물이 나와 급히 뜨거운 물을 틀게 되면 너무 뜨거워 다시 찬물로 바꾸는 것에 빗댄 ‘샤워실의 바보’가 연상된다. 연준이 지난해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이라고 오판하고 오히려 양적 완화를 계속했다가 뒤늦게 금리인상 가속페달을 밟는 대가로 지금 전 세계가 패닉 상태에 빠지고 있다.

금리인상 직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경기침체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에 도달할 때까지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겠다며 성장을 포기하더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문제는 미국의 이런 정책이 미칠 세계적 파장이다. 미국이 큰 폭의 금리인상을 연속 실시하면서 달러의 몸값은 오르고, 이 여파로 다른 나라에서는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입물가 상승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져 사실상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의 금리인상 직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금융 발작이 발생했고, 외환시장에서는 각국 통화 가치가 속수무책으로 추락했다.

세계은행(Word Bank)은 지난달 내년 세계 경제가 범세계적인 통화긴축 기조로 성장률이 0.5%로 둔화해 침체의 나락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달 초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도 연준의 빠른 금리인상이 개발도상국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을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로 급격한 금리인상이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경기침체도 수출한다는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미국 경제도 달러 초강세 충격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난달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을 1%로 낮추고, 실업률은 내년 말 5.6%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해 경기침체를 기정사실화했다. 지난달 투자자문사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NDR)가 개발한 경기예측 모형은 내년 세계 경기침체 확률이 98%를 넘어섰다고 추산했다.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세계 경기둔화와 지난달 1440원을 돌파한 고환율로 무역수지가 25년 만에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8월 경상수지마저 4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 상승률이 두 달 연속 둔화해 물가상승세는 꺾였지만 상당기간 고물가 상황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주 뛰는 물가와 환율을 잡기위해 역대 두 번째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하지만 국내 금리가 치솟는 등 금융 충격이 현실로 나타나면 GDP 2.2배에 해당하는 민간부채 부실, 부동산 버블 붕괴 등 금융 불균형이 심화되고 투자·소비 위축으로 물가는 잡지 못하면서 경기만 급속히 냉각시킬 수 있다.

지금은 물가보다 급격한 경기침체를 막으면서 경제를 연착륙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1980년대 초와 같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다 깊은 경기침체와 신흥국의 부채위기를 초래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영국 사례에서 보다시피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기조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확장재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어렵다. 물가와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당분간 금리인상은 불가피하지만 그 폭과 속도를 조절해 경기침체에 미칠 타격을 줄여야 한다. 최근 인플레이션 양상은 과거와 많이 다르므로 인플레이션 목표치도 코로나19 이전 2%보다 높여야 한다. 여기에 맞춰 대내외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통화정책 속도를 조절하고 취약계층 지원을 강화하면서 경제를 연착륙시켜야 한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 전 금융통화위원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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