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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든지 20% 싸게 산다”...고물가시대 ‘변종 카드깡’ 우후죽순
‘어둠의 짠테크’ 대리구매 실태
중고거래·재테크 카페에 글 게시
카드·BNPL 결제 통해 급전조달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의뢰인과
현금 필요 대리구매자 이해맞아
금융당국, 개인간 거래 이유 팔짱
불법 사금융 대안되나 우려 증폭
전문가 “대부업법 적용 단속해야”

“소고기 1㎏ 삽니다. 가격은 80%. 카드나 소액결제 가능”

30대 전업주부 A씨는 최근 한 인터넷 카페에 이같은 제목의 글을 올렸다. 게시글에는 4만원 상당의 소고기를 구매할 수 있는 쇼핑몰 링크가 포함돼 있었다. 곧 ‘연락 달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댓글을 쓴 대리구매자 B씨는 해당 상품을 카드로 결제한 후, 배송지에 A씨의 주소를 입력했다. 이후 A씨는 4만원의 80%인 3만2000원의 현금을 B씨의 계좌로 보냈다. 거래는 완료됐다. A씨는 “대리구매를 통해 이번 달에만 약 10만원 가량을 절약했다”고 말했다.

다소 비상식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실제 성행하는 ‘대리구매’의 사례다. 대리구매는 물건을 싸게 사고 싶은 의뢰인과 현금이 필요한 대리구매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행해지는 일종의 ‘카드깡’이다. 최근 ‘짠테크’ 열풍이 불며 ‘대리구매’가 재테크 수단으로 확산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개인 간 거래라는 이유로 단속에 손을 놓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불법 사금융의 합법적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일종의 개인 간 ‘카드깡’...인터넷 카페 통해 산발적 성행= 대리구매의 이용법은 간단하다. 인터넷 카페에 사고 싶은 물품의 링크를 올리면, 당장 현금이 필요한 대리구매자가 카드 등 후불결제 수단으로 대신 구입한다. 이후 미리 약속한 비율에 따라 가격의 80~90% 정도를 대리구매자에게 송금하면 거래가 완료된다. 카드나 휴대폰 소액결제뿐만 아니라 BNPL(Buy Now Pay Later)도 자주 이용된다. BNPL은 카드 없이도 할부 결제를 할 수 있는 ‘나중결제’ 시스템으로, 가입 절차가 까다롭지 않아 카드 발급이 힘든 저신용자에 인기다.

대리구매를 해주는 이들은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다. 10~20% 가량 손해를 보지만 당장 현금을 쥘 수 있고, ‘카드깡’ 업체를 이용하는 것에 비해 수수료가 적고 간편해 이들 ‘대리구매업자’도 증가추세다. B씨는 “현금서비스 한도까지 모자랄 때면 대리구매를 이용해 현금을 확보한다”며 “카드나 휴대폰 소액결제를 현금화 해주는 업체들도 이용해 봤지만, 대리구매 수수료가 더 저렴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카드깡’이나 ‘휴대폰깡’ 업체들의 수수료율은 20~40% 정도로 알려져 있는 반면 대리구매의 수수료는 10~20% 수준이다.

대리구매는 주로 인터넷 카페를 통해 산발적으로 행해진다. 중고거래 카페부터 재테크·미용 등 다양한 성격의 커뮤니티에서 쉽게 대리구매 관련 게시글을 찾을 수 있다. 대리구매가 횡행하는 회원 수 5만명의 한 재테크 카페에는 일주일에 약 300개가 넘는 대리구매가 행해지고 있다. 거래 품목 또한 생필품부터 귀금속까지 다양하며 금액도 천차만별이다.

시스템도 제법 체계적이다. 이들은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본인인증을 필요로 하는 별도의 ‘안전거래’ 플랫폼을 이용해 현금을 전달한다. 카드나 쇼핑몰명, 소액결제 등 단어의 사용을 금지해 노출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

▶ ‘짠테크’ 노하우로 공유도...후불결제 부실 우려 커져= 대리구매는 최근 ‘짠테크’ 노하우로까지 공유되고 있다. 지난달 20대 대학생 C씨는 대학생 커뮤니티에서 대리구매 방법을 소개받아 애용 중이다. C씨는 “최근에는 겨울 이불을 80% 가격으로 구매했다”며 “해당 방법을 알게 된 이후에는 인터넷 쇼핑을 할 때마다 대리구매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금 유동성이 부족한 취약계층들이 대리구매를 불법 사금융의 대체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경기 악화에 따른 불법 사금융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5030건이었던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 건수는 지난해 9238건으로 두 배 가량 증가했다. 올해도 8월까지 6785건의 신고가 접수돼 월 평균 접수 건수 증가세가 지속됐다.

무분별한 후불결제가 연체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9월 말 7개 전업 카드사의 결제성 리볼빙 이월 잔액은 6조9378억원으로 전달(6조81000억원) 대비 1.9%포인트 증가했다. 리볼빙 잔액은 3월부터 증가세를 이어가며 연일 최대치를 달성 중이다.

▶손 놓은 금융당국에...“불법 사금융 대안 되기 전에 조치해야”= 각계의 우려에도 금융당국은 대리구매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다. 대부업체나 신용카드 가맹점 등 업체가 끼지 않은 개인 간 거래라는 이유에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르면 ‘카드깡’ 금지 등은 신용카드 가맹점에 대해서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개인 간 거래까지 금감원에서 모니터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이에 대해 “단순 개인 간 거래라고 해도, 반복될 시 현행법상 ‘미등록 대부업자’로 규정할 수 있다”며 “관련법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대부업법을 적용해서라도 단속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사금융 확산이 예상되는 상황인 만큼, 대리구매가 그 대안이 되기 이전에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광우 기자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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