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 필요없는 특별연장근로 허용 통한 허물기 지속
반도체·조선·해외건설까지 특별연장근로 사실상 '상설화'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틀은 유지하겠다”던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제’를 야금야금 허물고 있다. 올해 말까지 3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는 주 8시간 ‘추가연장근로’를 2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다, 사유와 기한을 엄격하게 제한한 특별연장근로를 기업 필요에 따라 늘리고 줄일 수 있도록 허용하는 ‘상설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근로시간이 네 번째로 긴 우리나라는 OECD에서 가장 많이 일을 하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7일 윤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영세업체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연내 추가연장근로 일몰제를 2년 연정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추가연장근로는 5~49인 사업장에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는 대신 3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노사 합의 시 주 8시간의 추가연장근로를 올 연말까지 허용하는 제도다. 정부가 밝힌 대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 2024년 말까지 30인 미만 사업장은 ‘주 60시간’ 근로가 가능해진다. 지난해 우리나라 취업자 2800만명 중 30인 미만 기업 취업자는 1800만명으로 전체의 68%에 달한다. 다만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부 계획대로 근로기준법을 바꿀 수 있을 지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정부가 시행규칙만 바꿔 근로시간을 늘릴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특별연장근로는 천재지변이나 그에 준하는 재해·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수습하기 위해 고용부의 인가를 받아 주 52시간을 넘겨 연장근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현재 특별연장근로 활용은 ▷재해·재난 수습·예방 ▷인명보호·안전확보 ▷돌발상황 ▷업무량 폭증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 등의 경우에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고용부 허가가 있을 경우 주당 12시간 이상 최장 3개월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인가 사유별로 최대 활용기간이 다른데, 돌발상황 수습과 업무량 폭증 사유로는 한번에 최대 4주까지 쓸 수 있고, 두 항목을 합산한 기간이 연간 90일 범위를 넘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다.
특별연장근로 허용부터 엄격해야 하지만, 정부는 연중 90일 이내만 사용토록 한 빗장을 풀었다. 지난 7월 반도체 업계 지원 방안으로 연구개발(R&D) 분야에 대해선 최대 주 64시간에 이르는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 정부는 지난달 19일 조선업을 포함한 전체 제조업에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180일로 허용했다. 이어 같은달 30일엔 해외에 근로자를 파견한 건설업체에도 마찬가지 180일까지 확대했다. 지금까진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2주(14일)로 인가받은 사업장이 원청의 주문 취소나 원자재 미공급 등 여러 가지 사유로 특별연장근로를 1주(7일)만 한 경우 지금까진 신청기간(14일)을 기준으로 90일 상한을 적용했다. 90일에서 14일을 제했지만, 앞으로는 실 사용일수 7일만 제하는 것이다.
정부가 ‘주 52시간제’ 기틀을 허물면서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가장 긴 시간을 일하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OECD 2020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8시간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687시간으로 평균보다 연 221시간 더 일하는 셈이다. OECD 회원국 순위로는 한국이 네 번째로 길게 일한다. ‘콜롬비아-멕시코-코스타리카’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길다. 하지만 지난 8월 멕시코에선 ‘하루 6시간 근로제’ 도입을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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