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 여파 속에 공사 중단 현장도 속출
“금리 15%대 브리지론 연장해 간신히 버텨”
1군 건설사 사업지 둔촌주공마저 12%대에 차환
정부 “PF보증 지원계획 차질없이 이행할 것”
서울 서초구 잠수교에서 한 시민이 아파트 건설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양영경·유오상 기자] # “최근 사업장의 본 PF(프로젝트파이낸싱) 자금 조달이 성사되지 않아 금리 15%대에 브리지론을 연장했습니다. 보유 중인 현금으로 겨우 이자를 내며 연명하고 있는데 이러다가 사업을 시작도 못하고 좌초할 처지입니다. 최근 협회를 통해 지역 건설사들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비슷한 상황이라는 답변만 돌아오더군요. 마지막으로 아직 대출이 막히지 않은 2금융권만 바라보고 있습니다.”(A중견 건설사 관계자)
최근 레고랜드발 자금경색 사태로 불거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속에 자금줄이 막힌 건설업계가 신음하고 있다. 그간 대출에 여유로웠던 금융기관들이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대출 문을 걸어잠그면서 건설 현장에서 공사가 멈추고 하청업체가 부도를 맞는 일이 현실화하고 있다. 자금경색과 금리 인상, 주택시장 침체 등이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중견 건설업체 사이에서는 ‘줄도산’ 위기가 코앞에 닥쳤다는 반응도 연이어 나오고 있다.
8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0월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전월보다 5.7포인트 하락한 55.4를 기록했다. CBSI가 기준선인 100보다 낮으면 낮을수록 현재 건설경기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낙관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부 지표인 자금조달지수는 지난 9월(72.0) 2년4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은 뒤 지난달에도 73.0을 기록해, 여전히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통상 가을철 발주가 늘어나는 10월에는 지수가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올해는 레고랜드발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확산하면서 건설업계의 체감경기가 악화되고, 이것이 지수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중소·중견 건설사의 사정이 심각하다. 중견기업 CBSI는 이 기간 18.9포인트 급락한 48.6으로 2013년 이후 최악을 기록했고, 중소기업은 6.9포인트 내린 50.0을 나타냈다.
‘돈맥경화’로 인한 공사 중단 사태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업형태도 정비사업과 공공사업지를 가리지 않는다. 인천의 정비사업의 시공을 맡은 한 중견 건설사는 최근 PF 대출 거부 사태로 공사 중단위기를 맞았다. 공사비 지급이 미뤄지면서 하청업체가 부도를 내는 일도 발생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경기 고양 지축지구의 공공분양 아파트 건설 현장에선 시공사인 중견 건설사가 자금난을 겪으면서 LH가 지급한 공사대금에 압류가 걸렸다. 공사대금이 묶인 이 건설사가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면서 내년 하반기로 예정됐던 준공 일정도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중소·중견 건설사들은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자금 마련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통상 PF 대출은 사업 초기 토지 매입·인허가 등을 위한 브리지론과 이후 공사·사업비 일부를 조달하기 위한 본 PF로 나뉜다. 사업계획 승인 이후에는 본 PF를 통해 높은 금리의 브리지론을 상환하고 착공에 나서는 게 일반적이지만 최근에는 본 PF 전환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존 브리지론의 만기가 다가온 사업장은 높은 금리로 대출 연장을 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으나 자금력이 부족한 회사는 이자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게 건설업계의 전언이다.
대형 건설사 역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건 매한가지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출혈경쟁식으로 정비사업 수주전을 치른 터라 자체 보유 현금으로 어떻게든 해결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최근 수주한 사업장은 이율이 두 자릿수에 근접해 내부에서 ‘당분간 신규 사업은 자제하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시공능력 평가 8위인 롯데건설은 운영자금 안정성 확보를 위해 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주주 배정 유상증자(2000억원)를 실시한 데 이어 5000억원을 차입했다. 또 1군 대형 건설사 4개사가 참여하는 둔촌주공재건축사업장은 금융기관에서 빌린 7000억원의 PF사업비를 12%의 금리로 차환 발행하기도 했다. 이번 차환에는 정부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중 하나인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도 참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중소·중견 건설업체 등을 중심으로 ‘줄도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돈줄이 막혔는데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공사비 상승, 금리 인상, 주택경기 침체, 미분양 속출 등 악재가 더해지고 있어서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협회에 부도 신고된 종합건설업체는 4곳이다. 올해 당좌거래 정지가 이뤄진 건설사와 관계사도 17곳에 달한다.
협회 관계자는 “가뜩이나 자금 상황이 어려운데 금융기관들이 대출 문턱을 더 높이면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면서 “지역 건설사 중 상당수는 자체 자금이 없다시피 한데 현 수준 이상의 정부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줄도산 위기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충남 지역의 중견 건설업체인 우석건설은 지난 9월 말 납부 기한이 도래한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 처리됐다.
정부도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부족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정부는 부동산 PF 대출시장의 변동성을 완화하고 중소·중견 건설업체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 지원을 10조원 규모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시장 상황과 업계 반응 등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해 부동산 PF 보증 지원계획을 차질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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