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세입자 임대료 인하 합의해 재계약
한국은행 금리 인상 기조에 약세 계속될 듯
서울 시내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은 안내문. [연합] |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 서울 성동구의 한 전용면적 84㎡ 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A씨는 지난 9월 보증금 6억원에 전세계약을 갱신했다. 지난해 11월 8억5000만원에 신규 계약을 체결한 지 10개월 만에 2억5000만원 낮춰 재계약한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세 품귀 현상으로 시세가 7억원을 훌쩍 넘으면서 최고가로 거래했지만 올해 들어 전셋값이 급격히 내리면서 집주인과 협의해 갱신계약을 체결했다. 이 아파트는 두 달 새 전셋값이 더 내렸고 현재 5억원대 중반에도 전세물건이 나와 있다.
전세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계약 갱신 때 전셋값을 낮추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금리인상 여파로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며 전세물건이 적체되다 보니 세입자 우위의 시장 분위기가 형성됐고 이에 집주인과 세입자가 하향 조정된 가격으로 재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9월 서울의 아파트 전월세 거래 가운데 임대차신고가 이뤄진 9456건을 분석한 결과 52.5%인 4966건이 갱신계약으로 확인됐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월차임 전환 시 산정률을 적용해 이들 갱신계약의 임대료 인상률을 계산해보면 5% 미만인 거래가 1404건으로 전체 갱신계약의 28.3%를 차지한다. 임대료를 동결한 갱신계약은 285건(5.7%)이었고 임대료를 낮춰 재계약한 사례도 35건(0.7%)에 달했다. 전셋값 상승기에 집주인들이 증액 상한인 5%를 꽉 채워 임대료를 올렸던 것과는 분위기가 달라진 모습이다.
눈에 띄는 점은 갱신권을 사용하지 않고도 임대료를 동결하거나 낮춘 거래가 늘었다는 대목이다. 과거 갱신권 미사용 계약은 임대료를 높여서라도 계속 거주하고 싶어 갱신권을 포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반면 지금은 굳이 갱신권을 쓰지 않아도 임대료 인상에 대한 큰 부담이 없어 갱신권 미사용을 선택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지난 9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갱신계약의 갱신권 사용 비중은 전달(63.1%)보다 2.0%포인트 내린 61.1%로 올해 1월(68.9%)과 비교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갱신권 미사용 거래 1932건 가운데 22.8%인 440건이 임대료 인상률 5% 미만인 거래라는 점을 고려하면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원활한 협의 재계약이 증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임대료를 낮춘 거래 35건 중 25건은 갱신권 사용 없이 체결된 것으로 파악됐다. 집주인으로서는 시세 하락에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직면하다 보니 임대료를 낮춰서라도 기존 세입자를 설득해 재계약하는 게 유리해진 셈이다.
올여름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골자로 하는 임대차법 도입 3년차를 맞아 집주인들이 4년치 전셋값을 한꺼번에 올리면서 전세대란이 올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고 전셋값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대단지를 중심으로는 2년 전보다 가격이 내린 전세물건도 속출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전세시장 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에 보증금을 낮춘 갱신계약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대출이자 부담과 역전세 우려 등이 맞물리면서 월세 전환이 지속됐고 전세 수요는 크게 위축되고 있다”며 “전세물건이 쌓여 있는 지역에서 하락폭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eh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