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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직연금發 ‘금리발작’ 우려...당국, 차입제한 완화 ‘숨통’
‘제2 흥국생명 사태’ 방지 총력
생·손보 퇴직연금 30% 내달 만기
대규모 자금이동 일어날 가능성
금감원 비사업자에도 ‘공시의무’
차입한도 위반 당분간 처벌안해
환매조건부채권 발행 등도 허용

다음달 예정된 최대 3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머니무브’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비사업자들에게도 이율 공시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동시에 보험사들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퇴직연금 관련 차입 제한도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환매조건부채권(RP)발행도 허용할 계획이다. 퇴직연금 만기일 도래에 따른 대규모 자산이동으로 제2의 흥국생명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들이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명·손해보험사의 퇴직연금 자산 30%가 다음달 만기를 앞두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보험사의 퇴직연금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생명보험이 64조9452억원, 손해보험이 14조1105억원이다. 6월 말 기준으로는 생명보험 71조7873억원, 손해보험 34조9504억원 등 100조원이 넘는다. 적게는 수조원에서 많게는 30조원 이상의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자금이 빠져나가는 데 따른 시장 파급력이 크다는 데 있다. 보험사들은 고객에게 받은 돈으로 우량채권을 매수해왔는데, 올 하반기부터 채권을 팔기 시작했다. 내년 1월 시행되는 새 회계기준(IFRS17)에 맞춰 자금 확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이 일시에 빠져나가게 되면, 보험사는 또다시 채권을 대량으로 매각해 현금을 확보할 수 밖에 없다. 시장에선 단기간 수십조원의 채권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채권금리는 발작 수준으로 급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의 조치는 퇴직연금 만기로 퇴직연금사업자와 비사업자간 과도한 금리 경쟁을 막고, 대규모 자금 이동을 조절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퇴직연금 상품의 이율을 적용하기 4영업일 전에 홈페이지에 금리를 공시해야 하지만, 비사업자의 경우 규제가 없다. 이에 비사업자는 사업자보다 높은 이율로 고객 유치에 나설 수 있었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 상품의 금리는 2%대 중반이었지만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며 최근 5% 후반대 이자를 내세워 퇴직연금을 유치하는 곳도 있다.

금융당국이 비사업자의 이율공시 의무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처럼 이율을 베껴 ‘컨닝공시’를 통한 대규모 자금 이동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유동성이 부족한 보험사가 갑자기 퇴직연금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채권을 내다 팔려고 했는데, 매각이 안 될 경우에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채권 매각이 불발될 경우 퇴직연금 자체를 지불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저축보험 해지가 급격이 늘어나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보험사들이 퇴직연금이 빠져나갈 경우 유동성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4만1000여건이었던 저축성 보험 계약건수는 9월 2만7424건으로 감소했다. 저축성보험 해약금 규모도 전년 동기 대비 26.3% 증가한 14조원이다.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 생명보험사 저축성보험의 지급보험금 규모는 24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8조원에 비해 33% 늘어났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3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만기 대응책을 두고 매일 회의를 진행할 만큼, 자금 시장 움직임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에 비사업자 공시 의무 부과 외에도, 보험사의 차입 규제를 완화해 유동성 규제를 일시적으로 유연하게 적용키로 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비조치의견’을 통해 차입규제를 완화한 보험사에 대해서도 처벌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논의중이다”고 밝혔다.

현행 보험업법 시행령에 ‘퇴직연금 같은 특별계정은 은행이나 다른 금융회사 등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1개월 이내 단기자금, 계정 자산의 10분의 1 이내’로 한정하고 있다. 손해보험협회 등 보험업계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건의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은 규제를 완전히 풀어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나 시행령 개정없이 비조치 의견을 통해 한도 규제를 어긴 보험사에 대해서도 한시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유권해석을 통해 보험사 RP 발행을 허용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RP 발행을 어느정도 규모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흥국생명 사태 당시에도 유권해석을 통해 환매조건부 채권 발행을 허용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유동성 대응 방안을 확정하고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박병국 기자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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