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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권리 점포 쏟아지고 “폭탄 세일 안하면 안산다”…1%대 경제성장 시대[부메랑된 기준금리…3.25%의 역설]

고물가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제의 걸림돌로 부상했다. 사진은 최근 서울 시내 한 상점에 붙은 코로나19 임시 휴업 안내문. [연합]

[헤럴드경제=오연주·성연진 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이모(45)씨는 배달이 준데다 홀 손님도 크게 늘지 않아 매달 적자를 걱정하며 근근히 버티는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원가마저 올라 버티는 게 버거울 정도라고도 했다. 이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일 때에는 ‘그래도 이 시기가 지나가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며 “지금은 내년에 더 어렵다는 전망밖에 안 들려 계속 장사를 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24일 내년 한국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낮춰잡았다. 사실상 경기침체를 예고한 것이다. 대외적으로 주요국 경기 둔화로 수출이 힘을 쓰지 못하고, 대내적으론 보복소비에 힘입어 되살아났던 내수가 고물가·고금리를 이기지 못하고 고꾸라질 것으로 봤다. 국내외 기관들도 수출에 이어 민간소비까지 약화되면서, 내년 한국 경제가 사실상 침체에 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올 들어서만 기준금리를 2.25%포인트 급격히 올린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 오고 있다는 얘기다.

고금리에 고물가, 실질 소득마저 낮췄다…‘공식화된 경기침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23일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낮추면서 “민간소비가 그간 회복을 보여왔지만, 높은 물가로 가처분소득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앞으로 민간소비가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며 국내 경제성장의 방파제 역할을 톡톡히 했던 민간소비마저 고꾸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 3분기 민간소비는 승용차를 비롯한 내구재와 음식 숙박을 포함한 서비스 등에 힘입어 전기대비 1.9% 증가했다. 2개 분기 연속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성장률은 2분기의 2.9%보다 낮아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직후 나타났던 ‘펜트업 효과(억눌렸던 소비 폭발 현상)’가 완화된 데다, 인플레이션,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원/달러 환율 상승 등으로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이전보다 악화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올 연말과 내년이다. 네덜란드계 금융회사인 ING은행은 내년 한국 경제 성장을 아예 0.6%로 잡았다. 0%대 성장 전망은 처음이다. 강민주 ING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경제는 대외 수요가 중요한 요인인데, 내년 미국과 유럽의 성장률이 각각 -0.4%와 -0.7%로 역성장할 것”이라며 “올해 4분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우리 경제가 수축 국면에 들어선 뒤 내년 하반기 들어 성장세가 0%대로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주요기관이 최근에 내놓은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한국개발연구원(KDI) 1.8%, 한국금융연구원 1.7%, 하나금융경영연구소 1.8%,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 1.9% 등이다.

지갑 닫는 가계, 소비 무너지면 경기는 침체

실제 소비 심리는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의 ‘11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6.5로 전월(88.8)보다 2.3포인트 하락했다. CCSI가 100보다 높으면 장기 평균치(2003∼2021년)와 비교해 소비심리가 낙관적, 100을 밑돌면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CCSI를 구성하는 6개 지수 가운데 현재생활형편(83)만 전월과 같았고 생활형편전망(82)과 가계수입전망(93), 소비지출전망(107), 현재경기판단(46), 향후경기전망(54) 모두 뒷걸음질 쳤다.

가계 재정도 내용이 좋지 않다. 3분기 가계신용(가계빚)은 1870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이 가운데 카드 판매신용이 전분기보다 2조5000억원이나 늘며 113조8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4월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에 따라 민간 소비가 늘어난 영향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물가가 오른 반면 임금은 정체되면서 구매력이 약해져 사실상 빚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당장 3분기 가계대출은 감소한 반면 카드 사용액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물가가 오르는데 임금은 그대로라 소비를 당장 축소할 수 없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며 “내년 경기침체가 올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백화점 업계가 겨울 정기 세일을 시작한 18일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서 고객들이 겨울 의류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

‘무권리 점포가 쏟아지는데 쎄하다’…명품에 호황 자랑하던 백화점도 전전긍긍

소비 침체는 숫자로도 입증된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전국적으로 3만9134개의 일반 음식점이 폐업을 신고했다.

자영업자 최대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폐업을 고민하거나, 폐업 관련 분위기를 전하는 게시글들이 부쩍 늘었다. ‘무권리 점포가 쏟아지고 있는데 느낌이 쎄하다’, ‘굵직한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줄줄이 나갔다’, ‘요즘처럼 썰렁한 분위기 처음이다. 영끌해서 집 산 사람들 금리 올라 쓸 돈이 정말 없나 보다’ 등 생생한 현장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상가 공실에서도 자영업 부진은 엿보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국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은 13.1%,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6.8%에 이른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전분기 대비 0.2%포인트 증가했다.

그동안 ‘고물가·고금리 무풍지대’로 남아있던 백화점 사이에서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소비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면서 고가품 소비가 많은 백화점은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 기준 백화점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6%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연속적으로 고신장세를 유지하며 피크아웃(정점) 우려가 나왔으나, 여전히 견고한 상승세를 이어간 것이다. 그러나 연말이 다가오면서 부쩍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뿐만 아니라 일반 패션 카테고리도 고신장했는데, 물가와 대출금리가 오르면 지갑을 닫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다. 지금 진행 중인 겨울세일도 이전 세일보다 성장률이 둔화될 수 있다”며 “올해는 리오프닝 이후 소비가 크게 늘면서 잘 넘어갔지만, 내년부터는 모두 역신장을 걱정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oh@heraldcorp.com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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