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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유동성 위기 자초한 보험사, 위기 심화시킨 금융당국
금리인상이 위기 가장 큰 책임이지만
보험사 ‘과한 욕심’ 화 불러
정부도, 상황 오판한 책임 면치 못해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보험사들은 올 한해 동안 ‘위기’에 맞서야 했다. 자본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 추이를 지켜보며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고 순자본비율이 100% 밑으로 내려갈까 노심초사해야 했다. 정부의 유예 조치(RBC)에, 혹은 묵인(금산법상 순자본비율)으로 버텨왔지만 연말이 되니 ‘유동성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금리 인상이다. 자본건전성이든, 유동성 위기든 모두 금리 폭등으로 기인한 측면이 크다. 금리상승으로 채권 평가손실이 이어지면서 RBC 비율이 급격히 떨어졌고, 은행이 앞다퉈 수신 이자율을 올리면서 저축성 보험 상품 해지가 늘어났다. 내달 만기가 예정된 퇴직연금도 마찬가지다. 금리가 올라가면서 보험사가 운영하는 퇴직연금 자산은 더 높은 이자율을 찾아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보험사의 위기는 오롯이 ‘금리인상’에서 비롯됐을까?

보험사의 ‘과한 욕심’이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지는 않을까. 먼저 퇴직연금을 보자. 금융당국은 자산과 ‘듀레이션’을 맞추라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내고 있다고 한다. 듀레이션은 ‘만기’의 개념으로 빌린 돈과 빌려준 돈의 ‘만기’를 맞춰야 돈이 매끄럽게 움직인다. 하지만 일부 보험사의 경우 1년 짜리 단기상품인 ‘퇴직연금’을 받아 3~4년 짜리 중단기채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낮았을 때는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금리가 높아졌을 때는 손실을 보거나 정작 돈을 돌려 줘야 할 때 갚을 돈이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가 폭등한 지금의 상황이 딱 그렇다.

저축성보험도 마찬가지다. 저축성 보험은 돈이 일시적으로 빠져나가 보험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상품이다. 2010년대 초중반부터 상품 구성을 저축성 보험에서 보장성 보험으로 바꿨지만 체질개선이 늦어진 보험사들도 있다고 한다. 저축성 보험 만기도래나 해지로 나갈 돈이 많은데 정작 들어온 돈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돈을 내줘야 되는데, 나갈 상황이 안되자 다시 높은 금리로 저축성 보험을 판매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11월 현재 5.8%까지 이율을 내건 저축성 보험 상품이 나왔다.

정부도 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는 상황을 오판했고 위기는 심화됐다. 김진태 강원도 지사의 강원중도개발공사 기업회생 신청은 한국 채권의 신용도 폭락을 불러일으켰다. 강원중도개발공사는 레고랜드 건설을 주도한 회사다. 레고랜드 사태는 한국전력공사 등 우량기업들의 채권이 유찰되는 사태로 이어졌고 중소 증권사의 연쇄 부도 가능성도 언급됐다. 결국 김 지사는 한 달도 안돼 기존의 입장을 번복했다. 하지만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후였다.

정부의 오판은 흥국생명 사태에서도 드러났다. 시장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또 반복됐다. 금융위원회, 금감원 등 금융당국과 기획재정부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이행 결정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 정부는 이 결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콜옵션 미이행은, 한국물 채권 전반에 대한 시장 신뢰를 떨어트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결국 흥국생명은 정부와 협의 끝에 일주일만에 콜옵션을 이행하기로 다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쯤되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은 오히려 정부를 두둔하는 것이 된다. 위기 심화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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