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서정은의 현장에서] ‘금융좀비’ 키우는 관치

“예대금리차를 줄여라”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하라” “은행들은 예금금리 인상을, 보험사는 저축보험 금리 인상을 자제하라” “퇴직연금 금리 과당 경쟁을 그만해라” “상호금융도 특판 과당 경쟁 자제하라”

연일 쏟아지는 금융당국의 ‘자제령’에 금융권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몇달 전만해도 은행들이 과도한 이자장사를 한다며 예대금리차 공시를 추진했던 당국이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은행, 보험사 등에 전방위적으로 수신금리 인상을 하지 말라고 압박한다. 물론 가파른 금리 인상, 최근 채권시장 경색 등 금융환경을 고려했을 때 당국의 발언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발언의 강도나 주기 등이 너무 잦다. 금융사들을 당일날 급히 소집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당국의 의중이 매일, 시시각각으로 시장에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국은 시장에서 작은 움직임이 보이기만 해도 ‘옐로카드’부터 꺼내니 마치 어린 아이가 물 근처에만 가도 익사할까 놀라 쫓아오는 부모같다.

당국의 발언이 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것도 아니다. 은행, 보험사에 수신금리를 올리지 말라고 하니 조금이라도 더 높은 이자를 찾는 자금은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으로 움직였다. 재무 체질이 약한 상호금융권에 자금이 몰리니 이젠 여기에 “특판 과당 경쟁을 지양하라”는 메시지를 내놓는 형국이 됐다. 금융소비자도 허탈하긴 마찬가지다. 대출금리는 이미 오를 대로 올랐는데 수신금리는 올리지 말라고 하니 당국이 앞장서서 소비자 혜택을 줄이는 느낌마저 든다.

금융사들은 바보가 돼가고 있다. ‘구축효과’를 막아야한다며 은행채 발행이 막힌 은행들은 내년도 자금 조달 계획도 세부적으로 세우지 않고 있다. 어차피 당국에서 발행 재개부터 시점, 간격을 세세하게 지정해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금융사 스스로 시장 환경에 따라 여러 계획을 결정하고, 실수했을 때 이를 고칠 기회를 갖는 대신 금융당국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군사정권 등을 거쳐오며 금융 뿐 아니라 전 산업에 ‘관(官)’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곳이었다. 그러다 전체 흐름을 뒤집은게 1997년 IMF 외환위기다. 경제주권이 IMF로 넘어가면서 금융을 포함한 전 산업에 혹독한 구조조정과 민간 중심의 개혁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서민들의 고통, 기업들의 무너짐을 겪은 끝에서야 우리나라는 민간주도형 금융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안겪었으면 좋았을 일이었지만, 모든 성숙은 고통 없인 얻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정부의 방임은 시장 실패를,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정부 실패를 야기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당국이 메시지를 내놓아야 하는 시점도 명확한 시장실패, 독과점 폐해가 일어날 때 등 ‘한 방’이 필요할 때다. 금융당국은 전일 ‘금융권 자금흐름 점검·소통 회의’를 통해 “최근 국내 자금시장이 국내외 통화긴축 속도조절 기대, 연이은 시장안정대책 시행 등으로 다소 진정되어 가는 모습”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과연 ‘한 방’이 필요한 때인가.

luck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