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데스크칼럼] 소비, B와 D 사이의 C

“인생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에 있는 C(choice·선택)”라는 격언이 있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폴 샤르트르가 남긴 말이다. 그렇게 길게 살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실제 인생은 어렸을 때부터 ‘C’의 연속이었다. 오래전이지만, 태어나 그 C를 가장 먼저 느꼈을 때가 떠오른다.

아마 30여 년 전, 초등학교를 다닐 때다. 아마 주전부리를 사려고 동네 구멍가게를 기웃거렸을 거다. 어머니가 주신, 호주머니에 있는 100원짜리 동전 몇 닢을 들고 가게에서 한참을 고민했던 생각이 난다. 200원짜리 과자로 ‘질적·심리적 희열’을 추구할 것인가, 100원짜리 과자로 ‘양적·육체적 쾌락’을 얻을 것인가에 대해 선택해야 하는, 나름대로 깊은 시름이었다.

어린 마음에 느꼈던 몇백 원의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1980년대 당시 여느 가정이 그랬지만, 우리집도 풍족하지는 못했기에 귀하게 받은 동전 몇 닢을 함부로 쓰기 어려웠다. 사족이지만, 그때 질보다 양을 선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듯 어릴 때부터 ‘C의 굴레’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소비인 것 같다. 이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재화나 용역을 소모하는 일’이라 적시돼 있다. 소비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consumption)의 약자도 공교롭게 C다.

소비의 기본이자 주체는 바로 가계(家計)다. 가계는 곧 가정을 의미한다. 가정의 구성원은 주거비, 교통비, 식료품비 등을 내거나 기타 재화와 서비스를 얻기 위해 지출을 한다. 이것이 바로 가계지출로, 국가 총 소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가계지출이 위축되면 국가 전체 소비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고물가와 경기침체 탓에 서민의 지갑은 내년에도 쉽게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11~18일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년 국민 소비지출 계획’ 조사 결과를 보면 내년 가계 소비 지출은 올해와 비교해 평균 2.4%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응답자의 56.2%는 내년 소비지출을 올해에 비해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위 20%인 소득 5분위만 소비 지출이 증가(0.8%)하고, 나머지 소득 1~4분위(하위 80%)는 모두 소비 지출이 감소할 것으로 조사됐다. 인지상정이겠지만, 소득이 낮을수록 0.8(4분위)→6.5%(1분위)로, 소비 감소폭이 더욱 컸다.

조사 결과 ▷여행·외식·숙박(21.0%) ▷의복 등 내구재(15.4%) ▷여가·문화생활(15.0%) 등의 소비를 줄이겠다는 답변이 많았다. 꼭 지출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것들이다. 당장 질적인 것보다 꼭 필요한 양적 욕망을 채우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이 같은 소비 위축은 어렸을 때부터 체득한, ‘어려울 때 줄이라’는 본능 같은 것이다. 생각하니 ‘B와 D 사이의 C’는 선택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소비를 일컫는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소비 위축은 저성장을 야기할 수 있어 우려된다. 한국은행도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로 최근 낮췄다. “민간 소비의 핵심인 가계 소득 보전을 위해 일자리 유지·창출 여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전경련 관계자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신상윤 소비자경제부장

ke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