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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금융시장 아래 갓끈 매지 말기

인간은 합리적인가? 경제학은 그렇다고 답한다. 아니 그렇다고 가정한다. 사회는 합리적인 경제 주체들이 각자 최선의 방식으로 합리적인 계산을 해서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는 의사결정을 하고, 그러한 의사결정들은 결국 시장을 통해 조화롭게 조정된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얼마 전 흥국생명이 발행한 신종금융증권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신종금융증권은 만기가 30년 채권인데 만기 연장이 가능해 일종의 영구채처럼 간주된다. 상환 우선순위는 채권보다 뒤에 있는 후순위채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감독당국이 자본금으로 인정해 주기 때문에 많은 금융회사가 자본금 규제를 맞추려고 많이 발행하는 금융상품이다. 이 상품에는 발행 후 일정 기간 후에 발행자가 채권을 되살 수 있는 콜옵션이 결합되어 있다.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발행자가 콜옵션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하고 이 증권을 산다. 왜냐하면 옵션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 새로운 금리는 이전에 비해 높아진다는 스텝업(step up)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국생명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고, 이것은 시장에서 흥국생명의 자금난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해당 증권가격이 하락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물에 대해서도 매수세가 크게 줄어드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렇게 상황이 번지자 금융위원회는 흥국생명이 기존 증권을 상환하기 위해 차환 발행하는 것보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는 뉘앙스와 함께 흥국생명에 자금 문제가 없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그러나 실상이 어찌 되었든지간에 그러한 해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시장참여자들은 흥국생명이 이전의 관행과 다른 행동을 한 것을 두고 깊은 이유를 따지고 분석하기보다는 일단 위험을 피하자는 행동을 보였다. 흥국생명이나 정책당국 입장에서는 이 사단이 억울했겠지만 거기에 맞서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결국 흥국생명이 조기상환권을 행사하겠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혼란은 진정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억울할 만한 사건이 이전에도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우리 시장에서 외국인의 대규모 자금이탈이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한국, 특히 은행의 유동외채비율이 높았던 것이었다. 이 상황에 직면해서 한국 정부는 은행의 높은 외채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강변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주장은 사실 맞는 말이었다. 당시 조선업 호황 상황에서 조선사의 선물 매도를 은행이 받아 주었고, 은행은 선물 매수로부터 발생하는 환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외채를 늘렸다. 따라서 당시의 은행외채는 상환부담이 없는 외채가 맞았고 우리 금융이 취약하다는 외국투자자들의 판단은 사실상 그들이 우리 실상을 꼼꼼하게 분석하지 않았던 데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대부분 투자자들은 외채비율 상승 상황에서 일단 한국으로부터 돈을 빼는 행태를 보였고, 그 결과 환율은 치솟았었다.

이 두 가지 에피소드는 모두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의사결정이 항상 합리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당신들이 틀렸소라고 항변하는 게 옳은 대응일까? 금융시장참여자들은 제한된 정보만을 갖고 있고, 전반적 시장 반응은 시장참여자들의 평균적인 판단의 결과이다. 집단지성이 대체로 시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지만 항상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지배하고 제한된 합리성만을 지니고 있는 시장참여자들로 이루어진 금융시장에서는 불필요한 의심을 사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은 중요하다. 빚을 져 놓고 내 빚은 안전하다고 항변하는 것도, 그리고 시장관행과 달리 행동해 놓고 내가 똑똑해서 그리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효과가 없을 위험이 크다. 오얏나무 아래 갓끈을 매지 말라는 선조들의 가르침은 금융시장에서도 잘 통하는 말인 것 같다.

채희율 경기대 경제학부 교수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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