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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신뢰의 위기’가 가져온 공포, 그리고 뱅크런

“어디가 금리가 제일 높아?” “예금자 보호되는거지?” “저축은행같은 제2금융권이 망하면 우리 돈 어떻게 되지?”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실이 또 있었네(집값, 주식, 비트코인 등등)”.

불과 1년여 사이에 기준금리가 2.5%포인트 급격하게 오르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던 환상을 줬던 ‘초저금리’에 대한 믿음은 무참히 깨졌다. 빚을 내서 집을 사고, 가상자산과 주식에 투자하라던 ‘레버리지 투자’는 깊은 절망감만 안겨줬다. 금리를 1%포인트라도 더 챙기기 위해 새벽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는다. 8%, 10% 특판이라는 입소문이 나면 저축은행, 신협, 농협, 수협 앞은 새벽부터 수많은 사람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96조751억원에 불과했던 저축은행의 수신 잔액은 1년여 만에 22조원이 넘는 뭉칫돈이 흘러 들어가면서 118조6822억원을 기록했다. ‘연 10.35% 특판예금 판매’ 소식에 한 단위농협에는 1400억원이 넘는 뭉칫돈이 몰리면서 ‘이러다가는 망하게 생겼다’며 특판예금 해지를 읍소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 몰려가면서도 한쪽에서는 “망할 일은 없겠죠?” “예금자 보호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고금리 예금 특판경쟁이 저축은행의 파산으로 이어졌던 뼈아픈 경험이 깊숙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말라가는 유동성을 메우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고금리 특판을 내세우며 시중의 자금을 끌어모으려 애썼다. ‘경기침체→유동성 부족→뱅크런 공포→고금리 특판→뱅크런’의 악순환이라는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내 수중에 있는 쥐꼬리 같은 자산은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강력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다.

과거 금융위기 당시 경험한 ‘공포’와 ‘두려움’이 형성한 강력한 내러티브도 한몫한다. 일종의 군중심리다. 신뢰가 깨지고 두려움이 팽배해지면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루루 몰려간다. 최근의 레고랜드 사태는 ‘신뢰 붕괴→공포→투매’의 악순환이 작동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2022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금융불안지수(FSI)가 임계치인 22를 넘었다. 올 1월에 5.9에 그쳤던 FSI는 지난 10월에는 23.6으로 치솟았다가 지난달에는 23으로 소폭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주요국의 통화긴축에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코로나 봉쇄 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레고랜드와 같은 우발적 신용 사건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정책자문단(Brain Trust) 중 한 명이었던 레이먼드 몰리(Raymond Moley)는 “불황이란 은행에 예금 인출 요구가 쇄도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신뢰의 위기다. 공황에 빠진 사람들은 돈을 움켜쥐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로버트 쉴러 ‘내러티브 경제학’)고 지적한 바 있다. 지금 시장은 위기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전염성 강한 ‘신뢰의 위기’가 번지지 않기 위해선 금융당국의 발빠르면서도 사전 예방적인 조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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