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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 소득세 신고와 개인의 프라이버시권

소득세 제도는 18세기 말 ‘근대화’ 초기 영국에서 처음 도입한 제도다.

근대화의 개념을 정리해본다. 역사적으로 초기 산업화, 초기 자본주의 시대다. 사회적으로 도시집중화, 핵가족화, 개인주의 초기 단계다. 철학적으로 계몽주의 시대로, 개인의 기본권은 타고날 때부터 보유한 천부인권 사상을 주장한다. ‘사유재산권’도 자유, 평등, 종교의 자유처럼 기본적인 권리로 인정된다. 절대군주의 자의적 세금 징수를 방지하고 사유재산 보호 강화를 위해 의회가 세목과 세율을 법률로 정하는 조세법률주의를 도입하는 시기다.

영국의 소득세 신설은 이러한 초기 자본주의 시대 상황과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과 전쟁 준비에 필요한 전비 마련을 위해 한시적 시한으로 도입한 세금이다.

소득세 시행 초기에 과세 대상은 부유한 상공업자, 자본가, 대지주 등 사회지도층의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함에 따라 중산서민층은 소득세 도입을 지지했다. 과거는 지금처럼 회계장부가 치밀하지 않았다. 세무공무원들은 소득세 과세를 위해 귀족, 상공인, 자본가를 찾아가 연간 소득금액과 지출비용 질문 등을 통해 소득자료를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시대사조인 계몽주의 사상에 익숙한 상류층은 세무공무원이 개인의 소득 파악조사를 기본권인 프라이버시권 침해로 보아 자존심이 상하고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의회에서 소득세법을 폐지했다. 아울러 향후에 다시는 소득세를 재도입하지 못하도록 의회는 소득세 근거자료를 모두 파기하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수십년이 지난 후 1853년에 흑해 연안에서 ‘크림전쟁’이 발생했다.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고 제국주의 해상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전쟁을 치르게 됐다. 영국은 전비 조달을 위해 부득이 소득세 재도입을 결정했다. 과거 소득세 과세자료를 모두 파기하도록 한 의회의 명령을 어기고 다행히 재무부 지하 창고에 납세자료 한 부를 몰래 보관하고 있어서 쉽게 재도입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소득세 재도입 당시 크림전쟁이 끝난 후 소득세를 폐기한다는 조건부로 도입됐으나 재정 필요성에 따라 계속 소득세를 운용해 오늘날 세계 모든 국가의 중추적인 세금으로 운용되고 있다.

영미 국가는 납세도의가 높다는 말이 있다. 약속 이행과 충성 준수의 표시로 중세 기사들의 영주에 대한 서약, 미국 대통령의 성경책 앞에 취임선서, 고위 공직가의 선서 등 서약과 서명제도의 관행이 있다. 소득세 납세자들이 세무공무원들에게 본인의 명예를 걸고 성실하게 소득세를 신고한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대신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존중받는다는 상호 약속이다.

우리나라는 약 2000만명의 근로소득자가 지난달 소득세 연말정산 신고를 마치고, 2월 급여일에 일부 소득세를 환급받는다. ‘13월의 보너스’라고 부른다. 소득세를 환급받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카드 사용, 병원 진료, 기부금, 자녀 학비, 가족구성원 내용(경로자, 장애인, 어린이 등), 주택 월세자료 등 세금 감면을 위해 사적인 비밀을 보고해야 한다. 강의 수입, 교통요금, 안경 구입, 신문 구독, 보험료 납부 등 세세한 개인정보도 국세청에 제출해야 한다. 만일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을 가진 영국의 지식인이 현대인의 소득세 신고 시 방대한 사적 정보 제출을 보면 매우 놀랄 것이다.

어쨌든 국세청 전산실은 과거 수십년 동안 전체 근로자의 방대한 소득과 지출자료를 갖고 있다. 국세청이 보유한 빅데이터는 가계경제를 연구하는 데에 필요한 귀중한 자산이다. 개개인 납세정보는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 대신 소중한 경제 통계를 사장하지 아니하고 경제학자들의 가계, 세대, 지역별 연구자료로 소득세 통계를 활용하도록 제공돼야 한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고문·전 관세청장

ey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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