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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란봉투법 닮은꼴’ 판결에...“법 제정 없어도 법원서 걸러진다”
“대법이 사실상 노란봉투법 입법”
노란봉투법 입법 취지 사실상 현행법으로 작동
노조 손배소 인용률 67.1%...기업 손배소 남발 없었다
이정식 장관 “입법론 보다 해석론이 유연” 입법 반대 논리 주목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가 2010년 11월 15일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불법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원에게 기업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는 조합원 개인별로 책임을 따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굳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제정이 필요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의 과도한 손배소로부터 노조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노란봉투법의 입법 취지인데, 법 제정 없이도 상식적으로 법원에 의해 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16일 고용노동부가 지난 2009년부터 2021년 8월까지 노조에 대한 손배소송 151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판결이 선고된 73건 중 인용된 사건은 49건으로 인용률은 67.1%를 기록했다. 2020년 기준 전체 손배소 인용률(1심기준) 44.7%보다 높다. 노란봉투법 입법 논쟁 중 하나인 ‘기업의 과도한 손배소’와 배치되는 통계다. 인용률이 높다는 건, 기업이 노조를 상대로 손배소를 남발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행 법만으로도 법원이 부당하고 과도한 손배소를 걸러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월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이는 앞서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노란봉투법 입법에 반대하며 줄곧 강조해왔던 논리이기도 하다.

이 장관은 지난 2월 관훈토론회에서 “현재도 노조가 법을 지키고 수단과 절차, 목적이 정당한 파업을 하면 손해배상이 면책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도 노란봉투법 입법에 반대 입장을 내놓으면서 “인용률과 인용 수준과 부당노동행위 제도 등을 봤을 때 노동조합에 대해 악의적인 부분은 부당노동행위로 규율해야 한다”며 “(노란봉투법은) 입법론 보다 해석론으로 가는 게 유연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법원은 전날 현대자동차가 전국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네 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현대차는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9일까지 전국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울산공장 1·2라인을 점거해 공정이 278시간 중단돼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다. 앞서 2심에서는 조합원이 2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대법원에서 뒤집힌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산업계에선 기업이 불법파업한 노조를 상대로 한 손배 청구가 훨씬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대법원은 노조 등의 불법 행위로 인한 배상 금액의 범위를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로 한정했는데, 회사 측이 쟁의 가담자들의 책임 범위를 회사 측이 일일이 파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울산공장 1·2라인을 점거했던 것처럼 생산라인을 볼모로 잡는 파업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측의 공장 점거 등 불법 파업 행위에 대한 ‘방어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노총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개별 조합원에 대한 과도한 손배 책임이 헌법상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논평했다. 이 판결이 노란봉투법 입법의 취지에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노란봉투법 2조는 ‘노조 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의 배상 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법조계에서도 이번 판결로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이 사실상 도입된 것이나 마찬가지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법원이 노란봉투법을 입법해버린 꼴”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고용부는 대법원 판결이 노란봉투법 입법과는 무관하다고 입장을 냈다. 고용부는 “대법원의 판결은 노조와 조합원을 구분해 노조보다 조합원의 책임 비율을 낮게 정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한 것”이라며 “불법행위자 개별로 손해액을 산정해야 한다는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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